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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아로 새긴 부산…일본 문화 잔재와 피난기 서민 문화 재발견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⑤ 부산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03(Fri) 11: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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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은 도시다. 일제강점기, 해방기, 그리고 한국전쟁기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주민들과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부산의 매력이자,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아픔이다. 

 

강화도조약 이전부터 일본인들이 오가며 조선과 무역을 했던 ‘초량항’은 근대 개항 이후에도 그 명맥을 이어가 지금은 ‘부산항’이 되었다. 북항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부지런히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며 국제교류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한국 최초의 무역항이다. 그 주변으로는 일본인들이 업무를 보거나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왜관’이 있었다. 서울, 칠곡, 울산, 진해 등에 있었던 왜관들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모두 사라졌지만, 부산의 왜관은 일본인 전용 생활공간인 ‘일본전관거류지’로 발전하였다. 최근 ‘부산 소녀상’이 설치되어 떠들썩해진 일본영사관이 이곳에 있다. 

 

일본인들은 온천과 해수욕장을 개발하며 부산에서 향락을 즐겼다. 이전부터 온천으로 유명했던 동래지역은 일본 자본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동래구 온천동의 한 온천시설을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한 내부시설에 그저 신이 났었다. 1991년 처음 생긴 이곳은 아직도 ‘동양 최대 규모’라고 홍보되고 있다.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제 동래온천은 일본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부산시민의 여가공간이자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었음에 틀림없는 듯하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동래온천노천족탕. 오가는 시민 누구나 느긋하게 쉬다 갈 수 있는 온천동의 명물이다.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일본인 전유물서 주요 관광자원 된 동래온천

 

원래 동래구는 조선후기까지 ‘동래도호부’로 불렸다. 부산의 전통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부산이 고향인 필자에게도 ‘동래’라고 하면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온천관광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는 사실이 자못 씁쓸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시대의 읍성(邑城․지방의 관부와 민거를 둘러서 쌓은 성)들은 모두 강제적으로 철거되는 수모를 당했었다. 우리의 역사적 전통을 지우고, 일본인들의 편의에 따라 도시를 재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동래읍성’ 역시 그러한 비극을 피해가지 못했다. 동래읍성의 원형을 보수, 복원하려는 작업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많은 역사적 현장을 가지고 있는 부산에서, 유독 주목받지 못하는 중요한 역사적 단면을 다시 마주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의미가 있다.

 

해방기를 맞이한 부산은 해외에서 귀국하는 동포들로 넘쳐 났다.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전국에서 피난민들이 몰려들며 도시는 인구과밀 상태가 되었다. 기반시설은 부족한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주해오니,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을 테다. 

 

하지만 ‘부산’하면 떠오르는 지역명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의 대표 음식인 ‘부산밀면’과 ‘돼지국밥’은 피난민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구 남포동 일대의 유명한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역시 해방 이후부터 상권이 형성되었다. 먹고 살기 힘든 피난민들이 무엇이든 가져와 파는 ‘도떼기시장’으로 시작된 역사다. 서러운 타향살이 속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나갔던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이곳은 현대에 와 만물상의 거리로 변신하였다. 필자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시장 골목을 쏘다니며 이것저것 쇼핑을 하고 간식을 사먹으며 시간을 보냈더랬다. 전통시장이 위기라는 요즘이지만, 국내 최초로 야시장을 개장하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선보이면서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마성의 시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1920년대 만들어진 산동네 마을인 부산 사하구 감천동의 감천문화마을. 2009년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 김지나 제공


피난민 애환 서린 ‘국제 시장’

 

일제강점기부터 가난한 조선인들이 마을을 형성하며 살던 지역은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온 동포들과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감천문화마을’로 대표되는, 부산의 산세를 따라 빼곡히 들어선 집들의 풍경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감천문화마을로 가자고 하니, 기사님이 거기 뭐 볼게 있어서 그리들 가냐고 하신다. 부산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정작 부산사람들에게는 별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필자의 물음에, “지금 부산의 명물이라고 하는 것들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살기 위해 만들어 먹고 만들어 세운 것들이라… 사실 부산사람 입장에선 그렇게 자랑스럽거나 대단하거나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어느 어르신의 대답이 가슴에 사무친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산시 중구에 총 7개의 극장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1934년에 개관한 부산극장은 중구 남포동 비프(부산국제영화제․BIFF)광장의 터줏대감이다. 한 메이저 영화관에 인수된 지금, 건물 외관은 많이 변했을지언정 그 이름은 여전히 ‘부산극장’이라고 간판이 달려 있는 것을 보니 오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가웠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러 개의 영화관을 거느리며 부산의 ‘영화 1번지’로 불렸던 비프광장은 지금은 그 위세가 많이 꺾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 낮의 남포동 상점가 일대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신시가지에 밀려 옛 명성을 잃어가는 구도심이었지만, 이 일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역사적 아우라는 여전히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모양이었다.

 

부산 중구 남포동 일대에 위치한 비프(BIFF) 광장의 1990년대 모습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1934년 개관한 부산극장의 현재 모습. 영화관 브랜드 대신 '부산극장'이라는 이름을 고수한 것이 눈에 띈다. ⓒ 김지나 제공


부산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부산항과 중구 도심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부산타워’에 오르기 위해 용두산공원을 찾았다. 용두산공원은 남포동 상점가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공원으로,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마치 그 기운을 없애려는 듯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작고 오래된 공원이지만 쌀쌀한 날씨에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특히 얼마 전 국내에 정식 출시된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를 즐기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떠들썩했다.

 

2월1일부터 시작된 공원시설 개보수 공사 때문인지 아쉽게도 부산타워는 휴관 중이었다. 강산이 두 번 변했을 시간이 흘렀어도 용두산공원은 옛날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도시의 문화자원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 중인 부산이 또 어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지, 걱정보다는 기대와 응원을 보내본다.​ 

 

부산 중구 광복동에 있는 용두산공원. 2017년 2월 1일부터 개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 김지나 제공

부산광역시 행정지도 ⓒ 부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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