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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아버지, ‘희망퇴직’ 아들 “세상이 우리를 버렸다”

IMF 유물이 만든 기형적 노동 환경 정리해고가 익숙해진 한국 사회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2.31(Sat) 15:00:23 | 14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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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이 흘렀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이성환(가명·62)씨의 입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매일 손님을 만나 가볍게 말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세월의 기록을 되감기하는 그의 눈시울은 이내 붉어졌다. 그의 얼굴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그리곤 지난 시간들을 조금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파편을 정면으로 맞은 그는 1998년 이른 봄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은행을 떠나야 했다. 잠시 방황하다 음식점을 차렸지만 이내 문을 닫게 됐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아니 아이들 때문에 좌절할 수 없었다. 이후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일주일마다 주·야간 근무를 반복한 끝에 개인택시 면허까지 땄다. 그러던 그에게 최근 찾아온 시련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정리해고와 자영업 실패까지 견뎠던 그에게 ‘참기 힘든 일’은 무엇이었을까.

 

© 일러스트 정재환


20년 만에 반복된 父子의 ‘시련’

 

이씨는 잘나가던 은행원이었다. 상고를 나온 뒤 곧바로 C은행에 입사해 20여 년을 일했다. 그 사이 가정도 꾸렸고, 아이들도 밝게 자라고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 청천병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은행에서 짐을 싸야만 했다. 같은 은행에서 일하던 직원 40%가 같이 잘렸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사실상 ‘강제퇴직’이었다. 한때 회사를 원망했지만, C은행 또한 몇 해 뒤 다른 은행에 합병되면서 이름조차 사라졌다. 그는 운명이라고 여겼다.

 

그는 퇴직 당시 명퇴지원금과 퇴직금을 합쳐 2억원 정도를 받았다. 당시에는 꽤 큰 목돈이었다. 이런저런 일을 알아보다가 음식점을 차렸다. 하지만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든 탓에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한 차례 업종을 변경하면서 가게를 꾸렸지만 또다시 문을 닫았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자 그는 마지못해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그는 큰아들(33) 자랑을 했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큰아들은 서울 유명 사립대에 들어갔다. 그리곤 2010년 국내 최고의 기업이라는 S사에 들어갔다. 훤칠한 외모에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가진 큰아들은 2013년 결혼해 손자까지 안겨줬다. 명예퇴직으로 시작된 그의 고통도 이제 끝이라고 여겼다.

 

그랬던 그에게 2016년 초 견디기 힘든 시련이 찾아왔다. 20년 전 ‘명예퇴직’의 그림자가 큰아들마저 덮쳤다. 한국 경제를 견인해 왔던 S사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5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지만 ‘머지않아 권고사직이 진행될 수 있다’ ‘희망퇴직 조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참지 못한 큰아들 또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20년 전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괜찮다”고 다독였다. 회사에서 나온 큰아들은 “다시는 회사 생활을 하지 않겠다”며 조금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약대 진학을 준비했다. 2016년 8월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을 봤고, 현재 한 지방대 입시에서 면접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아들(29)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지 3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교사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매년 중등교사 임용시험 경쟁률은 10대1에 육박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은 물론 지방 임용시험으로도 눈을 돌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계약직(기간제 교사)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매년 연말이 되면 반복되는 취업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이씨는 두 아들이 겪는 시련을 보면서 “세상이 우릴 버린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IMF 이후 사라진 ‘평생직장’

 

이씨 부자(父子)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정리해고’ ‘희망퇴직’ ‘비정규직’ ‘취업난’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잘나가는 대기업 직원도 구조조정의 칼날에 벌벌 떨고 있고, 입사 2년도 채 안 된 신입사원마저 희망퇴직을 강요받는 시대가 됐다. IMF 이전 너무나 당연히 여겨졌던 ‘평생직장’ 개념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이조차도 누군가에겐 ‘취업문을 통과한 자들의 배부른 이야기’로 치부될 정도다. IMF 때 찾아왔던 충격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반복된 결과다.

 

IMF의 권고로 시작된 노동유연화 정책은 한국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고용이 불안정한 나라로 만들었다. 2015년 말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의 노동 2016’에 따르면,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인 장기 근속자 비율은 20.1%로 칠레(19.5%) 다음으로 낮다. 미국(27.3%)보다도 낮고 독일(41.1%)·프랑스(45.4%)·이탈리아(50.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1년 미만 단기 근속자 비율은 31.9%나 된다. OECD 평균인 19.1%를 훌쩍 넘는 수치다. 그만큼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출발은 IMF 당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였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 경제의 어려움 탓에 노동계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합의했다. 노사정 합의를 근거로 정부는 정리해고를 법제화하고 파견법을 제정했다. 물론 IMF 이전에도 정리해고는 가능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해고를 하지 않으면 기업경영이 위태로울 정도의 급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존재하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을 뒀다. 1998년 여름부터 시작된 만도기계·현대자동차·한국조폐공사의 파업, 극심한 충돌을 벌였던 대우자동차 사태는 정리해고의 일상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이후 노동 유연화 정책은 한국의 노동 환경을 고용불안 상황으로 급격히 바꿔놓았다. 빠르게 비정규직 근로자를 양산했다.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2001년 360만 명, 2002년 380만 명, 2003년 460만 명, 2004년 540만 명(이상 8월 기준)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비정규직 숫자는 874만 명에 이른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45%는 비정규직이라는 의미다. 그나마 하청회사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분류해서 이 정도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제 비정규직 비율은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IMF 당시 충격적으로 여겨졌던 정리해고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 연합뉴스


‘더 쉬운 해고’로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다 보니 정규직 일자리는 줄었다. 이는 곧 사상 최악의 취업난으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임금이 60% 수준에 불과하고, 해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을 택할 사람이 없다. 청년실업률은 올해 11월 기준으로 8.2%다. 2003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규직을 원하는 청년 구직자와 비정규직 근로자를 원하는 노동시장의 불균형 현상이 만든 결과다.

 

이때 정부가 나섰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4월 노사정 협상이 결렬된 이후 ‘더 쉬운 해고’로 일컬어지는 노동개혁 방안을 내놨다. 일반해고 기준과 절차를 정한다는 논리로 ‘더 쉬운 해고’를 허용하고, 정년 연장을 빌미로 임금체계를 줄였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신규 일자리 창출을 막고 있다는 논리였다. 정규직에 대한 혜택을 줄이면 신규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낙수효과’를 기대한 셈이다. 정부가 내놓은 노동 관련 5개 법안은 정국과 맞물려 여전히 국회 관문에 막혀 있지만, 재계는 여전히 강하게 처리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는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편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를 낮추는 대신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도록 했다.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근로시간 주 52시간 상한제를 주 60시간 상한제로 연장하는 내용의 법안도 내놨다. 성과 연봉제를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고 하지만, 노동단체는 ‘평생인턴제 도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노동 개혁이 아니라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며, 노동조건을 쉽게 만드는 노동 개악”이라고 평가했다. 김 연구위원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고, 최저임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연금·실업급여를 확대해 임금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노동계만의 황당한 주장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 기간에 내놓은 공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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