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장과 신데렐라의 구속, 코너에 몰린 朴 대통령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7.01.21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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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던 김기춘·조윤선, 끝내 구속…탄핵 법정에도 설 듯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이 1월21일 결국 구속됐다. 특히 조 장관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장관 신분으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왕실장'과 '신데렐라'로 불렸던 두 사람이 구속되면서 특검 수사와 탄핵 심판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성창호(45·사법연수원 25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3시 48분쯤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월18일 이들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국회위증죄(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조 장관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장관 재임 중 구속되는 불명예를 썼다. 과거 이형구 전 노동부 장관,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 등이 구속된 사례가 있지만, 모두 구속 직전 사임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구속 이전부터 해임건의안 제출을 공언하며 압박하고 있어 조만간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희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도 실세 노릇을 하며 '기춘대원군'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 전 실장 역시 초라한 수감자 신세가 됐다. 전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수의를 입고 대기했던 이들은 법원의 결정으로 바로 수감됐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2014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뒤, 이를 문체부에 보내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정권에 비판적인 성향으로 분류되거나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문화계 인사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토록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도록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2012년부터 당선인 시절까지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현 정부 첫 여성가족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이어 문체부 장관에 오르는 등 현 정부의 '신데렐라'로 불렸다. 조 장관은 2014년 6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근무하면서 김 전 실장의 지시로 블랙리스트를 관리한 의혹을 받아 왔다. 특검팀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중심으로 명단을 만들고 문체부로 내려보내 지원 배제토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리스트 초기 명단은 수십~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1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은 시인, 소설가 한강, 영화배우 송강호·하지원, 박찬욱 감독 등이 무더기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에 주춤하던 특검 수사 '급물살'

이로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주춤했던 특검 수사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박 대통령의 뇌물죄를 성립하기 위한 연결고리였던 이 부회장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의 압력으로 지원했다고 진술한 만큼 박 대통령에 다른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을 향한 또 다른 열쇠인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블랙리스트 작성을 통한 직권남용·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신병을 확보한 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증거를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예정된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 때 블랙리스트 운영을 지시한 적이 있는지 강하게 조사할 방침이다. 앞서 특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대통령 대면조사 시기는 늦어도 2월 초순까지는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현재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뿐 아니라 최씨의 국정농단을 사실상 묵인하거나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관여하는 등 국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의 의혹 전반을 확인할 계획이다. 

 


블랙리스트는 반헌법적 중대 범죄…헌재 탄핵 심판에도 '영향'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구속은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에도 일부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블랙리스트는 탄핵소추사유인 직권남용, 언론의 자유 등 헌법 위반과 관련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직권으로 필요한 증거를 보강할 수 있는 만큼 블랙리스트 관련 자료가 탄핵심판 증거로 채택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검팀 또한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를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지시·작성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미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 진술 등을 통해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행위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결서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가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탄핵소추위원 측 관계자는 "탄핵소추의결서를 다시 정리하면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내용을 추가할 예정”이라며 “블랙리스트 건도 충분히 탄핵 사유로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헌재 탄핵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이들의 진술 조서를 추가 증거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공법학회와 한국헌법학회 상임이사를 역임한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 대통령은) 국민주권 원리나 대의제 원리 등 기본 원리를 위반한 내용이 이미 많이 입증됐다"며 "이 중 하나만으로도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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