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연탄 2400장에 담은 따뜻한 이웃사랑
  • 김은샘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25 01:09
  • 호수 14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탄 배달 봉사 체험…“일회성 아닌 지속적 관심 필요”

“아! 추워” 현관문을 힘차게 열어젖힌 패기도 잠시,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몸을 한껏 움츠렸다. 

 

“전국이 꽁꽁 얼어붙고 있습니다…오늘은 맹추위가 예상되며…서울 최저 기온은 영하 8도로…찬바람이 불면서 한낮에도 영하권에 머무를 것으로 보입니다.”

 

기상캐스터의 경쾌한 목소리를 들으며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침 출근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연탄을 나르면 진짜 얼굴에 검댕이 묻을까?’ ‘후원도 봉사도 줄었다는데….’

 

 

“열심히 한 만큼 흔적 남아 뿌듯”

 

1월13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삼성동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처음 하는 연탄 배달 봉사에 설렘 반 긴장 반이었다. 내 손만 거치면 물건이 망가져 친구들에게 ‘마이너스의 손’이라 불렸기에 혹시나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가득했다.

 

삼성동 재래시장은 평소 다니던 서울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1970년대를 연상케 하는 오래된 동네였다. 낡고 썰렁한 가게, 비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군데군데 나무판자가 덧대진 허름한 벽, 슬레이트나 기와지붕 등이 눈에 띄었다.

 

봉사 장소에 도착하니 함께 연탄을 나를 보성여고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사회복지단체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김가영 간사의 안내에 따라 앞치마와 장갑을 착용했다. 오늘 연탄을 배달할 곳은 시장 옆 작은 동네 12가구였다.

 

1월13일 서울 관악구 삼성동에서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이 진행하는 연탄나눔(배달) 자원봉사에 보성여고 3학년 학생들이 참석해 열심히 연탄을 나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생각보다 안 무겁네?’ 두 장씩, 세 장씩 한꺼번에 나르는 모습에 학생들이 “우와”하며 환호성을 연발했다. 추운 날씨에도 학생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연탄을 날랐다. 그 와중에도 서로의 얼굴에 연탄 검댕을 묻히기 바빴다. 연탄을 받아 쌓는 학생들은 혹여나 깨질까 조심스레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동네 어르신들이 골목 어귀 벤치에서 이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학생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연탄을 나르다가 잠시 앉아 쉬며 이야기를 나눴다.

 

겨울방학에 이들은 왜 연탄 봉사를 나왔을까. 이로운양(19)은 “평소 꾸준히 봉사를 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연탄 봉사를 경험해 보고 싶어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양의 친구들은 “이름값 한다”며 웃어댔다. 이현수양(19)은 “연탄 배달도 좋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말동무가 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연탄 배달이 재밌을 것 같아 참여했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몇 백 장의 연탄 배달을 마친 지금도 재밌을까? 학생들은 “재미있다”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다시 배달이 시작되고 우리는 연탄을 묵묵히 날랐다.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학생들이 고생하네, 예뻐 죽겠네.”

 

모두들 손놀림이 제법 익숙해졌다. 쌓기를 담당한 학생들은 처음과는 달리 제법 노련하게 연탄을 쌓아갔다. 추운 날씨 탓에 얼어붙은 연탄도 쉽게 떼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반면 발은 점점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시렸다. 다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탄가루로 뒤덮여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박소은양(19)은 “얼굴이 까매지는 게 연출된 사진인 줄 알았다”며 “열심히 한 만큼 흔적이 많이 남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연탄을 전해 받은 최성현씨(84)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고맙다”며 연탄을 쌓는 내내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보통 하루에 3~4장의 연탄을 사용한다는 최씨는 “연탄 200장을 지원받았다”며 “추운 겨울에 연탄이라도 지원을 받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씨는 학생들이 쌓아놓은 연탄을 커다란 비닐로 조심스레 감쌌다.

 

대낮이라 그런지 빈집이 많았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던 학생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연탄창고가 따로 없는 집도 많았다. 창고 대신 좁은 골목 한편에 놓인 판자 위에 연탄을 쌓아 올리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간혹 창고가 있는 집들은 연탄재로 그득했다. 텅 빈 창고에 연탄을 쌓아놓으니 그나마 사람이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고 입구가 너무 좁고 낮아 통행이 불편한 곳도 더러 있었다.

 

1월13일 영하 8도의 매서운 추위에도 보성여고 3학년 학생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연탄을 나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연탄 가격 100원 인상…“최대한 아껴 써야지”

 

오후 4시30분. 40명의 학생들과 함께 12가구에 약속한 2400장의 연탄을 모두 배달한 후 마무리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처음과 다를 것 없이 시끌시끌하고 해맑았다. 김정섭 보성여고 교사(55)는 “연탄 봉사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지 4년이 됐다”며 “형식적인 봉사가 아닌, 아이들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유현양(19)은 “요즘도 연탄을 쓰는 가구가 많은 것에 놀랐다”고 밝힌 후 “추운 날씨에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연탄을 보기 힘들어졌다고 하지만 사회복지단체 ‘밥상공동체·연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16만8000여 가구가 연탄을 사용한다. 이 중 12만 가구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거나 차상위 가구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에너지 빈곤층’(광열비 기준으로 에너지 구입 비용이 가구소득의 10% 이상인 가구)이다. 김가영 간사는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가 오히려 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연탄 공장도가격을 장당 373.5원에서 446.75원으로 인상했다. 소매자가격 역시 500원에서 600원으로 올랐다. 최성현씨는 “200장으로 겨울을 버틸 수는 없다”며 “최대한 아껴 써야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에너지 빈곤가구 0%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밥상공동체·연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가구는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만 가구 정도다. 게다가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불안정한 시국으로 후원과 봉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 간사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올겨울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고 밝혔다. 개인봉사자 사전등록에 참여한 사람도 이미 1000여 명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김 간사는 “앞으로도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를 기꺼이 나누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지인양(19)은 “앞으로도 꾸준히 봉사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세상이 많이 각박해졌다고 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따뜻한 손길은 계속되고 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 구절처럼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