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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관중으로 가득 찬 사직구장에서 재미있게 야구하는 게 소원”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롯데 자이언츠 강민호…“올 시즌 롯데가 어떻게 비상하는지 지켜봐주세요”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1(Wed) 11:07:16 |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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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35)가 150억원의 FA 계약을 맺고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하면서 기존의 롯데 선수들은 이대호를 중심으로 헤쳐 모였다. 조원우 감독은 이대호에게 주장을 제안했고 이대호는 주저 없이 롯데 캡틴으로 부상했다. 이대호가 복귀하기 전까지만 해도 롯데는 포수 강민호(32)의 팀이었다. 응원가도 ‘롯데의 강민호’였을 정도이다. 이대호의 복귀가 강민호한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서 만난 강민호는 이대호가 돌아오면서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것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상황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을 ‘보스’의 합류는 후배들에게 ‘어마무시한’ 힘을 주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지난 시즌 무릎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스프링캠프에서 재활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강민호는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에 불참하게 된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무릎 재활이 더디 진행되면서 어쩔 수 없이 대표팀 자리를 내놓게 됐지만 자신의 자리를 대신한 NC 다이노스 김태군이 더 좋은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했다. 오랜만에 스프링캠프에서 강민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포수 강민호 선수 © 이영미 제공


WBC대회에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10년 넘게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포수 마스크를 썼는데 그걸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클 것 같아요.

 

“굉장히 아쉬워요. 롯데 유니폼도 좋지만 가슴에 태극마크가 달린 대표팀 유니폼은 선수한테 또 다른 자부심으로 다가오거든요. 무엇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아닌 WBC대회잖아요. 이번에도 꼭 참가하고 싶었는데 재활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 고민 끝에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보다 WBC대회 출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대회를 주최하고 준결승전, 결승전을 미국 LA에서 치르기 때문에 더 간절한 마음이 있었어요. 이건 경험한 선수들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2009년 WBC대회 때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2라운드 경기를 치르고, LA에서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펼쳐졌거든요. 당시 대표팀은 전세기를 타고 LA 공항에 착륙해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르기 전 간단한 입국 절차를 밟은 후 다저스타디움까지 경찰 오토바이가 에스코트를 해 줬어요. 신호도 안 받고 그냥 통과였죠. 정말 짜릿하더라고요. 야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요.”


이번 WBC 대표팀의 성적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시각들이 있어요. 그런데 대표팀이 소집될 때마다 전력에 대해선 매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다 막상 대회가 시작되고 경기가 진행되면서 성적을 내고 결과로 인정받았거든요. 과연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건 저도 궁금한 부분이에요(웃음). 이상하게 대표팀에만 들어가면 어떤 힘이 결집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모여서 ‘열심히 하자’고 말은 하는데 막상 시합에만 들어가면 뭔가 달라지는 거예요.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한국은 최약체 팀으로 꼽혀요. 그런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단단해지면서 오기와 정신력으로 강팀을 이겨버리죠. 태극마크를 달면 그런 힘이 생기더라고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강민호와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 이영미 제공


생애 첫 대표팀 경기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이었죠.

 

“네. 프로 데뷔 3년 차였던 스물한 살의 나이에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된 거죠. 동료 선수들이 절 무척 부러워했어요. 금메달 따면 병역면제 혜택을 받게 되는데 경기도 치르지 않고 벌써부터 군 면제를 운운했으니까요. 그러다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도하 참사’로 매도당했고, 선수단은 출국장을 나서지 못하고 짐 찾는 데서 간단히 해단식을 치르고는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출국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취재진을 만날 자신이 없었던 거예요. 원래는 8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그 출구만 피해 다른 출구로 나간 거죠. 그래도 도하아시안게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야구하면서 중동지역에 갈 일이 또 있을까요? 선수촌 생활도 재미있었어요. 역도의 장미란 선수도 만나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우생순’으로 이름을 날린 핸드볼 선수들을 보며 신기해했으니까요.”

 

‘도하 참사’를 딛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전승을 거두며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어요. 덕분에 병역면제 혜택도 받았고요.

 

“그때는 5승을 거둔 후부터 불안해했던 것 같아요. 선수들이 우려한 부분은 예선전까지 7전 전승하고 본선 2경기 남겨둔 상태에서 4강전에 패하고 동메달 싸움을 하는 거였어요. 연승 행진은 언젠가 그 흐름이 끊어지기 마련이라 본선에서 그런 불행한 일이 벌어질까봐 걱정했던 거였죠. 이택근·정근우·이대호 선배를 비롯해 이용규 등 모두 군 면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서로에게 정말 최선을 다해 잘해 줬던 것 같아요(웃음).”

 

쿠바와의 결승전 9회말 3대2로 앞선 상황에서 퇴장당했던 사건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죠.

 

“그때 퇴장당하면서 강민호란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었죠(웃음). 심판의 볼 판정이 이상해서 ‘로 볼(low ball)’이냐고 물었던 게 심판한테 ‘노 볼(no ball)’로 들리는 바람에 퇴장 명령을 받고 격분한 나머지 더그아웃에서 글러브를 패대기쳤거든요. 우리가 9전 전승으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획득해서 다행이지, 만약 패했다면 전 두고두고 ‘역적’으로 몰렸을 거예요.”

 

그때 류현진·강민호 배터리가 내려가고 1사 만루 상황에서 정대현·진갑용이 배터리를 이룬 후 경기를 병살로 마무리하며 승리를 확정지었는데, 당시 어디에 있었어요.

 

“라커룸에 있었죠. 무릎 꿇고 TV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제발 이기게만 해 달라고 두 손 모아 빌었어요. 쿠바 선수가 타격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외야 플라이만 돼도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 제발 병살로 마무리되길 바랐는데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들리더라고요. ‘아, 됐구나. 이겼구나’ 싶어 즉시 그라운드로 뛰쳐나갔어요. (이)승엽이 형, (진)갑용이 형을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대표팀 선수들은 각 팀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뽑히는 거잖아요. 함께 생활하면서 선수들의 특징도 파악했을 것 같아요.

 

“상대팀 선수로만 만나면 야구 좀 하는 선수라고 생각하는데 대표팀에서 만나면 완전 다른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 많아요. 2014인천아시안게임 때 만난 NC 나성범은 타고난 몸으로 야구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지독한 연습벌레더라고요.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김)태균이 형은 방에서 방망이를 놓지 않고 TV를 보며 계속 타이밍을 잡더라고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분명한데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배운 점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해 온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의 웜업(warm up) 수준이었던 거죠. 대표팀 생활을 하다 보면 자극을 많이 받아요. 그런 부분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요.”

 

1985년생으로 어느새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어요. 스프링캠프를 준비하는 과정이 이전과 좀 차이가 있나요.

 

“겨울엔 최대한 짧게 쉬려고 했어요. 황재균·손아섭을 보니까 자신한테 투자를 많이 하더라고요. 좋은 음식 먹고, 과학적인 운동방법을 통해 몸을 만들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몸이 좋아진다면 후배든 선배든 가리지 않고 배우려고 하는 편이에요.”

2016년 12월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의 빛을 나누는 특별한 날’ 유소년야구 클리닉 행사에서 강민호 선수가 참가한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이전에는 야구장에서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강민호 선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더라고요.

 

“이전에는 야구하는 게 재미있고 즐거워서 웃음이 많았는데 좀 후회가 됐어요. 포수라면 좀 더 묵직하고 카리스마 있게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작년부터 많이 웃지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 야구할 날이 길어봤자 6~7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몸 관리의 중요성과 함께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좀 더 진지해진 것 같아요.”

 

선배보다는 후배들이 훨씬 많은 고참 선수가 됐는데 나이 어린 후배들, 특히 포수를 맡고 있는 후배들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나요.

 

“제가 처음 롯데에 입단했을 때 최고참 선수가 최기문 코치님이었어요. 당시 제 눈에 최 코치님은 그냥 ‘아저씨’였거든요.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베테랑 포수였던 터라 감히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였죠.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팀 신인 포수인 나종덕(19)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저씨’로요(웃음). 최기문 코치님이 인상적이었던 건 후배인 제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도 절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셨어요. 공수 교대할 때면 알아서 장비와 글러브를 챙겨주시고 물도 갖다주셨어요. 그게 하기 쉬운 행동은 아니잖아요. 저도 그런 모습을 보고 성장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최 코치님처럼 대해 주려고요. 언젠가는 주전 포수 자리도 후배들에게 내줄 때가 올 겁니다. 그런 상황을 맞이해도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4년 전 롯데와 75억원의 FA 계약을 맺은 후 이듬해 바로 ‘먹튀’라고 비난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새 두 번째 FA를 맞이하네요(2017 시즌 이후 FA).

 

“당시 제가 실수했던 부분을 곱씹으면서 두 번째 FA에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게 작은 목표입니다. 당시만 해도 제가 포수로는 최초로 가장 많은 금액의 FA 계약을 맺은 거잖아요. 그때는 정작 해야 할 야구를 안 하고 기사만 찾아봤어요. 천문학적인 금액을 받아내면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었죠. 정말 한심했습니다. 올해는 이런 ‘짓’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해요. 돈을 더 벌려고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평소 갖고 있는 실력을 꾸준히 보여주는 게 목표입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뛰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먹튀’란 오명이 야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맞나요.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었어요. 만약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면 기사 제목이 ‘지난해 75억원의 FA 계약을 맺은 강민호, 4타수 무안타’라고 나오는 거예요. 그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초반에 부진하더라도 제 야구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하도 욕을 하니까 유인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에 변화구가 온다는 걸 알면서도 변화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하더라고요.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어요. 뭔가 보여줘야 했고, 주위의 기대는 점점 커졌고, ‘먹튀’는 되기 싫었고…. 그땐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게 정말 무섭더라고요. 집을 나와서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야구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어요. ‘어마어마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그 후론 제 기사의 댓글을 보지 않아요. 상처받는 게 너무 싫어서.”

 

그러다 ‘홈런왕’ 출신의 장종훈 코치를 만나면서 다시 살아났죠.

 

“장 코치님이 우리 팀에 오신 후 처음 갖는 애리조나 캠프에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민호야, 왜 안 되는 것 같니? 뭐가 문제였다고 생각해?’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2014년 타율이 0.229였거든요. 장 코치님은 그런 절 보면서 안타까워하셨고, 롯데 코치 부임 후 첫 번째 목표가 ‘강민호 살리기’였다고 해요. 장 코치님은 캠프 내내 타격 무게중심에 대해 강조하셨어요. 직구보다 변화구는 더 앞에서 쳐야 한다며 제가 갖고 있던 생각보다 두세 개 앞에 두고 치라고 조언하셨죠. 9년 동안 해 왔던 타격 폼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어요. 기대가 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공존했었죠. 그 캠프 동안 방망이만 14자루를 부러뜨렸어요. 자꾸 공이 방망이 끝에 맞으니까 부러지더라고요. 장 코치님은 그래도 계속 연습을 멈추지 말라고 하셨고, 삼진 먹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히팅포인트를 앞에 두면서 과감히 휘두르라고 조언하신 부분이 2015 시즌 반전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강민호는 FA 첫해인 2014 시즌 타율 0.229 16홈런 40타점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5년에는 확 바뀌었다. 박경완 이후 11년 만에 30홈런을 때린 포수이자 KBO리그 최초의 3할 30홈런 포수이기도 했다. 타율은 0.311로 회복했고, 35홈런 86타점을 기록했다.

 

2016년 4월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5회초 삼성 공격을 무사히 막아낸 강민호(왼쪽)와 박세웅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마디로 ‘어메이징했던’ 2015 시즌이었어요. 장종훈 코치의 노력과 수고가 빛을 발했네요.

 

“저도 그만큼 해낼 줄 몰랐어요. 그해에는 모든 기운이 저한테 쏠리는 듯했습니다. 2년 동안 마음고생을 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30홈런을 때려낸 순간이었죠. 삼성 선발 클로이드를 상대로 서른 번째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도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더라고요.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며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한 후 장 코치님 뒤로 가서 조용히 안아 드렸습니다. 정말 감사했거든요. 제가 가장 힘들었고, 결정적인 반등의 계기가 필요했을 때 장 코치님이 구세주처럼 나타나셔서 절 일으켜 세워준 거예요. 인생이 참 재미있지 않나요?(웃음)”

선배 이대호의 복귀로 강민호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다고 말한다. 롯데의 ‘4번 타자’가 돌아옴으로써 전력은 물론 분위기도 한층 활기차고 밝아진 걸 느끼면서 이대호의 존재감이 갖는 효과와 영향력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됐다는 강민호.

 

“이제 다른 건 필요 없어요. 대호 형이랑 함께 모든 선수들이 힘을 내서 만원 관중으로 가득 찬 사직구장에서 재미있게 야구하는 게 소원입니다. 무엇보다 야구를 잘해야 되겠죠. 분명 잘할 겁니다. 올 시즌 롯데가 어떻게 비상하는지 꼭 지켜봐주세요. 그걸 이루고 난 다음에 다시 인터뷰할게요. 이 약속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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