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續舊(속구)’…물거품 된 送舊迎新(송구영신)
  • 김현일 대기자 (hikim@sisapress.com)
  • 승인 2016.12.30 09:19
  • 호수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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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送舊迎新). 선인들의 지혜가 듬뿍 배어 있는 말입니다. 곱씹을수록 그 철리(哲理)에 찬탄을 하게 됩니다. 인류의 위대성 징표가 시간을 개념화(conceptualization)한 것이라면 송구영신은 이를 삶 속에 응용한 걸작 중의 걸작이라 할 만합니다.

 

국어사전은 송구영신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바뀜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엔  회한과 과오 등 올 한 해 쌓인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씻어내고 밝음을 향해 나가자는 격려와 소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비가역적(非可逆的), 연속적, 무한한 흐름’으로 정의되는 시간이고 보면 이전의 자정과 12월31일 자정이 하등 다를 게 없음에도 전혀 다른 신천지가 도래하는 것처럼 마술을 부린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선’ 하나를 그어놓고 이런 엄청난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으니 대단하지요.

 

 

© 시사저널 최준필

갑자기 철학자처럼 얘기하는 까닭은 간단합니다. 매년 이맘때 의례적으로 써온 말이지만 지금처럼 무겁게 다가온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2016 병신년(丙申年) 한 해가 어땠는지는 새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국정 농단’으로 요약되는 대통령의 황당한 행보로 대다수 국민들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로 인한 자괴(自愧)는 치유가 어려운 아픔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12년 만에 재연된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비극 속에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는 엉망이 됐습니다. 거저 얻은 게 많은 야당도 시궁창에 함몰된 나라살림에다 국제적으로 뻗친 망신살을 감안하면 마냥 희희낙락할 계제는 아닐 겁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누대(累代)에 걸친 최고 치료제 송구영신마저 써먹을 데가 없어서입니다. 예년에는 섣달 그믐날 골치 아픈 흉·잡사(凶·雜事)들을 털어내고 새 분위기 속에, 새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했는데 2017 정유년(丁酉年)엔 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붉은 원숭이; 丙申’에서 ‘붉은 닭; 丁酉’으로 상징 동물(띠)만 바뀌는 게 고작입니다. 送舊를 못해 ‘속구(續舊)’가 되다 보니 迎新은 애당초 꿈도 못 꾸게 됐습니다. 아니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안 심리와 대통령의 버티기가 본격화되면서 타기(唾棄)할 ‘舊’는 되레 극성을 떨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대통령선거를 극단의 비정상 상황에서 치르게 됐으니 난리 북새통은 각오해야 합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재판을 기다리는 형사 피의자로 전락해 국고나 축내고, 대행 체제의 식물정부는 건성이고, 철딱서니 없는 ‘과거 여당’은 여전히 쌈질이나 벌이고, 별반 나을 게 없는 야당은 때 만났다며 목청이나 높일 터이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갑갑해집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이런 군상들이 지도자랍시고 설치는 꼴을 더 봐야 하니 더 딱해집니다. 다 쓸어냈으면 하는 게 많은 이들의 심정일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대선을 기회로 삼지요. ‘그 나물에 그 밥’, 구악(舊惡)들의 귀환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면 12월31일 자정에 갖지 못한 送舊迎新을 丁酉年 중에는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아무렴! 제아무리 힘들고 암담해 보여도 독자 여러분께 새해 인사는 드려야죠. 복 많이 받으세요. 근하신년(謹賀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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