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경쟁력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
  • 유창선 정치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28 16:07
  • 호수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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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 이미지 정치 넘어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2월20일 기자들 앞에서 “국가에 도움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19대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출사표로 해석되는 말이다. 마침 그 직후 새누리당에서는 비박계가 집단 탈당을 결의하고 보수 신당 창당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그래서 반 총장과 비박 신당의 연대 가능성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제 2017년 대선의 시계가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반기문 변수는 대선 판도의 불가측성을 높이는 최대 변수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반 총장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몰락하는 가운데서도 동반 추락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반 총장이 사실상 새누리당, 그것도 친박이 미는 대선 주자로 인식돼 왔음을 생각하면 매우 운 좋은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약 새누리당에 이미 발을 디딘 상황이었다면 그 역시 추락을 면하기 어려웠겠지만, 일단 그는 새누리당과 분리된 반기문이 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편이다. 리얼미터의 12월 3주 차 주중(19~21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반 총장은 23.1%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2주째 상승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다시 1위로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조사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반 총장이 아직까지 대선 행보에 나선 것도 아님을 감안할 때, 여권이 몰락한 가운데서도 지지율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것은 분명 강한 흐름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그의 강세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관건은 그가 함께할 세력이다. 아무리 유엔 사무총장 출신이라는 화려한 프로필을 내건다 해도, 개인 반기문으로 대선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력이 뒷받침돼 안정적 신뢰를 주지 못하는 후보를 향한 지속적 지지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12년 대선 정국을 앞두고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안철수가 결국에는 꺾여버렸던 것도 ‘나 홀로 후보’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였을 것이다. 그래서 반기문이라는 인물이 어느 세력을 기반으로 대선에 뛰어드느냐가 그의 경쟁력을 크게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2016년 5월29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박 신당 후보로 대선 치를 가능성 커

 

그런데 반 총장은 귀국하더라도 곧바로 어떤 정당을 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도로친박당이 된 새누리당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선 주자들이 넘쳐나고 정체성도 다른 야당 쪽으로 갈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국민의당은 자기들에게 와서 경선을 치르자고 하지만, 반 총장이 구태여 그런 모험을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 반 총장의 눈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어울리면서도 혁신 보수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비박 신당으로 우선 향할 것이 유력시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당연히 느낄 것이다. 비박 신당 또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공동책임이라는 원죄를 갖고 있는 세력이기에, 그들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자신의 강점을 다 사라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새누리당 출신 세력들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세력들과의 연대가 절실하다. 그래서 반 총장이 원하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자기를 중심으로 비박 신당, 국민의당, 제3지대 정치인들이 함께 모이는 것일 게다. 하지만 국민의당 안철수가, 제3지대의 손학규가 반기문의 손을 들어주는 길을 택할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비박 신당은 반기문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진 뒤, 개헌을 고리로 하는 ‘반(反)문재인 연합’을 시도하겠지만, 제3지대의 동상이몽 현실은 그것을 쉽지 않게 할 것이다. 결국 반기문은 비박 신당 후보로서 다자구도 속에서 대선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절대적인 선두주자가 없는 상태에서 다자구도는 판세의 유동성을 높여주게 된다. 반 총장이 안정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고, 그의 지지율 추이 또한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그의 강점은 아직까지 정치에 발을 딛지 않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인물이라는 점이다. 대선 때마다 유권자들은 새로운 제3의 인물을 선호하는 현상을 보이곤 했다. 반 총장은 관료로서는 익숙한 사람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이 많다. 반 총장이 대선 주자로 부상한 이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했던 것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그가 상당 부분 흡수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인물들에 대한 만족 지수가 높지 않은 환경에서는 이미지만 갖고도 반 총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새누리당에서 이탈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 전통적 보수층에게는 반기문 정도면 돌아갈 수 있는 무난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있을 법하다. 반 총장이 아무런 노력이나 성과 없이도 전통적 보수층의 지지를 거저 얻다시피 하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의 경쟁력을 낙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전혀 검증되지 않은 주자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가 왜 대통령선거에 나오려고 하는지, 어떤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과 정책들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에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유엔 사무총장직에 있었으면서도 한반도 위기 해결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과 성과를 보여준 것도 없다. 대한민국 발전과 포용적 리더십을 말했지만, 그것을 위한 자신의 능력과 정책들을 보인 바가 없다. 반 총장의 말들은 추상적이고 막상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해 왔다. 이미지 정치의 한계다.

 

 

이미지만으로 대통령 되기 쉽지 않은 환경

 

다른 대선 주자들은 정치적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리더십, 정책과 노선에 대한 검증과 평가를 받아왔지만, 유독 반 총장에게는 그 과정이 없었다. 앞으로 있게 될 검증 과정에서 국가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콘텐츠를 보유한 인물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그의 지지율은 언제든 거품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갈 곳을 잃어버린 전통적 여당 지지층의 기본적인 지지는 있겠지만, 표의 확장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게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박근혜 트라우마’는 국민들로 하여금 이미지만 갖고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의 위험성을 일깨워 줬기에, 겉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만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쉽지는 않은 환경이 됐다. 반 총장이 2017년 1월에 귀국하고 조기 대선이 5~6월께 치러진다고 예상해 볼 때, 그 기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다. 탄탄한 자기 실력이 없으면 무너질 수도 있는 기간이다. 경쟁자가 여럿 있는 다자구도는 그만큼의 치열함을 동반한다. 평생을 관료로 평화롭게 살아온 그가 과연 그 정글 속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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