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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모란봉악단 찾은 김정은 ‘음악 정치’ 재개하나

김정은 “음악이 수만 총포, 수천만 톤 식량 대신했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04(Wed) 17:00:28 | 14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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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이 모란봉악단의 공연장을 찾았다. 모란봉악단은 집권 초부터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 관영 선전매체들이 ‘친솔(親率)악단’으로까지 부르던 조직이다. 빼어난 노래, 연주 실력에 미모를 갖춘 여성 멤버들을 두고 ‘평양판 걸그룹’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1년 넘게 공연관람이 뜸하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눈 밖에 났다는 소문까지 돌았고 해체설도 제기됐다. 그런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김정은이 직접 관람함으로써 두터운 신임을 확인해 준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12월29일 보도한 데 따르면, 김정은은 평양에서 열린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의 합동공연을 참관했다. 노동당 초급 당위원장 대회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에 공연 성과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중앙통신은 “새로운 경지의 음악세계를 펼쳐 보인 공연은 대회 참가자들의 절찬을 받았다”고 전했다. 모란봉악단 등을 ‘당 사상전선의 제1나팔수’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제1차 전당(전국 노동당) 초급 당위원장 대회 참가자들과 모란봉악단·공훈국가합창단의 합동 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12월29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2012년 7월 리설주 옆에 앉히고 공연관람

 

김정은이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본 건 2015년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공연 이후 1년2개월 만이다. 모란봉악단은 2016년 5월 청봉악단과 합동 축하공연을 펼친 뒤 7개월 넘게 자취를 감췄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베이징 공연 취소 사태와 관련된 것이란 말이 나왔다. 모란봉악단은 인기 절정을 치닫던 2015년 12월 중국 공연 길에 나섰다. 현지 언론은 물론 한국과 외국 매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정작 예정 시각 3시간을 앞두고 공연을 전격 취소해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김정은 찬양 위주의 레퍼토리를 수정해 달라는 중국 측 요구 때문이란 설도 제기됐지만 미스터리로 남았다.

 

이처럼 모란봉악단의 행보가 이목을 끄는 건 김정은 체제를 상징하는 조직이란 점에서다.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을 창단토록 하고 첫 공연을 관람했다. 당시 바로 옆자리에 앉아 여러 관측을 불러일으켰던 여성이 바로 ‘부인 리설주’(공연 며칠 뒤 북한 매체가 신상 공개)다. 김정일 정권 아래서 인기몰이를 하던 은하수관현악단 가수였던 리설주를 위해 김정은이 자신의 시대를 대표할 악단을 만들어준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 체제에 쏟아진 개혁·개방 기대와 맞물려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첫 공연 때 미국 자본주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캐릭터가 무대에 등장하고  영화 《백설공주》 장면이 배경에 깔리는 등 파격적 구성으로 김정은이 곧 개방에 나설 것이란 기대까지 나왔다. 서방국가 브랜드가 그대로 노출된 전자악기를 사용하고, 어깨가 완전히 드러난 스커트를 입은 여가수들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충격이었다. 북한 TV에는 ‘세계명곡 묶음’이란 설명과 함께 ‘가극 극장의 유령’이란 북한식 제목을 단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주제곡 선율이 울려 퍼지고 곧이어 《오솔레미오》 《백조의 호수》, 팝음악 등이 이어지는 모란봉악단의 공연실황이 되풀이 방영됐다.

 

관심이 몰리다 보니 모란봉악단 단장인 현송월을 두고 김정은과의 염문설이 불거지는 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2013년 가을에는 모란봉악단 단원들이 돈벌이를 위해 문란한 내용의 동영상을 찍었다는 추문이 돌았고,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관여됐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한동안 공식 석상에 따라 나오지 않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런 모란봉악단의 공연장을 직접 찾은 걸 두고 2017년 새해를 맞아 북한이 ‘김정은식 음악 정치’를 본격화하려는 사전 포석이란 진단이 나온다. 북한이 새해를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김정은을 우상화할 시점으로 설정한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는 상황에서 모란봉악단이 다시 등장했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2015년 12월 김정일 사망 5주기를 계기로 김정은을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북한 내 反김정은 정서 점점 심해져

 

하지만 집권 5년 동안의 초라한 성적표로 김정은 띄우기에 나서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포정치로 인한 엘리트 집단의 반감과 이탈에다 민생을 도외시한 핵·미사일 도발까지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볼멘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최근 펴낸 《김정은 집권 5년 실정(失政) 백서》에 따르면, 김정은은 3대 세습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집권 이후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한 고위 간부와 주민 340명을 공개 총살하거나 숙청했다. 백서는 ‘김정은 정권이 집권 5년간 주민 억압, 핵·미사일 개발 및 우상화에 막대한 국고를 탕진했다’고 지적했다. ‘경제 회생을 외면하고 29회의 핵 실험·미사일 발사에 3억 달러, 김씨 일족 동상 건립 등 460여 개의 우상물 제작에 1억8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는 비판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2017년 북한 체제를 전망하면서 ‘김정은 우상화를 위한 막대한 재정 부담과 대규모 주민 동원으로 체제의 균열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의 평양시 건설 프로젝트의 핵심인 여명거리 건설이 차질을 빚는 등 이상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약 90만㎡ 부지에 만들어지는 여명거리에는 주택 4804세대 등이 건립되는데, 2016년 말 완공 목표가 2017년 4월15일 김일성 생일까지로 연기됐다는 게 재미 친북 매체인 ‘민족통신’의 전언이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다 2016년 8월 탈북·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가 전하는 북한 내부의 반(反)김정은 정서는 심각한 수준이다. 태 전 공사는 2016년 12월27일 통일부 출입기자단과의 회견에서 “김정은은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있지만, 집권 5년 차에도 자기 어머니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인 생모 고영희의 신분이 드러날 경우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CNN도 2016년 12월29일 김정은 위원장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는 등 국제사회도 새해 들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우려를 나타내는 분위기다. 안팎으로 김정은이 맞닥뜨려야 할 파고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음악이 때로는 수천이나 수만 총포를 대신했고, 수백·수천만 톤의 식량을 대신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란봉악단을 앞세운 찬양과 숭배로는 벅찬 현실을 헤쳐가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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