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식 ‘흰 비빔밥’을 아시나요?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7.02.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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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호 충무집 대표, 통영 전통 제사음식 살리기 나서 눈길

흔히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고들 한다. 산간이 많은 지역 특성상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런 통념은 경상남도 통영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통영은 예로부터 수산업이 발달했다. 지금도 양질의 해산물이 많이 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뿐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동·서·남해안을 아우르는 해군 본부가 통영에 있었다. 이로 인해 고관대작들이 몰렸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음식 기술도 발달했다. 통영 음식이 경상도 지역 내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이유다. 

 

통영 음식 전문점 '충무집'의 배진호 대표가 2월18일 통영의 전통 제사음식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송응철

“재료 좋으면 가미(加味)가 필요 없다”

 

그러나 서울에서 통영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몇몇 업체만이 ‘통영 음식 전문’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배진호 대표가 2003년 문을 연 ‘충무집’이다. 충무는 통영의 옛 이름이다. 이곳은 2012년부터 ‘통영 전통 제사음식 재연 시식회’를 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2월18일 단골손님과 음식평론가, 요리사 등을 초청해 통영의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들에 대해 설명하고, 직접 맛볼 수 있는 자리를 가졌다. 배 대표는 이런 행사를 기획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각 지역별로 제사음식에는 차이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한 지역 내에서도 음식이 다른 경우가 있죠. 최근 제사가 많이 없어지는 추세인데다, 상에 오르는 음식도 손이 많이 가는 전통방식 대신 손쉬운 음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전통적인 제사음식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아쉬워서 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사라져 가는 전통음식은 비단 제사상에 올라오는 것들만이 아니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수많은 향토 음식들이 없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면 배 대표가 굳이 제사음식 복원에 나선 이유는 뭘까. 이는 제사상에 내놓는 음식이 그 무렵 그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영 향토 음식의 정수가 바로 제사음식이라는 것이다. 

 

실제, 배 대표가 차린 상에는 귀한 식재료가, 특히 해산물이 많았다. 생선 중에는 대구와 물메기, 민어, 삼뱅어 등이 있었다. 모두 해풍에 반건조한 생선들을 찌는 방식으로 조리됐다. 과거 철에 따라 잡히던 생선들을 장기보관하기 위해 반건조시켜 놓던 데서 비롯된 조리법이라고 한다. 나물에도 해초류가 많았다. 미역과 톳, 몰 등을 소금과 참기름, 쪽파, 마늘로 무쳐냈다.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 호박 등 다른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물류에도 개조개가 들어간다. 눈에 띄는 것은 ‘두부나물’이었다. 통영 제사상에서 두부나물이 탕국을 대신한다는 설명이다. 

 

전은 대구전과 조개전, 쇠고기전, 꼬치산적 등이 있었다. 이 중 꼬치산적은 사이즈부터 남달랐다. 어른 손으로 한 뼘이 넘는 크기였다. 재료 구성도 다르다. 게맛살과 햄, 단무지 등이 들어가는 일반적인 꼬치산적과 달리, 파와 쇠고기, 묵은지 세 가지 재료로만 맛을 냈다. 묵은지의 시큼함과 파 특유의 감칠맛이 쇠고기의 풍미와 잘 어우러졌다. 이처럼 음식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모두 옛날 방식을 그대로 조리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일 년에 제사를 열두 번도 더 모셨어요. 반가의 5대 봉제사(奉祭祀)면 돌아가신 날 모시는 기제사만 8번입니다. 여기에 설날이나 추석의 명절제사까지 더하면 더 많아지지요. 이렇게 제사를 지내면서 어머니가 음식을 하시던 모습을 봐 왔습니다. 그 모습을 기억했다 그대로 재연해내고 있습니다.”

이번 시식회에서 단연 인기가 좋았던 음식은 ‘통영식 비빔밥’이었다. 제사상에 올랐던 갖은 나물들을 한 데 모아 밥과 비벼낸 것이다. 통영의 비빔밥이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은 ‘붉은색’이 아닌 ‘하얀색’이라는 것이다. 고추장이나 간장 등 추가적인 조미료가 일절 넣지 않고, 나물 특유의 향만으로 맛을 냈다. 담백하면서도 풍부한 맛이었다. 

 

“통영 음식의 철칙은 간을 최소화하고 식재료 특유의 맛과 향을 살리는 것입니다. 재료가 좋다면 가미(加味)가 필요 없습니다. 그대로 충분히 맛있기 때문입니다. 통영식 비빔밥이 이런 철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입니다.”

배 대표가 충무집을 운영하면서 ‘양질의 식재료 조달’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 대표는 매일 새벽 통영 서호시장에서 식재료를 공수한다. 좋은 식재료에 대한 고집으로 아침마다 고속버스로 통영에서 서울까지 재료를 옮기는 번거로움도 마다않는다. 이처럼 통영 현지에서 제철 식재료를 공수해오다 보니, 계열마다 나오는 음식도 다르다. 여름에는 장어탕과 잡어매운탕, 가을에는 감성돔매운탕, 전어요리, 겨울에는 물메기탕과 굴요리가 주력 메뉴다.

 

최근부터는 봄철 메뉴인 도다리쑥국을 개시했다. 통영 일반 가정에서 즐겨먹던 도다리쑥국은 이번 시식회에도 상에 올랐다. 멍게비빔밥과 함께 충무집의 간판 메뉴다. 이른 봄에 잡히는 도다리는 비린 맛을 잡아주는 쑥과 자연히 궁합이 잘 맞는다. 게다가 도다리쑥국은 먹을수록 맛이 났다. 국에 도다리가 풀어져서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

“통영음식 맥 잇는 것은 나의 의무”

 

시연회가 진행되는 동안 둘러본 충무집 곳곳에서는 배 대표의 고향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통영 지역신문과 관광지도가 비치돼 있었고, 벽면을 따라 통영의 사진들과 배 대표가 고향을 그리며 쓴 시도 걸려있었다. 

 

“통영의 음식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혀져가는 것들을 아쉽습니다. 고전적인 방식이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옛맛을 내는 식당들이 없어지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전통음식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 의무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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