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서 만난 경찰 “시민이 느끼는 심각함, 우리도 똑같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press.com)
  • 승인 2016.11.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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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촛불집회, 끝없이 이어진 시민들 자유발언

‘0’의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11월26일 열린 제5차 촛불집회는 전국 190만 결집, 청와대 앞 200m까지의 행진이 이뤄진 ‘역대급’ 집회였다. 하지만 경찰 연행자는 또다시 0명을 기록했다. 경찰 역시 2만5000명의 최대 병력을 동원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오히려 대치하던 시위대가 고생한 의경들을 안고 다독였다. 다섯 차례 집회 모두 서울 광화문 광장을 지켜왔다는 익명의 경찰은 “대규모 집회에 나올 땐 늘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마음이 모두 사라졌다”며 “신분 때문에 자유롭게 의사를 밝힐 순 없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심각함을 우리도 똑같이 느낀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7일 오전 5시, 광화문 광장에서 밤샘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많은 시민들 역시 “오늘도 평화를 지켜냈다“며 뿌듯해했다.

 

11월26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광화문 5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청운동 주민센터 행진로 선두에서 만난 미국 뉴욕 출신의 관광객 엘리아스는 “자국에선 볼 수 없던 평화롭고 이상적인 집회”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나와 할 말을 쏟아내는 ‘자유 발언대’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알아듣진 못해도 그들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것이다. 집회 현장 곳곳에 있던 자유 발언 차량 주변은 각지에서 올라온 다양한 신분의 대기자들로 가득 찼다. 충남 천안에서 올라온 중학교 국어교사 권안택씨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 부끄러운 세상”이라며 그 부끄러움을 덜기 위해 발언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다음 순서로 올라온 여중생 이아무개양은 “나라를 위해 애쓰는 이곳 어른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려 나왔다”고 참여 동기를 밝혔다. 

 

발언대에 오르지 않은 시민들도 하고 싶은 말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집회 하루 전 트랙터를 끌고 상경한 농민 임채정씨는 “단순히 쌀값 몇 푼 더 달라는 문제가 아니다”며 “나라가 변화될 때까지 싸우기 위해 생계도 다 제쳐두고 올라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민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지난 밤 뉴스를 통해 농민인 부모님과 경찰 간의 충돌을 지켜본 경북 봉화군 학생 20여 명도 새벽 버스를 타고 합류했다. 고3인 류아무개군은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 카카오톡 메신저로 마을 친구들을 모아 서울로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트랙터 농민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한 후 26일 늦은 저녁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보수단체 회원들의 ‘반대 집회’도 열렸다. 광화문역 근처에서 만난 보수단체 회원들은 집회에 온 청소년들을 비롯한 시민들을 향해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석인 진리대한당 총재는 “여기에 애국자 하나 없다”며 “민주노총이나 야당 쪽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11월26일 오후 2시부터 모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주 내용은 대통령을 모함하는 검찰 조직을 구속하라는 것이었다. 애초 200여 명이 모일 거라는 한 회원의 말과 달리 20명 남짓이 집결한 상황에서 순서를 진행했고, 이내 서울역 집결을 위해 자리를 떴다. 떠나면서도 이들은 여전히 숨은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보수단체의 말과 달리, 불과 얼마 전까지 대통령을 지지했던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강했다. 참을 수가 없어 난생 처음으로 집회에 나오게 됐다는 한 사업가 부부는 “내가 믿었던 진실이 어디에도 없었다는 걸 느꼈다”며 앞으로도 계속 촛불을 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들과 함께 참석한 백정숙씨 역시 “현장에 나오지 못한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돌아선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과거 집회들을 보며 ‘꼭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라 놀랐다”고 덧붙였다.  

 

11월26일 오후 광화문 5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공식 행사에서 담지 못한 말은 밤새 이어졌다. 300여 명이 남아 있던 광화문 광장 밤샘집회에선 날이 새도록 발언이 이어졌다. 무대에서 내려온 한 참가자는 촛불집회를 두고 한 주의 울분을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치유소’에 비유했다. 실제 광장 곳곳에선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돗자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 저녁 광장에서 ‘하야가 꽃보다 아름답다’고 외친 가수 안치환의 노랫말 중엔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6차 촛불집회엔 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광장의 밤을 보내게 될까. 주최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는 한 12월에도 계속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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