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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터널, 일본은 빠져나왔지만 한국은 파묻힐 수도

한국 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답습?…20년 전 일본보다 지금 한국 상황 훨씬 더 나빠

임수택 편집위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02(Mon) 08:28:21 | 14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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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되자 일제히 엔고(高)를 예측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기준금리를 0.25% 올리기로 결정하자 엔고를 기정사실화했다. 아베 정부는 20조 엔 투입을 통해 꾸준히 노력해 왔던 엔저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재무성 출신의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경제 금융 전문가 사사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대학 교수는 현재 1달러당 110엔 하는 환율이 90엔 후반대까지 가는 엔고 시대가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많은 경제 전문가와 컨설팅 기관들의 예상과 다르게 엔저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FRB 발표 이전보다 엔저 현상이 더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린다는 소리도 들린다. 아베 정부는 2012년 12월 정권을 인수한 후 5년 차에 들어서고 있다. 양적완화·재정지출·구조개혁 등 3개의 화살로 일컫는 ‘아베노믹스’는 윤전기로 찍어서라도 돈을 풀어 디플레이션을 해결하겠다는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으나, 아직은 순항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는 확실히 자신감을 찾은 모습이다. 사진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2016년 9월13일 도쿄 신주쿠 거리 © AP 연합


‘왜 삼성전자를 못 이기나’ 일본 집중분석

 

2012년 12월 아베 총리 집권 당시 1만230이던 닛케이 주가지수는 2016년 12월21일 현재 1만9974로 2배 가까이 올랐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고용지표도 양호하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유효구인배율도 1.67배로 201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 및 건설 현장에서는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중국·베트남·필리핀 등지에서 인력을 조달하는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오는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도심정비 사업에 한창인 건설부분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직 중소기업과 지역경제까지 정책의 온기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 경제가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베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과 정치적 안정으로 인해 경제가 회복되고 있고, 일본 국민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일본 경제는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1991년 버블이 붕괴되면서 비롯된 소위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불황 지속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 최악으로 치닫던 일본 경제의 문제는 크게 6가지였다. 엔고, 법인세율, 전력 부족, 자유무역협정(FTA) 지지부진, 노동 및 환경 규제 강화, 그리고 민주당 정권의 정치적 리더십 부족이었다. 이 같은 악조건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생산시설을 하나둘씩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일자리의 국내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고용구조는 더욱 악화되었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일본 경제는 좀처럼 회생될 것 같지 않았다. 당시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기 불황으로 인한 경제주체들의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 상실이었다. 일본 내 많은 경제 전문가들과 매스컴에서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비교하는 특집 기사를 다루었다. 일본 IT(정보기술) 기업을 대변하는 소니·NEC·히타치·도시바·후지쓰·샤프 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일본 기업들을 다 합쳐도 한국의 삼성전자 하나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일본 기업들은 자금도 있고, 인재도 있고, 기술력도 있고, 노하우도 있는데, 왜 삼성전자 하나를 따라잡지 못하느냐는 자성의 목소리였다. 한국 경제 발전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일본 경제를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지금 한국은 소비가 줄고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실업자는 늘고 3D 직업을 기피하는 풍조는 여전하다. 기업가 정신도 퇴색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인구구조로 생산연령인구는 점점 줄고 있다. 성장률도 이미 2%대의 저성장 기조로 돌아서고 있다. 이런 연유로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불황 터널에 막 들어서던 시점인 20년 전 일본 경제와 비교하곤 한다. 과연 그런가.

 

 

20년 전 일본, 오늘날 한국보다 훨씬 탄탄

 

일본 경제가 소비절벽으로 지난 20여 년 이상 장기 경기침체에 빠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본을 교훈 삼아 잘 대비하면, 우리 경제도 일본처럼 20년의 불황 터널을 잘 버티고 그 터널에서 순조롭게 벗어나서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이는 장담하기 어렵다. 20년 전 당시 일본 경제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일본의 소비절벽은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일본 국민의 개인 순금융재산은 1328조 엔(약 1경3492조원)에 이른다. 이 중 현금과 예금이 52.7%, 그리고 보험과 연금준비금이 29.8%였고, 나머지도 주식이나 채권 등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소비할 수 있는 풍부한 돈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우리는 현재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이르고 있다. 일본 가계의 경우, 개인은 소비할 수 있는 돈이 있지만, 단지 미래가 불안해서 소비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소비하고 싶어도 소비 여력이 없는 우리 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셈이다.

 

일본 경제와 기업의 기반도 우리보다는 훨씬 탄탄했다. 일본 화폐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통한다. 국제정세가 불안하면 일본 엔화의 가치는 올라간다. 일본은 순대외채권국이다. 채권에서 채무를 뺀 순채권 규모가 3.6조 달러다. 2위 중국이 2.14조 달러, 3위 독일이 1.54조 달러인데, 2·3위와도 크게 차이가 있다. 일본은 대외채권국 1위 자리를 25년간 유지해 오고 있다. 외환보유액도 2016년 11월 현재 1조2330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2위다. 경상수지 또한 30년 이상 흑자를 유지해 오고 있다.
 

탄탄한 펀더멘털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기술의 힘이다. 부품·소재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보가전산업 분야의 경우, 소재·원재료는 전 세계의 66%, 제조설비는 49%, 부품은 32%를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상생 구조도 잘되어 있다. 또 중소기업이 탄탄하다. 우리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관계는 아직 요원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그 비중이 너무 크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5년도 매출은 200.6조원으로, 창출한 부가가치는 77조원이다. 이는 한국 GDP(국내총생산)의 5% 정도를 차지한다. 이에 비해 같은 해 도요타자동차가 창출한 부가가치는 5조 엔(약 51조원)으로, 일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GDP의 1% 정도이다.

 

아시아대학의 고오야마 도시미 강사는 “한국 경제에 있어서 대기업의 경영 부진은 바로 한국 경제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국 경제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GDP에서 차지하는 소비 비율은 60%이지만, 한국은 50%를 밑돈다. GDP에서 소비 비율이 높다고 하는 것은 충분한 인프라가 정비되어 있다는 의미로, 일본 경제는 안정적인 소비경제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 사정에 밝은 가나자와공업대학의 오스나 마사코 교수는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 가계부채,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2017년도 한국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며 “한국 경제의 불투명으로 인해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도 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년 12월30일 도쿄 증권거래소 폐장 행사에 참석, 종을 친 후 채를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P 연합


20년 장기 불황 버틴 일본의 맷집, 한국은?

 

우리 경제도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일본 경제와 마찬가지로 저성장·저소비 구조를 맞이하고 있다. 상위 20%와 하위 20% 간의 소득격차는 4.8배로 ‘부익부 빈익빈’은 여전하다. 성장의 사다리가 붕괴되고 있다. 2016년 실업자 수는 100만 명을 넘어 설 전망이다. 특히 청년실업자(15~29세) 수는 4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일손이 부족해 해외에서 인력을 조달해야 하는 일본 경제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노사 갈등은 지금도 여전하다. 부품·소재 등 원천기술력의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는 아직 요원하다. 정치적 리더십은 오히려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일본이 지난 20여 년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술력, 지속적인 연구개발, 준법경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구조, 꾸준한 구조개혁, 합리적 소비 등 탄탄한 펀더멘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전철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연 일본 경제처럼 20년의 장기 불황을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을까?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본의 경우 국가부채가 GDP 대비 200% 넘는 악조건 속에서도 20년 이상의 기간을 극복하고 회복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데 반해, 국가부채가 GDP 대비 38% 수준의 우리 경제는 이미 경기침체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한·일 간 경제의 질이 다르다는 점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문제의 질이 다르다. 원인 분석을 잘못하면 해법을 찾지 못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새해가 되어야 한다.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고 다시 비상을 준비하는 오늘날 일본 경제의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타산지석으로 삼는 새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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