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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시사미식] 대화조차 사치스러운 ‘혼밥’ 시대의 자화상

‘넌버벌 커뮤니케이션’ 시대가 바꿔놓은 오늘날의 음식문화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8(Sat) 13:54:23 | 14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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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 학원가

 

오전 11시30분. 학생들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다. 웃는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리 코딩된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이 향한 곳은 식당.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다는 고시 식당.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임대료 때문일까, 대부분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계단을 십여 개 내려간다. 큼지막한 현수막이 붙어 있다. ‘1식=5500원. 100식=42만5000원. 월식=3000원(1식)’ 얼핏 이해가 어려우실 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한 달 내내 삼시세끼를 다 이 식당에서 해결하면, 기한 없이 100끼를 먹는 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끼니당 3000원이라는 소리다.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은 청춘들이 식판을 든다.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줄이 갈린다. 백미·현미·흑미, 밥 종류가 다양하다. 두 종류를 섞어 담은 뒤 찬을 올리기 시작한다. 제육볶음·탕수육·마카로니 샐러드·튀김만두·김치·떡볶이·쫄면, 마지막으로 된장국까지. 족히 200여 명이 들어차 있음에도 도서관처럼 조용하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개중에 커플로 보이는 청춘들도 나지막이 속삭일 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밥에만 집중한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운지 학원교재를 펼쳐놓은 친구들이 많다. 거개는 하루 평균 12시간에서 16시간 정도 공부를 한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는 날도 있다고 한다. 이들에겐 말조차 사치인 것일까?
 

서울 시내 한 식당의 1인용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는 한 여성 © 뉴스뱅크이미지


# 편의점

 

전자레인지의 완료를 알리는 ‘땡’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삼각김밥도 돌리고, 라면도 익히고, 도시락도 데운다. 대부분 한 손에는 서비스용 음료수가 들려 있다. 데운 음식을 비닐봉투에 담아 나가는 이도 있지만, 상당수는 서서 먹는 간이테이블로 향한다. 조용히 김밥을 뜯고, 도시락을 연다. 삼각김밥을 크게 한입 베어 물더니 볼이 미어져라 라면을 구겨 넣는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창밖을 바라본다. 답답한 모양이다. 한숨을 크게 쉬고는 다시 젓가락을 든다.

 

편의점 간편식을 찾는 스펙트럼이 매년 넓어지고 있다. 10대·20대 위주였던 고객층이 40대·50대로 올라갔다. 편의점 매출이 작년 대비 70여%나 올랐다는 기사가 거짓이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좁디좁은 이 공간에 들어와서 나가기까지 채 15분이 걸리지 않는다. 말없이 들어와 음식을 들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다. 데우고 먹는 모든 과정에서 말이 필요 없다. 이들은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과는 많이 다르다. 떠들지도, 많이 웃지도 않는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청년실업률 9.8%. 최악의 시대다. 자영업자들이 힘들어 하는 건 현재의 고통이지만, 청년실업은 미래와도 직결된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이들이 ‘6포 세대’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연애할 여유가 없다.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결혼은 꿈도 꾸기 어렵다. 연애와 결혼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출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벌써 3가지나 포기한 셈이다. 어른들은 서둘러 결혼을 해야 돈을 모으고 집도 산다고 얘기하지만, 하루하루 살아내기에도 숨이 찬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꿈속에서도 환상일 뿐이다. 이렇듯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현실에서 건강을 챙기는 것도 사치일진대 인간관계라니…… 자연스레 포기가 익숙해졌다.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성세대라고 자유로울 수 없다.

 

© 연합뉴스


# 여의도 덮밥집

 

한 무리의 샐러리맨들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잰걸음이다. 찬바람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시간이 없어 보인다. 거나하게 한판 웃고 나서는 덮밥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식권자판기 앞에 섰다. 부서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이제 2~3년 차로 보이는 사원 모두 제 돈을 넣고 식권을 산다. 일행은 모두 5명. 모두가 함께 앉기에는 매장이 협소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어 있는 1인용 식탁에 앉는다. 일본의 ‘요시노야’나 ‘마쓰야’ 등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3~4분쯤 지났을까? 굽이 높은 덮밥 용기와 된장국이 담겨 있는 자그마한 쟁반 하나가 테이블로 옮겨진다. 고기볶음에 소스를 뿌리고 이내 비비기 시작한다. 이곳에 들어선 고객들의 행동은 많이 닮았다. 자리들이 떨어져 있는 탓에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는다. 또 이런 종류의 식당 구조와 동선을 고려해 보면 수다를 떨 여유가 없다. 후딱 대접을 비우고 일어서지 않으면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왼손으로 덮밥 용기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쉬지 않고 밥을 밀어 넣는다. 가끔씩 주위를 둘러보지만 오가는 단어는 없다. 직원이 딱 한마디 물어온다. “고기 덮밥 맞으시죠?”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끝. 더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식당으로 들어서면 모두가 함께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고기든 찌개든 탕이든 먹는 내내 왁자지껄, 심지어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군기가 느슨한 회사의 경우 반주를 걸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최고참 상사를 향해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잘 먹었습니다”를 외쳤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그림이다. 권위가 지갑에서 나오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2017년도의 청장년층은 에너지 소모를 지극히 혐오한다. 굳이 동물적 본능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혼밥족’이 늘고 배달앱이 각광받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일이다. 2~3년 전만 해도 콜택시를 부르려면 업체 상담원에게 위치를 설명하고, 콜이 접수되면 다시 기사분과 통화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목적지까지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갈 수 있다. 배달도 마찬가지다. 성공의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족히 십여 개는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핵심은 말을 하는 데 쏟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 있다. 중국음식점 아저씨와 진지하게 통화하지 않아도 된다. 피자집 직원과 할인혜택을 논하지 않아도 된다. 본격적으로 우리는 ‘넌버벌 커뮤니케이션’(Non- Verbal Communication·비언어적 소통)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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