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들 옥중 경영까지 돕는 ‘집사 변호사’의 ‘황제 접견’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7.02.1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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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 집사 변호사 대규모 징계…“접견권 악용·품위유지 의무 위반”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가 수감 중인 의뢰인의 말동무나 심부름을 하기 위해 구치소를 드나드는 이른바 ‘집사 변호사’들에게 대규모 징계 처분을 내렸다. 대한변협은 2015년 3월 서울구치소 집사 변호사 명단을 넘겨받아 자체 조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 2년 만에 대규모 징계를 단행한 것이다. 변협이 집사 변호사를 대규모로 징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징계를 받은 변호사들은 모두 10명이다. 소속 변호사들에게 접견을 지시한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3명은 각각 정직 2개월과 정직 1개월을 받았다. 또 접견권을 남용한 개인 변호사 한 명은 정직 1개월, 두 명은 과태료 200만원과 견책 처분을 받았다. 대표 변호사 지시로 의뢰인을 접견한 변호사들도 과태료와 견책 처분을 받은 것이다.

 

변호인의 접견은 피의자나 피고인과 변호인이 소통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절차다. 그러나 ‘집사 변호사’를 통해 이 중요한 절차가 다른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집사 변호사는 힘 있는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들의 개인 심부름을 해주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해 접견권을 악용하는 변호사들을 말한다. 

 


구치소 앞에 원룸 잡고 변호사가 돌아가면서 접견 

 

통상적인 형사사건의 경우 변호사들은 많아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수용자를 접견하지만, 집사 변호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접견을 신청하기도 한다. 쾌적한 접견실에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한 재벌 총수의 경우 아예 구치소 앞에 원룸을 잡아놓고 변호사가 돌아가면서 접견을 한 사례도 들려오고 있다. 물론 해당 그룹은 이 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집사 변호사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수감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으로 인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변호인 접견은 횟수와 시간이 무제한으로 가능하다. 조 전 부사장은 남부구치소의 여성전용 접견실 2개 중 1개를 접견이 가능한 시간 내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의 남부구치소 접견 기록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30일부터 2015년 2월9일까지 42일간 81회의 변호사 접견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황제 접견’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최 회장은 1인실에서 혼자 지내면서 매일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변호사 접견을 이유로 방을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소속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최태원, 최재원의 변호인 접견 및 특별면회(장소변경접견) 횟수’에 따르면 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최태원 회장은 구속된 2013년 2월4일부터 2014년 7월4일까지 516일 동안 1607회의 변호사 접견을 했다.

최태원 회장과 같은 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SK그룹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2013년 9월30일부터 2014년 7월4일까지 278일 동안 864회 변호사를 접견해 ‘재벌 총수들의 접견 특혜’라는 지적을 받았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역시 278일동안 총 935회의 변호사 접견을 해 ‘면회 특혜’라는 지적을 받았다. 2015년 수조원대 불법 다단계 사기로 수감된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은 1년 반 동안 무려 2591번의 변호사 접견을 했다. 일평균 4회 이상의 접견을 한 것이다.

 

재벌 총수들이 이러한 변호인 접견을 통해 재판과 관련한 논의만 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업무를 처리하거나 업무상 지시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사 변호사’들을 통해 ‘옥중 경영’을 하는 것이다. 2003년에는 ‘이용호 게이트’ 주인공 이용호 지앤비그룹 회장을 접견한 변호사가 휴대전화와 증권 단말기를 주고받고 주식 매집을 도와주다 적발됐다.

 

최근에는 변호사들의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고 집사 변호사 수임 비용이 내려가면서 재력가나 유명 정치인들 외에 평범한 수용자들도 집사 변호사를 찾는 일이 늘어났다. 일부 변호사들은 접견만을 목적으로 구치소를 드나드는 ‘박리다매식’ 영업도 벌이고 있다. 2014년 말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돈을 받고 과자나 사탕을 수용자들에게 사다주는 등 잔심부름을 한 변호사에 대해 징계 신청을 하기도 했다.

 

 

일부 변호사 접견권 악용해 ‘박리다매식’ 영업 벌이기도

 

집사 변호사들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보통 한 달에 200~300만원 정도지만 의뢰인에 따라 그 비용은 달라진다. 로펌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한 번 접견을 하는 데 (변호사들이) 30만원 정도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한 달 단위로 하는 경우 가격이 좀 더 내려간다”며 “150~300만원 선이 많다. 그러나 재력가들의 경우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접견 횟수를 늘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러한 집사변호사들이 매일 접견실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자들의 변호사 접견권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구치소 내 접견실 수가 제한적이라 일부 수용자의 접견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사람들은 대기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변호사의 품위유지 의무 위반을 넘어서 헌법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온종일 자리를 뜨지 않는 집사 변호사들 때문에 2~3시간씩 대기하는 변호사들이 많다”며 “하루에 수십 건씩 접견을 하는 변호사들도 있어 구치소 측 뿐 아니라 변호사들의 불만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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