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말 바꾸기와 거짓말의 같은 듯 다른 차이
  • 남인숙 작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28 15:41
  • 호수 14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불리하거나 약속을 맺은 이유가 사라졌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또 지켜서도 안 됩니다. 모든 인간이 선하다면 이 조언은 온당하지 못한 것이겠지만, 인간이란 본래 사악하고 신의 없는 존재이니 그들과 맺은 약속에 구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군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항상 둘러댈 수 있습니다.’

‘악마의 책’이라고 불리며 오랫동안 금서(禁書)로 터부시되기도 했으나, 현대 정치학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는 《군주론》의 한 대목이다. 마키아벨리가 오로지 이탈리아의 통치자 로렌초 데 메디치 한 사람을 위해 써서 올린 이 편파적인 지침서를 완벽하게 체화한 것 같은 사람들을 내 나라 미디어에서 무더기로 보게 되는 요즘이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전후로 눈 어지럽게 오가던 말(言)의 변신들이 때론 실망으로, 때론 조롱으로 뭇매를 맞다가, 이젠 법정에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말을 바꾼다는 것은 정치인의 본질이기도 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내린 판단을 수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인데, 정치인은 보통 사람들이 혼자 간직할 뿐인 생각을 그때그때 말로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더 잘 드러나는 것이다. 정치인의 정의가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을 뜻한다면, 말을 바꾸게 될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정치인이 가장 나쁜 정치인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마키아벨리식 말 바꾸기인지, 정치인의 본질에 충실하다 보니 따라오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인지에 대한 구분이다.

 

 

© 시사저널 박정훈

필자는 고민을 상담해 오는 청년들이 연인의 말 바꾸기 때문에 걱정을 하면, 그게 무언가를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의 일부인지, 아니면 진심이었으되 생각이 바뀐 것인지부터 판단하라고 조언한다. 만약 전자의 상황이라면 심각하게 이별을 고려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생각의 변화의 산물이라면 사람 자체를 재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변화된 생각에 동의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결국 ‘진심’의 문제인 것이다.

 

요즘 같은 말 바꾸기의 잔치 속에서 상식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진심을 골라내기보다 거짓을 솎아내는 게 차라리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한없이 힘이 세고 영리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책 없이 어리석기도 한 백성을 예측하기란 어렵다. 때론 거짓에 분노하지만 또 다른 시점에서는 믿고 싶은 것을 그대로 믿기 위해 거짓조차 정당화한다. 피곤한 진실보다는 보다 받아들이기 편한 거짓을 택하기도 한다.

 

나쁜 연인에게 끊임없이 기만당하면서도 쉽게 헤어지지 못하는 을(乙) 입장의 연인에게 ‘당장 헤어지라’고 입 맵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사는 어려운 연애보다도 더 어렵다. 연애에 대해서는 쉽기만 한 것, 즉 ‘거짓말은 가장 나쁘다’는 명제가 거시적인 인간사로 나가면 왜 이렇게 복잡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