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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아버지 땐 그나마 제대로 된 관료라도 키워냈지만…”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수출 산업 붕괴 위기…‘3개년 경제 개발’ ‘정경유착’ 등 유신 시대 잔재만 되살려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7.01.13(Fri) 08:56:08 | 14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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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2012년 12월19일 대선일로 되돌려보자. 대선 결과가 나온 직후 외신의 종합적인 평가는 ‘긍정 반, 부정 반’이었다. “박근혜 당선인은 당선 이후에도 한국의 고도성장에 가려진 그늘과 그에 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논쟁과 싸워야 할 것”(뉴욕타임스), “박정희라는 유산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자산이자 약점이 될 것”(워싱턴포스트)이라는 등 외신의 반응은 ‘딸 박근혜가 박정희라는 아버지의 후광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었다.

 

정부 출범 이후 펼쳐진 경제정책은 기본 골격부터 정책 추진 과정까지 여러 면에서 과거 박정희 정부를 연상케 한다. 핵심 지지층에게는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불러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박정희식(式) 경제정책의 핵심은 ‘관(官) 주도의 추격형 경제모델’에 있다. 단기간 내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투자의 우선순위와 자원의 배분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으며,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특정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는 특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정경유착은 한국 경제의 망국병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경영학계가 한국형 경제모델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재벌’(Chaebol)이란 단어는 이런 정경유착의 부산물이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시대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박정희 정부의 18년을 가리켜 ‘한국 경제의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기간 동안 5400만 달러였던 수출은 100억 달러 이상으로 200배,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에서 1644달러로 20배 이상 늘어났다. 군부독재와 민주정치 억압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박 전 대통령이 여전히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한국 경제를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1977년 9월7일 경북 구미 금성사(현 LG전자) TV 조립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제정책에 있어서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시대를 뛰어넘지 못했다. 국내외 경제·산업 환경이 예전과 비교해 180도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프레임으로 경제를 들여다본 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이다. 대표적인 것이 2014년 1월 신년사에서 처음 언급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다. 이름마저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유사하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제3공화국이 출범하기 직전인 1962년 처음 시작해 1997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2014년 1월 신년사에서 박 대통령은 “기존 추격형 전략은 한계에 직면하고 비정상적인 관행, 수출 대기업 제조업 중심의 불균형 성장 등 구조적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이라면서 “향후 3~4년이 우리 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박근혜식 3개년 개발정책은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용두사미로 끝날 처지에 놓였다. 동시에 핵심 정책 과제인 창조경제도 정부와 운명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창조경제 논란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가 꿈꾼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연구·개발(R&D), IT(정보기술)와 과학기술의 융합, 창업과 신산업 창출 생태계 조성 등이 핵심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창업·벤처가 활성화돼야 하며 그 과정에서 대·중소기업 상생은 선행됐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전국에 설립된 17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철저히 대기업 중심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생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란 애초부터 힘들었다고 봐야 한다.

 

이민화 카이스트(KAIST) 교수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역할은 창업이 아니라 인수·합병(M&A)을 포함한 벤처와 대기업의 개방협력 장이 됐어야 했다”면서 “이러한 창업 생태계가 이미 형성돼 있는데, 대기업이 주축이 되고 정부가 후견 역할을 하는 창업 목적의 조직이 옥상옥으로 또 만들어질 필요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박근혜식 창조경제는 보여주기식(式) 행정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7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단 간담회를 마치고 대기업 총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경제민주화를 좌파 정책으로 여긴 게 패착”

 

반면 대선 전 화제를 모았던 ‘경제민주화’ 정책은 정부 출범 직후 용도 폐기됐다. 대기업 중심의 친(親)기업 정책을 펴기에 경제민주화 정책은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면세점 사업 등을 매개로 일부 대기업에 선심성 혜택을 몰아준 것은 과거 1970~8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재벌 중심 정책의 포기는 시장 지배력과 경제력 남용을 막는 길이며, 공공·민간 부문의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길이자 동반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었는데, 이를 마치 좌파 정책으로 여긴 것이 패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가 ‘박정희 프레임’에 빠진 사이 대기업 집중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수출업 종사자 중 250명 이상 대기업은 전체 기업 중 2.1%지만, 수출액 비중으로는 무려 79.5%에 달했다. 그렇다고 대기업 업황 전체가 좋은 것도 아니다. 박정희 시대에 기초를 닦은 철강·화학·조선·해운업은 사상 최대 불황에 휩싸여 있다. 여기에 집값 급등으로 서민경제에 드리운 위기감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는 “펌프(산업)가 고장 났는데 마중물(부동산 규제 완화)만 퍼붓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면서 “아버지가 만든 지난 50년의 주력산업 업종은 사실상 붕괴되거나 수명이 다했는데 정작 대통령 본인은 4대 부문 개혁이나 창조경제와 같은 겉도는 이야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정경유착이라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도 비판거리다. 비선실세인 최순실씨가 주도해 만든 K스포츠재단·미르재단에 성금을 내는 데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 좋은 예다. 소수의 관료가 경제 시스템 전반을 컨트롤하는 방식도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다. 물론 당시에는 경제 규모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서 소수의 엘리트 관료가 경제정책 전반을 이끌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구소장)는 “내가 말하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따를 거라는 생각 자체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필상 교수도 “과거 박정희 정부 때는 그나마 제대로 된 관료라도 키워냈는데 지금은 공식보다는 비선라인을 통해 의사결정이 내려지면서 대한민국 공직 시스템 전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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