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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비정규직 ‘先 사유제한 後 기간제한’이 현실적 대안

[비정규직 정책대안①] “비정규직 철폐는 선언적 구호…구체적 정책 목표 설정해야”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5(Sun) 16:52:01 |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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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제시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용사유 제한’과 같은 노동계 요구를 보수정당 대선후보들조차 내세우는 상황이다. 남은 것은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의 문제다. 시사저널은 ‘비정규직 문제’ 기획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현실적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담는다. 

 

1997년 말 소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는 여러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특히 고용 부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은 1963년 이후 1996년까지 연평균 9.9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고용불안’이라는 단어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7% 이상의 고도성장 국면을 지나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고용불안이 점차 확산됐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와 계약 형태상의 ‘차이’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임금과 복지 등 제반 근로조건에서 ‘차별’도 함께 당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짧은 고용기간으로 인해 불리한 점은 더 높은 임금으로 보완해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겠지만, 고용불안·경력단절·숙련미형성 등의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체로 정규직보다 임금수준이 낮다.

 

그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내에서 고용불안 뿐만 아니라 낮은 처우로 인해 이중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단기고용·간접고용 방식으로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할 뿐 아니라 인건비 절감 효과 또한 누리고 있다. 만약 사용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활용하면서 고용조정의 효과와 인건비 절감 효과 중 하나의 장점만 취했다면 비정규직 고용이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고용 불안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득분배 불평등의 심화와 내수경제의 위축, 사회적인 재생산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 연합뉴스


비정규직 사라질 수 없지만 심각한 사회문제 야기

 

비정규직은 반드시 사라져야만 하는 고용형태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규직 노동자의 출산휴가나 산업재해 대체목적 등으로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주고 사전에 정해진 기간 동안 비정규직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남용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계 일부의 ‘비정규직 철폐’ 주장은 현실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선언적인 구호 이상의 의미는 없다.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혀 활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는 이중적인 차별을 사회적으로 외면할 수도 없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낮은 처우로 인해 사회적 삶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고용 불안정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소득분배 불평등의 심화와 지역경제 및 내수경제의 위축, 나아가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고용이 불안하고 소득수준이 낮은 청년 노동자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면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이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이어진다. 또한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쳐 다시 일자리 감소와 경제성장 동력 약화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사용자)은 비정규직 활용으로 장점을 취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로 야기되는 문제점들은 사회가 책임을 져야하기에 개별 사용자와 노동자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적 차원에서 비정규직 고용 대책은 더욱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용기간 제한에도 비정규직은 늘어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개선방안은 지금까지 크게 두 가지로 접근해 왔다. 먼저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차별적인 처우를 금지하는 방안을 떠올릴 수 있다. 즉,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을 통해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하며, 사용자의 차별 처우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보호하자는 것이다.

 

물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 보호법)’에 차별적 처우 금지 조항이 담겨 있긴 하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담당업무에서 약간의 차이를 설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 이러한 점에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방식으로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점을 완화하는 것은 사용자들의 ‘선한 의지’에 기대지 않는 이상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고용을 제한하는 방안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되 일정기간 동안만 고용하는 기간제한 방식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활용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만 허용하는 사유제한 방식 △기간제한 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소위 반복적인 ‘쪼개기 계약’)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계약횟수제한 방식이 있다. 비정규직 활용을 제한하는 세 가지 방식 중에서는 사유제한 방식이 가장 강력하다. 기간제한 방식의 문제점 보완으로 계약횟수제한을 병행하는 방식도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간제한 방식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1년에서 최장 4년까지 비정규직으로 활용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최장 2년까지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해주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기간제한 방식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2007년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계 추계로 약 858만명, 정부 추계로 약 570만명이었는데, 2016년에는 노동계 추계로 약 874만명, 정부 추계로 약 644만명으로 노동계와 정부 추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수는 증가했다. 노동계 추계에서는 약 17만명, 정부 추계에서는 약 74만명의 비정규직이 증가해 정부 추계에서 오히려 더 많이 증가했다. 과거에는 기간제 노동자들에게 맡겼던 업무를 점차 파견·용역 노동자들이 담당하도록 한 풍선효과 때문이다. 기간제한 방식의 규제는 비정규직을 줄이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고용이 불안하고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비정규직을 줄일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노동계가 요구하는 비정규직 사유제한과 사용자들이 고집하는 기간제한 규제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서는 기간제 사용 기간을 4년까지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OECD 평균 수준을 정책 목표로

 

기존의 사유제한과 기간제한(추가로 계약횟수제한)의 고민을 넘어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을 직접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즉, 지금과 같이 전체 노동자의 33~45%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은 과도하게 높은 비율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율 조정의 기준을 확립하고, 그 조정 방식으로 기존의 규제 방식을 가변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한시적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일정한 비율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는 강력한 사유제한 방식으로, 그리고 일정한 비율 이하로 떨어지면 완화된 기간제한 방식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조정해 사회적인 총량 차원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완화하자는 것이다.

 

‘적정 비정규직 비율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적정 비정규직 비율의 기준으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가 간 비교 데이터가 가장 무난할 것이다. OECD에서는 국가별로 공통적인 기준으로 다양한 고용 데이터들을 수집해 제공하고 있는데, 애석하게도 비정규직 비율 정보는 제공하고 있지 않다. 사실 비정규직 유형은 매우 다양해 국가별로 비정규직 범주에 포함되는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기준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비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정규직 고용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임시고용과 시간제 고용에 대해서만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임시고용(기간제 계약) 비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OECD에서 제공하는 2015년 기준 국가별 임금노동자 중 임시고용 노동자의 비율은 OECD 평균 11.4%다. 한국은 22.3%로 OECD 평균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임시고용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이 임시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전환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임시고용 비율은 매우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임시고용 비율을 기준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시도해보자.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비율 규제를 얘기하는 순간 “그러면 당신은 비정규직 (완전) 철폐에 반대 하는가”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사용자들은 사유제한 방식을 (한시적으로) 도입한다는 것에 대해서 강한 반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현재와 같은 한국 노동시장의 관행이 지속된다면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비정규직 고용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한발씩 양보하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고용이 남용돼 고용안정 뿐 아니라 삶의 안정이 훼손되면서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사유제한-기간제한(또는 계약횟수제한)이라는 기존 논의를 아우르면서 비정규직 비율제한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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