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냐, 사임이냐 예우는 천양지차
  • 구민주 기자 (mjooo@sisapress.com)
  • 승인 2016.12.12 10:37
  • 호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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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해도 금고 이상 형 확정되면 예우 박탈

“일정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가결된 직후인 2004년 3월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대통령의 다음 날 일정 문자엔 이 한 줄만이 적혔다. 가결 직후 대통령의 모든 직무 권한이 고건 국무총리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신분만 유지된 채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날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기각 선고가 있던 5월14일까지 63일간의 관저 칩거생활을 이어갔다. 단 4차례의 공식적인 외출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청와대 내에서 독서와 토론, 산책 등으로 소일하며 보냈다. 노 대통령은 당시 생활을 두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11월2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장 180일 동안 대통령 권한 정지

 

박근혜 대통령의 2017년 봄은 이보다 더 깜깜할 전망이다. 12월9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박 대통령이 가진 모든 직무 권한은 정지됐다. 헌법 65조에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탈된 권한은 모두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자동 위임된다. 황 총리는 180일 이내에 결정될 헌법재판소의 최종 심판이 나올 때까지 국군통수권, 계엄선포권, 공무원 임명권 등 법률상 대통령의 권한을 갖고 국정운영을 총괄한다. 만약 헌재가 탄핵 인용(찬성)으로 판결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60일이 더 연장된다. 그렇게 되면 무려 240일(8개월) 동안 국정을 총괄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국회 탄핵으로 직무는 정지돼도 신분은 유지된다. 현재까지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관저에 머물며 헌재의 탄핵 심판을 준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약 1800만원의 월급 역시 그대로 지급되며 경호 인력도 유지된다. 대통령 신분이 주는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 불소추 특권 역시 그대로 누릴 수 있다는 게 대다수 학자의 견해다. 다만 애초에 이 특권이 대통령 직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직무정지를 당한 대통령에게 굳이 유지시킬 필요가 있냐는 반론은 제기될 수 있다. 탄핵 가결로 수사 부담을 덜어낸 특검이 이 같은 주장을 펼치며 강제 수사를 강행할 수도 있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헌재 심리를 거쳐 헌법재판관 6인 이상에 의해 탄핵이 인용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선 그간 유지된 대통령으로서의 신분이 상실되며 대통령은 궐위(闕位·사실상 자리가 빔) 상태가 된다. 따라서 헌법 68조 2항에 따라 궐위된 때부터 60일 이내에 반드시 대선을 치러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헌재가 주어진 180일을 모두 채운 후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최소한 8월 이내엔 선거가 치러진다. 국가 혼란과 민심을 고려해 헌재가 예상보다 빨리 결정을 내릴 거라는 관측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찜통 대선’이 아닌 ‘벚꽃 대선’이 치러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기간과 관계없이 대선 전까지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은 계속된다.

 

 

탄핵, 연금 1억5000만원도 못 받아

 

대통령 신분이 박탈되니 자연히 불소추 특권이라는 방패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은 현재 제기되는 뇌물죄 등 혐의로 즉시 기소돼 형사처벌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야당이 탄핵소추안 초안에 박 대통령의 뇌물죄를 명시한 것 역시 헌재의 빠른 인용 결정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과 동시에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 또한 대부분 박탈당한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은 퇴임 후 매년 약 1억4800만원(지급 당시 대통령 보수연액의 95%)의 연금을 받는다. 그 외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을 둘 수 있고, 민간단체에 의해 전직 대통령 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을 진행할 때도 국고 지원을 받는다. 본인 및 가족에 대한 국·공립 병원에서의 무상진료도 이뤄진다. 정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 등 전직 대통령 예우에 대한 2017년 예산으로 모두 19억1000만원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2004년 3월11일 탄핵 정국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노무현 대통령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법률 제7조에 따라 재직 중 탄핵 결정을 받아 퇴임한 경우 신변 경호, 자택 경비를 제외한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경호는 최장 15년 동안 대통령 경호실에서 담당하며 이후에는 경찰청 소관으로 넘어간다. 탄핵되든 사임하든 박 대통령의 경호 비용으로는 연간 약 6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탄핵 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4항에 따라 사후 국립묘지에도 안장될 수 없다.

 

반면 헌재의 탄핵 심판 과정 중 스스로 물러날 경우 모든 예우는 고스란히 지켜진다. 탄핵과 달리 헌법엔 사임에 대한 예우 제한이 특별히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임하더라도 금고 1년 이상의 형을 받으면 예우 대상 자격이 자동 박탈된다. 1997년 내란 및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 박 대통령은 탄핵·사임 여부를 떠나 퇴임 후 검찰 및 특검의 수사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거론되는 직권남용·강요죄를 비롯해 뇌물죄 등에 대한 재판 결과에 따라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무소속 이찬열 의원은 11월21일, 박 대통령이 사임한 경우 형사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박탈하는 일명 ‘박근혜 대통령 예우 박탈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후 예우를 누릴 여지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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