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만의 軍 인권 이야기] ‘유족들 희생’이 더 나은 군대 만들었다
  • 고상만 인권운동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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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쉬워’ 한겨울 새벽 시위였습니다. 새벽 6시까지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가려면 유족들은 새벽 3~4시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2013년 11월부터 약 2개월 가까이 진행된 국회 앞 피켓시위에 부산, 대구, 마산 등 전국 각지에서 유족들이 올라와 동참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자식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취급하는 나라와 국방부가 밉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불이 치밀어 올라 가만히 있는 것보다 차라리 한겨울 추위에 있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는 유족들의 이야기가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한 덕분이었을까요? 유족들이 만 2년 넘게 싸워온 결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에 대해서만큼은 사망 원인과 관계없이 순직 처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해 달라’는 취지의 ‘군 인사법 일부개정 법률안’에 대해 국방부가 긍정적 검토를 약속하고 나선 것입니다. 굳게 닫힌 국방부의 철문이 열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출렁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 고상만 제공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관련 법안이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 심사소위에서 논의되기로 한 2013년 12월13일 많은 유족 분들이 국회로 모였습니다. 고생 끝에 꿈처럼 찾아온 그날, 이제 간곡히 바라던 법안이 처리돼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아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지리라 믿었던 그때, 생각지도 못한 비보가 날아든 것입니다.

 

유족과 이를 동의하는 국방위 소속 야당 의원의 도움으로 국방부가 처음엔 관련 법령을 개정하겠다고 하더니 막상 이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리자 자신들의 숨은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즉, 관련 법령을 바꾸지만 이 법 시행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소급적용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법안소위가 열린 당일에서야 우리에게 국방부가 밝혀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국방부가 우리를 속인 것입니다. 국방부는 법안을 바꾸려는 우리의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우리에게는 한 마디 통보도 없이 ‘소급적용 불가’ 방침을 당일에서야 밝혔습니다. 유족들은 “우리가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국방부가 안다면 이럴 수 없다”며 격분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안소위가 열리는 곳으로 몰려가 항의하자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 역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 분들의 그간 고생을 잘 알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유족단체 회장이 “잠시 우리끼리만 회의를 하고 싶다”며 저에게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20여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서도 법안소위에서는 계속 재촉 연락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 법안 처리에 대해 유족이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는 만약 유족이 법안 처리를 반대한다면 모든 일을 없던 일로 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법안 개정이 아니니 오히려 유족이 반대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유족들이 “내 자식에게 해당되지 않는 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 모든 것은 그냥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유족 분들이 반대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약 이 법안이 처리하게 된다면’ 우리가 요구해 온 법안은 더욱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유사한 법을 다시 처리하는 일은 국회에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자식은 안 되고, 남의 자식만 혜택 받는’ 이 법안을 이 분들이 수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유족 분들이 나와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회의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자식은 비록 적용 대상이 아닌 순직 법안이지만 그 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안 되지만 우리 같은 처지의 다른 부모가 고통 받는 일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법안을 수용한다고 법안 소위에 알려주십시오.”

그 순간 모두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어머니들의 울음소리. 한 분이 터지자 이내 눈물은 전염이 됐고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 분들의 양해로 김광진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법안은 19대 국회 본회의장을 통과했습니다. 이로 인해 의무복무 중 군인이 자해로 사망할 경우에도 순직자로 처리 되는데 요건이 크게 완화될 수 있었습니다.

 

ⓒ 고상만 제공

[인권운동가 고상만씨는 누구?]

 

고상만씨는 19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사건 이후, 수백 여 건의 군 의문사 피해 유족과 함께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팟캐스트 ‘고상만의 수사반장’을 진행했고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현재 군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의 사연을 담은 치유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제작해 억울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유족에게는 심리적 치유를, 국민에게는 진실을 알리려 한다. 이를 위해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스토리펀딩 연극'이등병의 엄마' 표를 사주세요’》을 진행하고 있다. 스토리펀딩으로 모금한 돈은 2017년 5월 중순 공연 예정인 연극 '이등병의 엄마' 제작비용 및 군 의문사 진실을 알리는 강연회 개최 비용 등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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