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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평양 Insight] ‘로열패밀리’ 정조준한 태영호 北 공사

적극적 외부 활동 암시…‘태영호 입’에 세계 언론 주목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30(Fri) 09:52:21 | 14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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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김정은 정권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북한체제를 ‘공포정치에 시달리는 노예 국가’라고 규정한 뒤, 그 허상을 폭로하는 활동을 새해부터 적극 벌일 것임을 공언한 것이다. 엘리트 북한 외교관인 태영호 공사는 2016년 7월말 런던에서 탈북 후 망명해 서울로 향했으며 그동안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아왔다. 그는 12월19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일부 위원과 만나 이 같은 각오를 밝힌 것으로 이철우 정보위원장은 전했다.

 

태 공사의 언급이 주목받는 건 한국으로 망명한 최고위급 외교관(부대사급)인 그가 김정은 체제의 민감한 내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태영호 공사는 영국을 무대로 김정은 체제를 외부에 선전하고 인권문제 등 북한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을 앞장서 막아내는 역할을 해 왔다. 유창한 영어를 무기로 BBC 등 현지 언론뿐 아니라 유력 외신들을 상대로 친분을 유지하며 북한의 체제논리를 은밀하게 전파하는 임무도 맡았었다. 동남아 지역 해외 공관에 근무하다 탈북·망명한 전직 북한 외교관은 “태 공사의 경우 다른 외교관이나 대표들보다 훨씬 자유롭게 현지 관리나 기자들과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며 “런던을 무대로 벌어진 북한의 대(對)유럽연합(EU) 외교 공작활동의 내막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작원이나 친북 성향 교민을 활용한 북한의 대남·해외 활동은 물론 현지 정착 탈북자 관련 정보활동 등도 태영호 공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무엇보다 베일에 싸여 있는 평양 로열패밀리의 내부를 알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고 나설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세계적인 팝스타 에릭 크랩튼의 공연을 보기 위해 2015년 5월 런던을 찾았을 때 수행을 도맡은 북한 대사관 직원이 바로 태영호 공사다. 태 공사는 당시 선글라스를 쓴 김정철을 밀착 동행하면서 통역과 안내·경호 등을 챙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기도 했다. 김정철의 영국행과 체류 과정을 책임지는 과정에서 김정은과 김정철의 관계 등 좀체 드러나기 어려운 정보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평양 측으로부터의 지시 사항이나 김정철의 언급 또는 통화내용, 동행한 북한 인물들의 신상 등도 대북 정보 당국으로서는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 시사저널 박은숙


태영호 “김정은만 무너지면 북한 무너질 것”

 

평양 엘리트층 내부 정보나 김정은 체제에 대한 최근의 인식 등도 드러날 수 있다. 태 공사의 부인 오혜선씨는 북한의 최고 계층으로 간주되는 이른바 ‘항일빨치산’ 집안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오백룡 전 노동당 군사부장, 그의 아들인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과 혈연관계라는 얘기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정권에서 ‘슈퍼 금수저’로 자리 잡은 집안이니만큼 북한 엘리트 계층의 동향 등 알토란 같은 정보를 지니고 있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태 공사는 첫 데뷔 무대라 할 수 있는 국회 정보위원들과의 만남에서 김정은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김정은 한 사람만 어떻게 되면 체제가 완전히 무너진다”고 말했다. 또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대외 공개 활동을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친인척 등의 신변안전을 고려해 비공개에 부치거나 김정은 비판 발언을 자제하던 이전 고위급 탈북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북한 체제 내부의 깊숙한 정보까지 전하며 향후 김정은 체제를 겨냥한 추가 폭로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태영호 공사는 2015년 봄 처형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관련해 “집에 도청장치가 설치된 줄 모르고 말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엘리트층은 마지못해 충성하는 시늉을 하고 있고, 주민들도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심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태영호 공사는 새해부터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출근한다. 이곳에는 앞서 한국행을 택해 정착한 동료 외교관이나 고위 노동당 간부 등 말이 통하는 동료 10여 명이 근무하고 있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태 공사의 경우 북한체제 비판을 작심하고 나선 데다 탈북·망명 과정에서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특별 경호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은 태 공사의 외부 강연이나 기고·저술 등의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태 공사의 외부 강연, 기고 적극 지원”

 

문제는 국정원과 관계 당국이 일관성 있는 자세를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97년 2월 탈북·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북한체제 비판활동을 돕겠다’는 김영삼 정부의 약속을 받고 한국행을 택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10년 동안 대북 햇볕정책이 펼쳐지면서 황장엽 비서는 설 땅을 잃었다. 국정원과 정부는 태도를 돌변해 황 비서의 ‘북한 민주화 구상’을 “편협한 북한 붕괴론적 시각에서 냉전적 사고를 확산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미 의회 증언을 위한 황장엽의 미국행을 막았다. 결국 황 비서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2010년 10월 안가에서 쓸쓸하게 숨졌다.

 

태영호 공사는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북한 주민이 억압과 핍박에서 해방되고 민족의 소망인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일생을 바칠 것”이란 각오를 보이고 있다. 황장엽 망명 당시의 결연함에 결코 뒤지지 않는 모습이다. 경우에 따라 태 공사의 향후 행보는 김정은 체제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서방세계를 대상으로 김정은 정권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던 엘리트 외교관이 체제를 등졌다는 것만으로도 평양 권력의 핵심부가 느낄 충격파는 클 것이란 점에서다. 출범 5년을 넘기면서 권력기반을 다지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정은에게는 뜻밖의 복병이 되는 셈이다. 태영호 공사의 입과 그가 쏟아낼 북한 내부 정보에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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