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항쟁 1~3세대’가 본 ‘11월 항쟁’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12.06 14:42
  • 호수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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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폭발’보다 더 무서운 ‘분노의 자제’로”

이번 ‘11월 항쟁’은 세대를 뛰어넘은 범국민적 저항운동이었다. 수많은 이들을 촛불 하나 들고 광화문으로 모이게 한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11월 항쟁에 대한 다양한 세대별 의견을 모아봤다. 1세대인 ‘4·19세대’의 송복 연세대 교수가 정통 보수층을 대변한다면, 2세대인 ‘6월 항쟁’ 세대의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진보 성향의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다. 3세대인 성균관대 4학년 김영길씨로부터는 11월 항쟁을 바라보는 1020세대의 생각을 들어봤다.

 

 

4·19세대(1세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광화문 집회는 사이비 보수·진보에 대한 시민의 분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연합뉴스
“경제는 2류에서 1류로 올라섰고,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도 선진국 수준에 다다랐는데, 유독 정치만 5류·6류로 치달았어요. 그런 점에서 이번 시위는 후진적인 한국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엄중한 경고라고 봐야 합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최순실 게이트를 보수층의 위기로 봐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답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을 보는 보수층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송 교수도 “지지층을 ‘배신’한 것이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라고 설명했다. “보수라면 경험적이면서, 점진적이고, 도덕적이면서, 성실해야 한다는 ‘4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모름지기 정치권력은 ‘공공재(公共財)’인데 그걸 사유화했다는 데 시민들이 분노하는 거죠. 지금의 정치권은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가 뒤섞인 구도라고 보면 됩니다.”

 

송 교수는 ‘4·19세대’다. ‘사상계’ 기자였던 송 교수는 4·19혁명 당시 서울 원남동사거리에 있던 동대문경찰서 부근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는 “4·19혁명과 6월 항쟁이 독재권력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다면 이번 광화문 시위는 ‘분노의 자제’”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성숙한 시민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된 것도 시대 변화를 요구하는 합리적 보수층이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어버이연합 등 일부 보수단체에 대해서도 송 교수는 “법치국가라는 이념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박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방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 세력도 그런 관점에서 ‘사이비 보수’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질서 있는 퇴진’이 우선시돼야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탄핵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 항쟁 세대(2세대)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생활의 빈곤함이 4050세대를 광화문으로 모이게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시사저널 임준선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586 운동권 세대’다. 전대협 1·2기 의장을 역임한 이인영·오영식 전·현 민주당 의원이 대학 후배다. 1986년 5·3인천항쟁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김 교수는 그해 8월 구속돼 2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때문에 1987년 6월 항쟁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김 교수는 “당시는 군사정권의 강압적인 대응으로 지금과 같은 평화적 시위는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그나마 1985년 12대 총선에서 김영삼 총재가 이끈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부상한 뒤, 학내 집회가 가능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지난 지금, 대중들은 다시 광화문으로 몰려들고 있다. 과거 투석전을 벌였던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여,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30년 전 상황이 오버랩돼서인지 11월 항쟁을 바라보는 김 교수의 심정은 복잡하다. “이번 시위에서는 비정규직·교육대란·노인자살 등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가 동시에 터졌다고 봐야 합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대중의 불만이 커졌던 것이죠.”

 

최근 SNS에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국 집회에 나간 것은 처음”이라는 4050세대들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금의 4050세대는 전후(戰後) 세대이면서 동시에 1980~90년대 경제 호황을 누린 ‘축복받은 세대’다. 어떤 분노가 이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한 걸까? “직장인들은 정리해고를 걱정하고 자영업자들은 언제 사업이 망할까 걱정합니다. 자녀 교육비 부담은 늘고, 집값 대출에 전전긍긍하는 게 지금의 4050세대죠. 그런데 일부 세력이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김 교수는 이번 11월 항쟁을 2011년 미국에서 발생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의 ‘한국판 버전’이라고 주장했다. 탐욕의 월가에 대한 분노가 대중을 2011년 뉴욕 맨해튼으로 모이게 한 것처럼, 2016년 11월 광화문광장에 모인 대중은 ‘상위 1%로 대표되는 특권층과 재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주화를 경험했지만 졸업 후 마주한 현실에서 6월 항쟁 세대는 기득권에 안주했다”면서 “입시 지옥과 취업난을 걱정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4050세대의 걱정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11월 항쟁 세대(3세대) 김영길 성균관대 국문과 4학년

“‘금수저’ 정유라 SNS 글 보며 대학가 분노” 

 

김영길 성균관대 국문과 4학년 © 시사저널 임준선
김영길씨는 1년 전부터 전국 대학생 조직 ‘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해 왔다. 조직 내에서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은 집행위원장이다. 지난 1년간 주요 시국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는 학내에서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시선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런 대학가가 최순실 게이트 이후 술렁거리고 있다. 대학마다 동맹휴업을 결의하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고 있는 것이다. 김씨 자신도 1년 만에 변한 주변 모습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정유라씨가 SNS에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 원망해’라고 올린 게 컸던 거 같아요. 학자금 대출 이자도 못 갚아 허덕이는 친구들이 제 주변에 얼마나 많은데요. 정씨가 ‘금수저’로 태어난 걸 자랑한 것에 대해 다들 분노합니다.”

 

시국에 대해 토론을 벌이던 상아탑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취업과 학점, 등록금 문제가 자리 잡았다. 이들에게 정치는 한가한 말장난이었다. 김씨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이걸 어디다 쏟아내야 할지 다들 몰랐는데, 이번 광화문 촛불집회가 대학가 분노의 해방구가 됐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11월 항쟁 이후 학내에 ‘소외된 약자를 배려하자’는 관심이 커졌다. 인터뷰 동안 김씨는 ‘부끄럽다’는 표현을 많이 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국 지식인들이 ‘부끄럽다’고 말한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11월 항쟁은 정치권·정치검찰·부패언론이 모두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능했다는 것을 과연 새누리당 사람들이 몰랐을까요? 그렇다면 직무유기죠. 핵심공약이었던 반값등록금을 당선 이후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을 보면서 대학가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리더였다는 게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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