대통령의 극단적 외교가 낳은 반(反)한류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1.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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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한류'를 자주 언급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한류를 끄집어냈다. “의미 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신 공격성 논란이 계속 이어지면 문화 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의지에 찬물을 끼얹어 기업들도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고 한류 문화 확산과 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는 게 박 대통령의 얘기였다. 이때도 모두들 의아해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 일러스트 정찬동

그렇게 강조했던 한류를 걷어차 버린 건 박 대통령이었다. 사드(THAAD)를 국내에 배치하기로 결정할 때부터 그랬다. 그동안 중국과 유지해 온 밀월 관계는 거짓말처럼 차가워졌다. 중국과 한국은 오랫동안 분업으로 맺어진 경제적 파트너 관계였다. 여기에 사드라는 안보, 외교 문제가 개입하면서 양국의 경제 관계는 삐거덕댔다. 원래부터 균열은 잠자고 있었다. 중국 산업이 성장하고 기술 수준이 오르면서 점차 생산 제품에서도 경쟁적인 관계가 됐다. 서해에서 자행되는 불법 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마찰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사드 파문은 대중문화산업 전반으로 퍼졌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은 중국 내 한류 콘텐츠 배척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한한령(限韓令)'이라고 이름 붙은 명령은 이곳에서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11월23일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에는 광전총국의 한 관계자가 글을 올렸다. 광전총국의 편집 담당인 옌웨이의 웨이보 계정이었는데, 광전총국의 직원은 공식 승인을 받아 계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는 웨이보에서 ‘한한령’에 관해 5가지의 이유를 들었다.

 

1. 민족문화산업을 보호하고 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2. 자국 연예인의 국민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3. 남성이 지나치게 부드럽게 표현돼서

4. 화류(華流)가 한류(韓流)를 대체해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서

5. 분별없는 행위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흥미로운 건 다섯 번째 이유다. 1~4는 대중문화산업 경쟁력, 그리고 중국 문화와 관계 지을 수 있지만 5번은 적용하려고 하면 모든 것에 걸 수 있는 이유였다. 그래서 5번을 두고 사드 배치가 원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한한령'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미 올해 8월부터 그 낌새는 보였다. 일단 중국 문화부 홈페이지에서 해외 연예인 이벤트 공연 신청에 '한국'을 검색하면 9월 이후의 정보가 없다. 8월부터 사드에 대한 후속조치로 한류가 제재를 받을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중국의 방송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던 시점과 일치한다.

 

11월18일 중국 인터넷에서는 강소위성TV의 '내부 통지'라고 하는 문서가 떠돌았다. 문서에는 강소위성TV 계열에서 나오는 한류 탤런트 기용한 광고를 방송 중지하라는 지시가 적혀있었다. 이런 금지령이 현실이 되면 국내 엔터산업은 골머리가 아파진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사의 임원은 "지금 상황에서 중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은 지구상에 없다"고 말했다.  

 

'한류'를 사랑했던 박 대통령의 외교 전략은 역설적으로 '한류'의 소멸을 낳았다. 극단적인 외교 정책은 그 반동도 강하게 돌아온다는 교훈도 얻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하게 돌아올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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