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응, 48시간과 24시간의 차이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7.01.05 10:50
  • 호수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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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조류 인플루엔자 신고·확진·컨트롤타워 구축 시간

2016년 11월18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의 철새 배설물에서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11월21일 돗토리(鳥取)현에서도 같은 보고가 이어지자 일본 정부는 AI 경보 수준을 최고 단계인 ‘3등급’으로 올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관저에 AI 정보연락실을 설치해 방역상황을 챙겼다.

 

AI가 농장으로 퍼진 것은 10일 후다. 11월28일 오전 8시30분쯤 아오모리(靑森)현에 있는 식용 오리 농장주는 오리 10마리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신고했다. 9시30분 가축위생보건소 직원이 현장을 찾아 폐사한 오리에 대한 간이검사를 한 결과 AI로 나타났다. 일본 동북지역 일간지 가호쿠신보(河北新報)에 따르면, 아오모리현 공무원은 초동대응 태세를 갖춰 오전 10시40분 해당 농장에 집결했다. 농장 반경 3km 이내를 닭과 달걀의 이동 제한 구역으로, 10km 이내를 반출 제한 구역으로 정하고 닭·오리 등 가금류(家禽類)와 달걀·오리알의 이동과 출하를 금지했다. 동시에 역학조사팀은 현지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를 추적했다. AI 확진은 밤 9시쯤 나왔고 11시에 아베 총리 관저에 AI 정보연락실이 설치됐다.

 

컨트롤타워가 세워지자마자 초동대응이 시행됐다. 11월29일 0시25분 4개 반으로 구성된 아오모리현 공무원 234명은 방호복과 고글을 착용하고 이 농장에서 사육하던 오리 1만6500마리에 대한 살처분 작업에 들어갔고 일본 자위대도 투입됐다. 오전 6시40분 이 농가를 중심으로 10km 이내에 검역소 5곳을 설치해 축산 관계 차량에 대한 소독에 들어갔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현 남부의 한 양계장에서 방역요원들이 분사기로 옷을 소독하고 있다. © AP연합

비슷한 시기에 니가타(新潟)현의 양계장에서도 AI가 발생했다. 농림수산성은 담당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팀을 아오모리현과 니가타현에 급파했다. 니가타현 공무원과 자위대는 11월29일 새벽 4시부터 약 31만 마리의 닭에 대한 살처분 작업을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다카야 가요타카 농림수산성 차장은 아오모리현을 찾아 이른 아침부터 언론 브리핑을 통해 “(매뉴얼대로) 바이러스 확인 시점에서 24시간 이내인 오후 9시45분까지 살처분 작업을 마치겠다. 살처분한 오리는 72시간 이내에 인근 시유지에 매몰 처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중앙정부에서는 오전 9시 관계 장관회의가 소집됐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는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초동대응이 중요하다”며 신속한 방역 조치를 강조했다. 같은 시각, 주무부서인 농림수산성은 AI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의회도 움직였다. 자민당은 아오모리현과 니가타현에 당 차원의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가금류 사육 농장에서 발생한 AI에 대응할 범(汎)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 설립과 살처분 등을 마무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4시간이었다.

 

 

확진 판정 기다리는 동안 AI 전국 확산

 

이보다 한 달 전 한국에서도 AI가 발견됐다. 2016년 10월28일 천안시에서 채취한 철새 분변(糞便)에서 AI가 확진된 것은 보름이 지난 11월11일이었다. 범정부 차원의 방역은 이뤄지지 않았고 경보 수준도 ‘철새 주의’ 단계에 머물렀다. 가금류 농장에서 AI 의심 사례가 발생한 때는 11월16일이었다. 충북 음성군의 식용 오리 농장과 전남 해남의 양계장에서 오리와 닭이 폐사한 것을 농장주가 발견하고 신고했다. 정밀 검사를 시작했고 농림축산식품부는 그 결과가 11월20일 나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확진 결과를 11월17일 내놨지만 발표는 11월18일 오후에 이뤄졌다. 의심 신고 후 3일째에 확진 판정이 나온 셈이다. 그 사이에 바이러스는 전국으로 퍼졌다. AI 발생 반나절 만에 확진 결과가 나온 일본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제야 농림축산식품부는 특별방역대책 상황실을 AI 방역대책본부로 격상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AI 사태에 대해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황교안 총리가 11월17일 총리·부총리 협의회에서 다른 안건을 다루면서 AI에 대해 “선제적이고 광범위하게 방역 대책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2016년 12월27일 전북 김제시 용지면 신정리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사육하던 닭들을 땅에 묻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AP연합

적절한 초기 대응으로 2주일 동안 잠잠하던 일본에서 12월16일 홋카이도를 비롯해 규슈(12월19일), 구마모토현(12월27일) 등 전국적으로 AI가 다시 퍼졌다. 12월26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AI 감염이 확인된 사례는 101건으로 지금까지 도살된 조류 수가 모두 97만 마리다. 국내에서도 12월24일과 25일 경상도에서 의심사례가 신고되면서 제주를 제외한 전국으로 AI가 확산됐다. 그 결과, 약 2700만 마리의 닭과 오리 등이 살처분됐다. 농림축산식품부 방역관리과가 12월26일 발표한 가금류 살처분 수는 닭이 2250만 마리로 전체 사육 닭의 15%에 육박하고, 오리는 222만 마리로 사육 대비 약 25%, 메추리 등 기타 가금류는 105만 마리로 사육 대비 7%다. 앞으로 153만 마리가 추가로 살처분될 계획이어서 살처분 수는 2700만 마리를 넘어선 상태다.

 

한국과 일본의 초동대응의 차이는 ‘약 100만 마리와 약 2700만 마리’라는 가금류의 살처분 숫자로 대변됐다. 일본 현지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AI를 100%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대응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게 일본 공무원의 인식이다. 일본이 철새 분변에서 AI를 발견하자마자 경보 수위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AI 확진 2시간 만에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구축된 배경이다. 철새를 관장하는 환경성, 사육 가금류를 관장하는 농림수산성,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둔 상태다. 매년 11월이면 공무원을 대상으로 AI 발생 상황에 대비해 훈련하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

 

우리도 AI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국내 AI 발생은 2003년 12월 충북 음성군의 양계장에서 처음 보고된 후 올해로 6번째다. 그러나 매번 적게는 280만 마리에서 많게는 1937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땅에 묻는 아픔을 겪었다. 올해는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27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은 “일본은 지진·태풍 등 자연재해를 자주 겪으면서 위기관리에 철저하다”며 “AI에 대한 초동대응도 이런 의식과 미리 마련한 매뉴얼에서 발현됐다”고 설명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매뉴얼을 잘 만들어 놓고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50만 마리를 사육하는 산란계 농장에는 하루에 6회, 20만 마리를 사육하는 곳에는 하루 2회 달걀 운반 차량이 드나든다. 이 차량이 농장 안까지 들어가고 운반기사는 방역복을 입지 않은 채 달걀을 차에 옮겨 싣는다. 매뉴얼에 따르면, 농장 안과 밖에서 싣는 신발과 의류는 달라야 하고 농장 출입 차량은 바이러스에 오염됐다는 가정 아래 매번 소독해야 한다. 심지어 12월17일 천안에 있는 가금류 농장을 음식 배달 오토바이가 아무런 통제 없이 드나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해당 지자체에 살처분 시 유의할 사항을 시달하고 엄격한 준수를 지시했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우리 매뉴얼도 일본에 뒤지지 않게 잘 만들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는 점은 일본과 다르다. 가령, 겨울에는 소독이 잘 안 되므로 생석회를 뿌리고 1개월가량 비닐을 덮어 놓는 등의 조치가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실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통제 없이 음식 배달 오토바이 드나들기도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된 배경에는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있다. 특히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정에 구멍이 뚫렸다. 닭·오리 농장에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지 이틀 후인 11월18일에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AI 방역대책본부가 설치됐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AI 확진 결과가 나온 후에야 정부가 움직인 것이다. 일본은 AI 확진, AI 대책본부 설치, 첫 관계 장관회의가 의심 신고 후 24시간 이내에 이뤄졌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황 총리가 첫 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한 때는 12월12일이다. 황 권한대행은 “전국 단위의 일시 이동중지(Standstill) 조치를 발동해 일제소독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12월13일 3차 스탠드 스틸 조처가 내려졌다. 스탠드 스틸은 모든 가금류 차량, 인력의 출입을 중단하고 전면적인 방역에 돌입하는 비상조치다. 이미 11월19일 1차 스탠드 스틸을 발동했고, 11월26일 2차로 시행됐다. 3차례의 비상조치가 통하지 않자 정부는 12월15일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상향 조정했다. 안종주 센터장은 “가금류 농장에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지 한 달 만의 일로 이미 100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된 이후였다”며 “일본이 철새 분변에서 AI를 발견한 직후부터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갖춘 것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설치가 늦은 만큼 통제는 오락가락했다. 확산을 막으려고 유통을 금지했던 살아 있는 닭의 유통을 허용했다. 토종닭을 키우는 농가들이 닭을 출하하지 못해 불만을 표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일부 지자체들이 AI가 퍼질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12월17일부터 다시 유통을 금지했다. 각 부처 간 협업도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AI 방역대책본부가 설치되고 10일 후인 11월29일에야 국방부가 병력 3000명과 제독차 315대를 동원해 해당 지역 통제에 나섰다.

 

2016년 12월19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경기도 이천시 AI 방역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술잔치에 해외여행 떠나는 공무원들

 

그런데 이들 병력은 살처분 등 직접적인 작업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일본 자위대는 AI 발생 24시간 이내에 살처분 작업에 투입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I 방역에 동원된 인력은 약 7만1500명이다. 이 가운데 50% 이상이 민간인으로, 4만 명이 넘는다. 김재홍 교수는 “닭과 오리 살처분에 군인과 공무원은 동원되지 않고 매몰 작업 등에 투입된다. 살처분은 민간인이 담당하는데, 그 절반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11개 언어로 방역 안내서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방역을 제대로 진행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들을 통제할 전문가도 없다. 12월27일 기준 AI가 발생한 34개 시·군 중 4곳은 가축방역관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가축방역관이 없는 곳이 70곳이나 됐다. AI가 발생한 시군(34개) 중엔 경기도 김포, 충북 괴산, 전남 해남과 진도에 가축방역관이 없다. AI 발생지 10곳 중 1곳은 방역을 관리·감독할 인력이 없는 셈이다.

 

또 정부가 11월22일부터 12월2일까지 AI 발생·인접 시군의 방역 상황을 감찰한 결과, 총 11개 시군에서 방역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AI가 처음 발생한 전남 해남군은 서류상으로는 군내에 방역대책본부가 설치돼 있지만 실제로는 운영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재홍 교수는 “지자체장의 의식과 의지에 따라 매뉴얼 준수와 초동대응 여부가 갈리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공무원의 기강 해이도 AI 확산을 키웠다. 11월18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주재로 가축방역심의회, 시도 부시장·부지사 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 후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11월20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대변인은 조기 퇴근 후 만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국민에게 정부의 정책을 알려야 할 고위 관계자가 술자리를 이유로 자리를 비운 것이다. 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된 11월23일 지자체 공무원들은 해외여행을 떠났다. 수도권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경기도 양주시 국장급 등 18명은 26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대만을 다녀왔다. 경기도가 부담한 경비 1750만원은 지난해 경기도 평가에서 양주시가 우수한 실적을 보인 데 따른 포상금이다.

 

정부는 뒤늦게 일본의 방역 시스템을 참고하기로 했다. 가축방역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팀은 12월25일 일본으로 떠났다. 정부가 해외 방역 체계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TF팀 4명이 일본에 가서 농장 시설, 방역 체계 등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초동대응에 실패한 정부는 AI 의심 신고 후 42일이 지난 12월28일 신속한 진화를 약속했다. 황 권한대행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주재로 열린 민관 합동 AI 일일 점검회의에서 ‘7일 작전’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일주일 내 AI 발생 추세를 진정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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