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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일자리’ 둘러싼 노동시장의 프레임 전쟁

“비정규직 줄이면 고용 축소” vs. “일자리 불균형 해소될 것”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7.02.24(Fri) 11:46:37 | 14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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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어학자 레이코프는 사람들이 ‘사고’보다 ‘직관’에 우선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치·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할 때 프레임(구도)을 어떻게 짜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직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이길 수 있다는 의미다. 노동시장의 문제 또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흔히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청년 실업을 야기한다’거나 ‘비정규직을 줄이면 실업률이 늘어날 것’이라는 대립 구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동안 비정규직과 일자리 문제는 노동시장의 핵심 과제이면서도 양립할 수 없는 두 마리 토끼처럼 여겨졌다. 재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끊임없이 노동 유연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경기 불확실성에 대비해 노동 유연성을 강화해 나가야 기업이 발전하고 국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인력을 회사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비용을 축소하고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노동 유연화 정책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오히려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노동 유연성보다 고용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미술팀


“비정규직 줄이면 일자리 46만 개 사라져”

 

정부와 기업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대관(對官)업무 담당자들의 움직임이 최근 빨라졌다. 예상보다 이른 대선이 가시화되자 정책 변화에 따른 업종별 영향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쁘다. 익명을 요구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아직 후보들도 명확하지 않고 캠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 회사에선 벌써 각종 정책에 대해 알아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며 “어떤 정책이 우리 회사에 타격을 입힐지 모르니 긴장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대선 주자들의 비정규직 대책을 파악하는 일도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기업들은 차기 정부가 임기 중 비정규직 규모 목표를 설정해 버릴 경우, 비정규직 고용 비율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의무적으로 규모를 축소할 경우 대기업부터 시행할 확률이 높다. 당장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2014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1만 명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 57곳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50% 이상인 곳은 23곳에 달한다.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당장 비정규직 대책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재계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인위적으로 축소하는 것은 노동시장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반발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규직을 늘려 고정비용을 확대하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며 “정규직에 대한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지 않고 비정규직만 없애라고 한다면 일자리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경우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보고서다. 한경연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고용조정 비용 등이 상승해 노동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총 고용은 46만1000명 줄어든다”고 내다봤다. 이들은 “한국의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상위권”이라며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정규직의 과도한 보호는 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의 비정규직 처우를 자발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을 보였다. 김희성 한경연 초빙연구위원은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를 위한 근본 처방은 해고 규제를 완화해 정규직에 대한 노동비용을 낮춰 고용을 늘리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상호 교체 가능성을 인정하고 사회안전망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송원근 전경련 본부장은 “노동개혁을 성공적으로 단행한 독일은 금융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며 세계경제의 우등생이 됐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뒤늦게 노동개혁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법안들이 주로 통과되면서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시장이 좋지 않다”며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유연화 중심의 노동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인턴 늘려 실업률 낮추는 게 대책인가”

 

하지만 노동 유연성과 일자리를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된 프레임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자리의 규모를 늘려 실업률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용의 질(質)을 같이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인턴의 경우 안정된 일자리라기보다 다음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임시적 성격이 강하다”며 “불안정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노동시장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고용의 질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의 청년층 일자리 대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8차례 고용대책을 내놓으면서 4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을 통해 취업한 사람의 42.4%는 비정규직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정부 대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취업한 사람의 비정규직 비율(30.0%)보다 높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고용의 질적 수준 추정 및 생산성 파급효과 분석’에 따르면, 한국 고용의 질 지수(2013년 기준)는 33.8로, OECD 국가 평균(55.8)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고용안정성 지수는 100점 기준으로 19.7점에 불과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고용의 질을 높이면 오히려 생산성과 경제성장률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며 “비정규직 남용 방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근로조건 격차 축소 등을 통해 고용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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