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의 거짓말은 진실을 이길까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2.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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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7일, 김기춘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청문회 증인석에 앉았다. 올해로 77세.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지만 그의 답변 태도에선 여유가 한껏 느껴졌다. 

 

그는 11월22일 《연합뉴스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순실씨와 관련한 의혹들을 전면 부인하면서 “(비서실장 재직 당시) 최씨의 국정개입을 까맣게 몰랐고, 그런 점에서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 정황은 그의 발언과는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12월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이하 국정농단 규명 특위)’에서 “최순실 씨의 소개로 청와대에 가서 김기춘 전 실장을 만났다”고 말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기춘 전 실장 소개로 최순실을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시사저널 박은숙

김 전 실장은 50년이 넘도록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법무부, 청와대를 거치며 대한민국 권력 중심에서 살아온 산 증인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오래 ‘버텨온’ 그다. ‘책잡힐 만한’ 말은 하지 않도록 자연스레 훈련됐다. 어떤 말을 기억해야 하고 어떤 말을 잊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을 해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인물이다. 

 

때문에 그가 국정농단 규명 특위의 증인으로 참석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그의 입에서 시원한 고백이 나올 거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어느 패기 넘치는 정치인이 그를 향해 속 시원한 ‘팩트 폭력’을 날리고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기를 바라는 일말의 마음은 누구에게라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12월7일 오전 국정농단 규명 특위에서 특위위원들과 김 전 실장이 보여준 ‘밀당’은 김기춘의 승리로 보였다. 그가 보여준 태도는 청문회장에 있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정계 진출 ‘선배’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듯 했다. 주요 질문에 ‘아닙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를 반복하며 오히려 반박하고 가르치려는 듯한 여유까지 보였다.

 

특히 “시신 인양 X, 정부 책임, 부담” 등의 민감한 내용이 적힌 채 발견된 고(故) 김영한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회의를 하다 보면 노트를 작성할 때 개인의 주관이 가미될 수 있다” “급서를 하다보니 기록이 남은 건데 비망록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답변에 질문을 하던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당신은 죽어서 천당 가기도 어렵겠다”는 거친 언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 그도 당황한 듯 침묵을 보이던 순간이 있었다. “김기춘 증인 입으로 대통령이 세월호 당시 청와대에서 집무를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한 증인의 입으로 대통령이 관저에서 무엇을 하는지 사사로운 것까지 알 수는 없다,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증인은 대통령 관저 내에 사사로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의 지적이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앞서 “대통령실 비서실장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공식적인 일정 외에는 알지 못한다”며 ‘세월호 7시간’, 그 의혹의 시간동안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었으나 그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답변을 한 상황이었다. 

 

황 의원의 이어진 질의 내내 침묵하던 김 전 실장은 “관저도 올라가보면 집무하는 장소가 있고 주무시는 내실이 있는데 거기서 일어나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었다”며 “역대 여러 대통령님께서도 관저에서 일을 많이 보셨다. 머리를 어쩐다느니 화장실을 간다느니 이런 사사로운 일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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