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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저성장’, 정상적인 경기 패턴으로 받아들여야

IMF 그 후 20년…외환위기 후 첫 3년 연속 2%대 성장, ‘불황 터널’ 진입한 한국 경제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7.01.02(Mon) 08:28:13 | 14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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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2007~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렇다면 2017년은? 앞선 두 해의 공통점은 우리나라와 세계 경제 전체를 뒤흔든 대불황이 찾아왔다는 점이다. 10년마다 찾아온 위기 패턴 속에 2017년 새해 전망도 밝지 않다. ‘일본형 장기 불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한국과 일본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 IMF 외환위기 20주년인 2017년 한국 경제를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IMF 직접 지원과 미국 및 일본, 국제기구 등의 협조융자를 포함해 모두 570억 달러를 긴급 지원키로 합의했습니다.” 1997년 12월3일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미셸 캉드쉬 IMF 총재 옆에 앉아 침통한 표정으로 구제금융안에 서명했다. 당시 캉드쉬 총재는 우리 국민에게 ‘저승사자’로 인식됐다. 긴급 자금을 지급하면서 IMF는 우리 정부에 많은 변화를 주문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란 더 이상 없다’ ‘금리를 올려라’ 등 IMF식 단기 처방은 추후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떨어트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1997년은 변곡점으로 삼을 만하다. 당시 언론은 1997년 12월3일을 가리켜 우리나라가 경제 주권을 잃은 ‘국치일’로 평가했다.

 

‘IMF 사태’로 불린 외환위기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처음으로 여야 정권이 교체된 시기에 맞은 국가적 비상사태로 대형 금융기관들이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 대기업들은 연쇄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100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가 쏟아졌는가 하면, 금리는 30%대까지 치솟았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면서 구조조정이라는 현실을 맛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다. 기업 내 ‘도전정신’이 쇠퇴하고, ‘위험관리’와 ‘보신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사실상 이때부터다. 예상보다 빨리 IMF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지만, 이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소득 불평등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보를 역임하고 훗날 산업자원부 장관에까지 오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당시 상황을 기록한 《IMF징비록》에서 “나를 비롯한 관료 사회 전체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잘해 보자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오판’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연합뉴스


‘경기는 심리’, 불안 심리가 우리 사회에 팽배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2007년은 다시 세계 경제가 요동친 한 해다. 미국 내 서브프라임모기지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경기 불황의 서막을 알렸다. 급기야 이듬해인 2008년 미국 내 투자은행(IB) 규모 4위였던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했다. 이른바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뒤덮은 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에는 ‘10년 주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요지는 간단하다. 경제 위기가 10년 주기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경기는 심리’라는 말도 있듯, 불안 심리는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하다. 서점가에 경기불황을 우려하는 책이 앞다투어 출간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선, 외형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1997년 1월말 271억 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2016년 11월 현재 3719억 달러로 13배가량 늘어났다. 외환보유액으로만 따지만 세계 8위권에 해당한다. 1997년 12월24일 1964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현재 1200원 선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제조업부채비율의 경우, 1997년 말 396.3%까지 올랐던 것이 2016년 3분기 현재 68.5%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단기 충격에 대한 정부·기업의 대응이 빨라졌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대목이다.

 

하지만 내실은 절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세계 유수의 경제 기관들은 우리 경제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7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016년(2.7%)보다 낮은 2.6%로 잡았다. OECD는 관련 보고서에서 “2016년에 비해 내년 한국 정부 지출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참고로 OECD는 2017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3%로 내다봤다. 또 다른 국제금융기구인 IMF 역시 2017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대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 교차로에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최근 1~2년 사이 부쩍 많이 내걸려 있다. © 연합뉴스


일본 경제 불황, ‘추격형 성장 모델의 한계’

 

국내 연구기관들의 시각도 별반 차이가 없다. 물가와 통화를 관리하는 한국은행은 2016년 12월22일 국회 기획재정위에 제출한 현안보고서에서 “최근 국내외 여건을 종합해 볼 때 내년(2017년) 성장률은 직전 전망 수준(2.8%)을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3년 연속 2%대인 것은 IMF 외환위기 후 처음이다. 또 한국금융연구원은 2.5%,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로 각각 내다봤다. 대기업 계열 민간경제연구기관인 LG경제연구원은 이들 기관보다 더 낮게 2.2%로 전망했다. 2.2%는 LG경제연구원이 경제성장률을 조사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보고서에서 연구원은 2017년 한국 경제는 중장기적인 잠재성장세 저하의 흐름과 단기적인 수요 둔화가 맞물리면서 성장세가 2016년에 비해 뚜렷하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제 성장이 내수와 서비스업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될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우리나라 수출산업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로 치닫고 있는 가계부채도 한국 경제에 잠재된 뇌관이다. IMF 등 세계 주요 기관들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꼽고 있는 것 역시 가계부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9년 775조원이었던 가계부채총액은 2016년 3분기 1295조원으로 70.0% 늘어났다.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계수 값도 2015년 0.30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니계수 값이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하다는 뜻이다. 참고로 1997년 한국의 지니계수 값은 0.27이었다. 또 다른 소득분배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은 2015년 3분기 4.46에서 2016년 3분기 4.81로 악화됐다.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보다 4.81배 많다는 뜻이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016년 말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통화 당국이 FRB처럼 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계부채 뇌관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 인상은 한계가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통화 당국이 금리를 1% 올릴 경우, 가계대출 연체금액이 5조원가량 늘 것으로 예상한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의 금리 차 역전에 대해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규모 자금이탈을 겪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형 복합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1990년대 초반 시작돼 20년 넘게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일본 경제의 전철을 우리가 그대로 밟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토 세이치로(齊藤精一郞) 일본 릿쿄(立敎)대 교수는 저서 《일본 경제 왜 무너졌나》에서 일본 경제 불황 이유를 ‘추격형(Catch up) 성장 모델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를 성공 모델로 보고 따라온 우리 경제 시스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992년 9.1%, 이듬해 14.6% 추락한 도쿄 집값은 거품으로 치달은 일본 경제를 상징한다.

 

 

우리가 일본식 경기 불황을 따라갈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패턴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아서다. 제로 금리와 성장률 하락, 주식시장이 장기간 박스권을 이어간 우리네 모습은 일본 경기 불황과 닮은꼴이지만, 집값 급락이 실물경기 위축으로 전이(轉移)되지 않은 점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점차 낮아지는 경제성장률과 청년실업률, 물가상승률 등 주요 경제지표는 쉽게 볼 사항이 아니다. 기업 스스로가 앞으로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의 척도인 설비투자지수는 2016년 하반기 동안 8월에만 전년 동기 대비 3.1% 늘어났을 뿐, 나머지 달은 4~12%가량 감소했다.

 

2016년 5월 일본과 한국 경제에 대한 비교연구 결과를 담은 책 《불황터널》을 펴낸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IMF가 발표하는 GDP(국내총생산) 갭을 보면 우리 역시 일본식 장기침체에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질 GDP와 잠재 GDP의 괴리를 보여주는 GDP 갭으로 볼 때 4년간 마이너스를 기록한 우리나라는 일본의 장기침체 초기(1992~95년)와 패턴이 비슷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정부가 재정·통화정책을 펴도 경기가 움직이지 않는 정책 함정(Policy Trap)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 용어로는 이를 가리켜 ‘유동성 함정’이라고 말한다. OECD는 2031~60년까지 한국의 평균 잠재성장률을 0.55%로 예상했다. OECD 회원국 평균치(1.58%)의 3분의 1 수준이다.

 

고령화로 치닫는 사회구조 역시 한국 경제에 드리운 장기불황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국가 경제에 있어서 인구 구조 변화는 숨겨진 복병이다.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근간을 뒤흔들 만한 위험요소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는 노동시장 위축으로 이어지며, 이는 기업의 설비투자를 줄어들게 만든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 생산성은 중요한 요소다. 인구 고령화는 1인당 국민소득을 줄이고 이는 소비와 저축률마저 감소시킨다. 그러다 보면 기업의 수익성은 자연스럽게 악화되면서 투자 감소에 따른 개인의 금융자산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내수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세금 수입 감소로 국가 재정은 불황의 늪에 빠진다. 불황의 전형적인 악순환 구조다. 실제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장기 불황은 인구구조 변화에서 시작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장기 저성장기, 가계·기업 ‘생존 해법’ 찾아야

 

종합하면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기조에 돌입했다고 봐야 한다. 5% 이상의 고성장은 과거의 화려한 영광에 지나지 않는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서 서울특파원과 산업부장 등을 지낸 다마키 다다시(玉置直司) ‘법무법인 광장’ 고문의 진단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한국 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를 쓴 그는 “한국도 일본처럼 길고 긴 저성장의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책에서 그는 “‘경제 정체는 일시적일 거야’ ‘누군가 위기를 타개해 주겠지’ ‘좋은 상품만 만들면 팔리겠지’ ‘우리 세대까진 괜찮겠지’ ‘고령화 사회는 먼 미래’ ‘그래도 우리나라는 특별하다’는 등의 일본 사회 내 착각이 경기 회복의 장애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기업이나 개인 모두 지난 2~3년 동안 세계 경영학계에서 화두로 자리 잡은 ‘뉴노멀’(New Normal)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제 ‘장기 저성장’을 하나의 정상적인 경기 패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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