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파도 잘 타면 재테크가 보인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7.02.28 14:49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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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투자자들의 위안이 되어준 ‘환테크’ 올해 트럼프 정책에 따른 영향은?

국내 증시가 박스권(주가가 일정한 가격 안에서만 오르내리는 현상)에 갇혀 답답했던 금융투자자들의 마음에, 지난해 잠시 ‘단비’가 내렸다. 투자자들을 웃게 한 것은 ‘환율 재테크(환테크)’였다. 환테크는 외환에 투자해서 환차익을 노리는 재테크 방법이다. 국내 환테크의 상당 부분은 미국 달러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환차익을 노리는 투자는 통상 기관투자가의 영역으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환테크는 기업이나 전문가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환테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연구소가 2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자산가 1028명 중 ‘올해 외화자산 비중을 현재보다 늘리겠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2%를 기록했다. 이는 ‘외화자산을 줄일 계획’이라는 응답자(전체의 2%)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였다. 조사대상 자산가들이 보유한 외화자산은 외화예금(64%), 달러구조화상품(14%), 달러 상장지수펀드(9%) 등 주로 ‘달러 재테크’와 관련된 자산이었다.

 

환테크가 기대를 모은 까닭은 지난해 원-달러 환율이 단기간에 큰 폭으로 변동하면서다. 지난해 9월초 1100원 이하로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3개월 만인 12월말께 1200원을 훌쩍 넘겼다. 단기간에 상승률이 10%에 육박하는 빠른 변화를 보인 셈이다.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가 1~2% 수준을 오가는 상황에서 투자자들 입장에선 ‘파격적’ 투자처였다.

 

© AP연합·Pixabay

국내 투자자들 “달러화 사고 싶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투자자들의 ‘달러 재테크’ 쏠림현상은 두드러졌다. 특히 전통적 투자 수단인 ‘달러 외화예금’ 분야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거주 법인·개인의 달러 예금은 지난해 1월 441억6000만 달러(50조2300억원)였는데, 올해 1월에는 552억3000만 달러(62조8241억원)로 늘었다. 이 중 2015년 말 75억5000만 달러(8조5881억원)이던 개인 외화예금의 규모도 올해 1월 107억5000만 달러(12조2281억원)로 증가했다. 그만큼 달러를 투자 수단으로 생각해 직접 환투자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외화예금뿐 아니라 지난해 일부 대형증권사의 달러 환매조건부채권(달러RP)도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달러RP는 증권사가 보유한 달러 표시 유가증권을 약정된 기간 이후 되사는 조건으로 고객에게 파는 상품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를수록 환차익을 보는 전통적 환테크 투자처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해 10월 달러RP 잔액이 업계에서 처음으로 3억 달러(3412억원)를 돌파했다. 대신증권도 지난해 말 달러RP 잔고가 2억 달러(2275억원)를 넘으며 반 년 만에 약 두 배의 잔고 증가율을 보였다.

 

달러자산 투자 상품은 외화예금·달러RP 외에도 다변화하고 있다. 해외주식에 달러로 직접 투자하는 ‘달러 주가연계증권(달러ELS)’이 대표적이다. 달러ELS는 다소 위험도가 높은 편이지만 주가 차익뿐 아니라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국내 공기업·대기업 등이 외국에서 달러로 발행하는 외환표시채권(KP)도 투자자들의 이목을 끈다. KP는 국내에서 발행한 채권 대비 수익률이 더 높고 달러가 강세일 때 환차익도 노릴 수 있다.

 

달러 기반 상장지수펀드(ETF)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달러ETF는 특정 증시지수를 모방해 투자하는 ETF의 특성과 외환 투자를 결합한 상품이다. 키움자산운용이 기존에 4개의 달러ETF를 출시해 이 시장을 독점해 왔지만, 지난해 12월 삼성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 등이 6개의 달러ETF를 출시하며 환테크 유치전이 불붙고 있다.

 

특히 달러ETF 중에는 원-달러 환율 하락에 대비한 상품도 있다. 이는 원-달러 환율 하락장에도 ‘달러 재테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28일 1212원으로 올랐다가 올해 2월23일까지 약 6.5% 하락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강(强)달러’에 베팅한 달러RP·달러ELS 등은 이익률이 줄었다. 하지만 달러 가치 하락에 베팅한 ETF 상품은 짭짤한 수익을 맛봤다. ‘약(弱)달러’에 투자하는 ETF인 ‘키움KOSEF미국달러선물인버스2X’는 최근 3개월간 5.27%의 수익을 냈고, ‘삼성KODEX미국달러선물인버스특별자산’도 12월말 이후 두 달간 가격이 약 5% 올랐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금 금리가 낮고, 주식시장도 답보 상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달러 환차익을 노리고 있다”면서 “최근 달러 변동 폭이 큰 만큼, 환테크 상품은 다양해지고 시장도 확대될 것이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환율조작국’ 논란으로 환율 예측 어려워

 

올해도 환테크 열풍은 계속될까. 업계에서는 올해 환테크가 지난해와 달리 낙관하기만은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환율 변동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가치 하락에 힘을 실었다. 그는 올해 1월 “달러 강세가 미국 기업을 죽이고 있다”며 전 세계를 상대로 환율전쟁을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원-달러 환율은 하락세를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비친 ‘달러 가치 약화’ 정책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은 ‘환율조작국 지정’이다. 이는 상대국에 불공정 환율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역제재에 나선다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4월 있을 환율보고서 발표에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달러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1988년 한국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적이 있는데, 당시 원-달러 환율이 5% 하락했다. 환율 변동 폭이 크지 않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환율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조작국 이슈가 부각된다면 달러가 강세로 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도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에 발표한 무역장벽 정책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다면, 달러 강세를 견인할 수 있는 조건들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테크 투자자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만 가지고 온전히 환율을 점칠 수도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발 빠른 금리 인상이다. 연준이 금리인상을 하면 통상 세계의 자금이 미국으로 몰린다. 이때 달러 가치는 오른다. 연준은 이미 지난해 12월 정기적 금리인상을 시사한 적이 있다. 연준의 계획대로라면, 2019년까지 현재 연 0.5~0.75%인 정책금리가 3%까지 인상된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올해 2월14일 “(금리인상을) 너무 오래 기다린다면 현명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올해 3월 금리인상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나중혁 KB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보다 연준의 정책을 더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실적 예상 회사들은 여전히 미국 금리인상과 상대국 금리 차에 따른 달러화 강세 전망이 우세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예상보다 높지 않다는 점도 환율 약세를 확신할 수 없는 이유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주요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미국 상황에 비추어 그런 판단이 상식적이다”면서 “현재 환율조작국 이슈가 논의되는 것은 트럼프의 행동이 상식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확률이 낮지만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2월22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변동 모습이 나타나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환테크 투자자, 4월 이후를 주목하라”

 

불확실한 환율 전망은 환테크 투자자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올해 환테크를 잘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전문가들은 환율에 변수로 작용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 초기 주장했던 정책들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환율 투자에 나서야 한다”면서 “당분간 외환 투자에 신중하게 접근한 뒤 정책 기조가 보다 분명해지면 달러 투자의 방향을 잡는 것도 방법이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올해 4월과 5월에 몰린 환율변동 요인을 적절히 관찰해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 등락에 계절적·시기적 요소가 있다. 이를 고려하면 올해 4월 미국이 환율보고서를 발표할 시점에 원-달러 환율이 가장 낮을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1100원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면서도 “환율보고서가 발표된 이후에는 달러 가치가 급격하게 강해질 수 있다. 특히 5월에는 프랑스 대선으로 유럽의 상황이 불확실해지고,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에 대한 영향이 달러 가치에 반영된다. 이 경우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선까지 빠르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환테크 투자자들은 이를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환테크 투자자들은 환율보고서 발표가 있는 올해 4월까지 추이를 관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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