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누구에게 유리할까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10 09:42
  • 호수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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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강 구도’ 문재인·반기문, 대선 빠를수록 유리

여야 대선 주자들의 시선이 모두 헌법재판소에 쏠려 있다.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시기에 따라 대선 시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은 헌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셈법 계산에 분주하다.

 

헌재가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면서 이르면 2월 또는 3월에 결론이 나와 4월 대선 또는 5월 대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가 국정공백 장기화에 대한 우려와 조기 대선을 요구하는 촛불민심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임기 만료 변수 탓에 헌재 심판이 늦어져 6월초에 결론이 나면 8월 여름 휴가철에 대선을 치르게 된다.

 

현재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다. 대선 과정에서 돌출할 수 있는 변수와 여권의 검증 공세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대세론을 굳히기 위해 조기 대선 대비 체제에 돌입했다. 그는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적절한 시기에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완전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떤 분들이 함께 국정을 수행하게 될지에 대한 부분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기 대선의 경우) 당선증을 교부받으면 곧바로 직무수행을 해야 하는 만큼 후보와 정당 간 협의를 거쳐 어떤 내각을 구성할지에 대한 로드맵을 사전에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기 개시와 더불어 바로 총리가 지명돼야 하고 총리의 제청에 의해 내각 구성에 들어가야 한다. 국회와도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가 섀도 캐비닛 구상을 밝힌 것은 ‘준비된 후보’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당초 귀국 날짜를 앞당겨 1월12일 귀국한다. 헌재의 신속한 탄핵심판 진행 등 국내 정치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후발 주자인 반 전 총장은 조기 대선으로 자신의 정치적 가치 등을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 줄곧 정치행보를 이어 온 문 전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2016년 12월17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제8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헌법재판소로 향하는 도로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이재명·안철수, 조기 대선 불리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설 방침이다. 반 전 총장은 다양한 정치세력과의 정치 연대를 검토하고 있다. 문 전 대표에 비해 취약한 세력 기반을 단번에 만회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 전 총장은 “가급적 광범위한 사람, 그룹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특히 “사무총장으로서 인종과 종교, 정치색깔을 가리지 않고 만났다”며 “지금까지 경험하고 닦은 것을 한국에서 한번 실천해 보겠다”고 강조했다.

 

여권에선 차기 대선 시기가 앞당겨지는 게 반 전 총장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는 분석도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돈 23만 달러 수수 의혹, 신천지 연루설 등 반 전 총장이 귀국하기 전부터 시작된 검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대선까지의 준비 과정이 짧아진 만큼 ‘정치인 반기문’에 대한 검증 기간도 단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강 구도를 구축한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에 비해 지지율이 크게 뒤처진 다른 대선 주자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짧은 대선 기간에 반전을 노릴 기회가 마땅찮아서다. 이들은 인력 보강과 함께 캠프를 구성해 독자 세력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측은 6월에 대선이 치러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3지대 세력화를 위해선 대선이 늦어질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조기에 대선 캠프를 꾸리기로 했다. 제3세력 구축을 선점해 정치 연대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호남당 이미지가 강한 당과 분리해서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1월15일 전당대회 이후 캠프를 출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 측은 당내 경선과 대선 본선까지 치르기 위한 캠프 사무실도 계약했다. 국회와 가까운 여의도의 한 빌딩이다. 약 80평 규모인 한 개 층을 대선 캠프로 사용할 예정이다. 초선의원이 주축인 안 전 대표의 당내 자문그룹 ‘10인회’도 조만간 해체하고 정책·홍보·전략기획 등 캠프로 전환한다.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중심으로 자문교수 그룹이 함께하는 지식인 네트워크 발족도 준비하고 있다.

 

촛불 정국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도 분주하다. 이 시장은 지지율은 상위권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보다 민주당 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기 대선이 그에게 불리한 여건인 것은 분명하다. 반면 그의 참신함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높은 만큼 조기 대선이 오히려 호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최근 주빌리은행 등 서민경제 전문가인 제윤경 의원(비례대표)을 영입해 대변인 역할을 맡겼다. 3선의 정성호 의원도 이 시장을 돕고 있다. 김영진 의원은 정책 총괄 임무로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시장직을 유지한 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대교체’를 화두로 제시하며 대권행보에 나섰다. 박 시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에 대선 캠프 성격의 사무실을 마련하고 대선행보의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무소속인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은 독자 세력화에 시동을 걸었다. 손 고문 측은 “1월 중하순쯤 ‘국민주권 개혁회의’ 발대식을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대식은 손 고문의 지지자 등 수천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손 고문 측은 국민주권 개혁회의를 국민운동기구로 띄우기로 했다. 개혁회의를 여야 정치인들이 폭넓게 동참하는 정치적 결사체로 발전시킨다는 복안이다.

 

 

마이너 후보들, 정치적 연대 모색

 

안희정 충남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전·현직 광역자치단체장들도 낮은 지지율 제고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이너 대선후보들은 조기 대선에 따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치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 국민의당 등은 반 전 총장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들 세력은 반 전 총장과의 연대를 통해 반(反)문재인 전선을 구축할 계획이다. 짧은 기간 내에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를 만들어 유리한 대선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제3지대 연대설의 한 축인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은 “반 전 총장이 새로운 나라의 개혁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문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유승민 개혁보수신당 의원 역시 “반 전 총장이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해 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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