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만 7번째 교체, 슈틸리케의 속내는…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7 17:38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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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빈자리 ‘코치’ 아닌 ‘형님’으로 메웠다

흔들리는 슈틸리케호가 7번째 코치 교체를 단행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낳은 영웅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이 국가대표팀 새 코치로 합류한다. 박지성·이영표와 함께 유럽파 2세대의 아이콘으로 성공사를 썼던 공격수 설기현은 2010년 유럽 생활을 마무리하고 K리그에서 선수생활을 보냈다. 2014년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성균관대 감독으로 부임해 대학축구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왔다.

 

지난해 11월 신태용 코치가 오는 6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FIFA U-20 월드컵에 나설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새 코치 선임은 예정된 일이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천명한 계획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신태용 코치가 떠난 것을 발표하면서 “외국인 코치를 영입해 공백을 메우겠다”고 말했다. 중량감 있는 코치의 가세로 밸런스를 맞춰 남은 월드컵 최종예선 5경기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미 지난해 10월 합류한 차두리 전력분석관이 선수들과의 관계 형성과 소통에 중점을 두는 상황에서 슈틸리케호(號)에 필요했던 것은 브레인이 돼 줄 전략가였다. 설기현 코치가 유럽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다른 차원의 전술적 사고를 가지고는 있지만 감독 경력은 2년에 불과하다. 이용수 위원장은 “스위스·독일 지도자 2명을 리스트에 두고 접촉했지만 계약 기간에서 이견이 커 한국인 코치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에 선임된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이 2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2 세대를 너무 가볍게 쓴다는 비판

 

대한축구협회와 이용수 위원장은 설기현 코치의 선임을 나름 차선이라고 얘기했다. 벨기에, 잉글랜드 1·2부 리그와 중동, K리그에서 선수로 뛴 다양한 경험은 어떤 외국인 코치 못지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대표에 대한 책임감과 헌신의 마음가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대표팀 후배들을 이끄는 ‘형님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차두리 전력분석관 선임 당시와 너무 오버랩된다. 지난해 10월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원정에서 내용상 완패를 당한 뒤 축구협회는 내부 소통 문제를 인정하며 차두리를 긴급 영입했다. 대표팀 코치를 수행하기 위한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못해 전력분석관이라는 직책까지 만들어야 했다. 당시 차두리를 선임할 때도 강조된 것이 ‘형님 리더십’이었다. 코치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팀 분위기를 이끄는 맏형 역할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 뒤 치른 캐나다와의 평가전,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의 운명이 걸렸던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5차전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그 효과를 어느 정도 입증했다.

 

문제는 같은 성향과 포지션의 코치를 또 선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풍부한 지도자 경험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적 보조를 맞추던 신태용 코치의 자리를 코치가 아닌 형님으로 메운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 세대를 너무 가볍게 활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세계의 벽을 넘었던 2002 세대는 이후 유럽에서도 성공사를 쓰며 한국 축구의 자산이 됐다. 박지성·이영표가 행정가의 길을 택한 상황에서 설기현·차두리는 지도자의 길을 가는 몇 안 되는 케이스였다. 스타플레이어가 지도자로 전환하면 처음엔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 모진 길을 견뎌내며 성장했을 때 선수 시절의 풍부한 경험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런데 차두리는 지도자 데뷔를 대표팀에서, 설기현은 지도자 전환 2년 만에 대표팀에 합류한다. 축구협회가 너무 비단길을 깔아준 셈이다.

 

이 역효과는 홍명보의 부침(浮沈)에서 알 수 있다. 2005년 대표팀 코치로 합류해 U-20 월드컵 감독,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경험하며 승승장구했던 홍명보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하며 ‘국민 역적’이 돼 버렸다. 거대한 비판 여론에 축구협회는 홍명보를 지키지 못했고 한국 축구의 큰 자산은 치명적인 흠집만 남긴 채 추락했다. 평가는 냉정하다. 결과는 영웅을 역적으로 만든다. 설기현·차두리 역시 자칫 슈틸리케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낼 경우 실패라는 꼬리표를 단 채 앞으로 남은 긴 지도자 생활을 뚫고 가야 한다.

 

설기현이 2015년 10월13일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 대 자메이카 경기 하프타임 때 열린 자신의 은퇴식을 마치고 슈틸리케 감독의 격려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슈틸리케의 이중 잣대, 결국은 독선?

 

코치 선임 과정에서 드러난 슈틸리케 감독의 이중 잣대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는 외국인 코치 선임 작업 때는 직접 후보를 추천하다가 한국인 코치 선임으로 우회하자 큰 줄기의 조건만 단 채 이용수 위원장에게 작업을 맡겼다. 그 조건이 애매했다. 감독 경험이 적은 지도자였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감독 경험이 길 경우 자기 생각이 확고해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코치 물색 때는 이 조건이 없었다. 유럽을 본거지로 활약한 지도자와는 충분히 논의할 수 있지만 한국인 코치는 자신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과 신태용 코치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냐는 확신을 갖게 한다. 신태용 코치는 슈틸리케 감독 선임 전 이미 대표팀에 영입된 지도자였다. 브라질월드컵 후 감독 공백기가 있었던 두 차례 평가전을 감독대행으로 치렀다. 그 전에는 K리그 성남 일화(현 성남FC)의 감독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이라는 탁월한 성과도 냈다. 슈틸리케 감독과 신태용 코치는 공존 초기였던 아시안컵에서 훌륭한 성공을 합작했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병마로 물러난 고(故) 이광종 감독을 대신해 신태용 코치에게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기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성인 대표팀 코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던 신태용 코치와 슈틸리케 감독의 관계에 대한 풍문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점이었다.

 

우즈베키스탄전이라는 큰 고비를 넘긴 뒤 신태용 코치가 U-20 대표팀에 전념하기로 하며 슈틸리케호는 새판 짜기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결과는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풍부하지만 지도자로서의 경험은 적은 코칭스태프다. 설기현 코치는 대학 감독 2년, 차두리 코치는 아예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의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 차상광 골키퍼 코치는 상대적으로 연령이 높고 경험이 많지만, 그들의 역할은 피지컬 훈련, 특수 포지션 대상이다. 이제 아르무아 코치 외에는 슈틸리케호 출범 당시 멤버가 아무도 없다.

 

당장 3월에 슈틸리케호는 중국·시리아와 최종예선 6·7차전을 치른다. 그 2경기를 모두 이겨야 최종예선 8부 능선을 넘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전열 재정비는 가능해질까. 자신의 7번째 코치를 택한 슈틸리케 감독이 우려를 기우로 바꾸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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