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시사미식] ‘가격적 차별화’ 핵심은 고객이 ‘손해 느낌’ 안 받는 것
  •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3 13:33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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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저렴한 음식이라도 지불한 금액에 비해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실패

저가형 프랜차이즈들이 앞다퉈 온·오프라인 광고 지면을 사들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발악처럼 보인다. ‘빽다방’ ‘쥬시’ 등 가격적 차별화를 내세운 브랜드들이 한동안 인기몰이를 했다. 불과 1~2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결산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투자금액 대비 수익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구분하기 어렵다. 결국 70~80%는 폐점하고 말 것이다. 이건 통계를 바탕으로 한 예측이다. 슬프지만 믿을 만하다.

 

이제 곧 닥칠 폐업 쓰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신규 브랜드들이 등장한다. 희한한 건 아직도 가격표의 뒷자리에 900원을 쓰는, 아주 구태의연한 가격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5000원보다는 4900원이 싸 보이겠지’ ‘7000원보다는 6900원이 착하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오해를 한다. 정말 모르는 소리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왼쪽 집은 6000원짜리 김치찌개를 팔고, 오른쪽 집은 5900원짜리 김치찌개를 팔 때 과연 어느 곳을 선택하겠는가? 인간의 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100원이라는 가격 차이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 즉 구매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채 10%도 되지 않는다. 이 100원의 차이는 파사드, 배너, 메뉴 수, 동영상 이미지, 브랜드 컬러, 동선, 플레이트, 커트러리, 접객의 톤과 매너, 양, 물의 온도 등에 의해 언제 어디서든 추격이 가능하다.

 

© 일러스트 김영진

인간은 얻었을 때보다 잃었을 때 훨씬 더 분노해

 

며칠 전 필자는 홍대 주차장삼거리 근처의 3300원 돈가스 집에 다녀왔다. 너무나 궁금했다. 편의점 도시락보다 싼 돈가스는 과연 어떤 맛일까? 건물 외벽에 붙은 커다란 현수막이 외투처럼 보이는 집이다. 일본식 사각 쟁반 위에 담긴 음식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썰려 나온 돈가스 조각 사이사이로 속살이 보인다. 색이 곱다. 소스를 뿌려 입으로 이 녀석들을 넣는 데까지 채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집어보면 안다. 고기가 얼마나 묵직하고 두툼한지, 그리고 튀김옷이 바스락대는지 가늠이 된다. 이미 혀에 올라온 돈가스 녀석은 까칠하다. 튀김옷이 날카롭게 서 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혀를 슬쩍 올려 입천장으로 밀면 금세 숨이 죽는다. 이걸 모르고 방정을 떨며 옮겨대니 생채기가 나는 거다. 120년 역사의 일본 원조집에야 댈 일이 아니지만, 33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아니 살짝 고맙기까지 하다.

 

좌우 테이블을 곁눈질해 본다. 오호라, 가격이 착하면 덤이 생기는 모양이다. 사람 숫자보다 메뉴 숫자가 더 많다. 좌측 커플은 돈가스 두 개에 우동처럼 보이는 국수를 주문했고, 바로 앞 테이블 음악 형제 셋은 돈가스만 네 개를 주문한 상태다. 그렇지! 이러면 객단가가 올라가지. 오너의 영리한 사전 기획이 놀라울 따름이다. 1000원 하는 공깃밥도 추가를 했고, 식당에서는 주문을 꺼리던 탄산음료도 한 캔 들고 나왔다. 허리띠를 한 칸 뒤로 물릴 정도로 먹었는데 달랑 5300원. 이러면 되는 거다. 가격적 차별화의 가장 핵심은 저렴한 가격이지만, 고객에게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거다. 인간은 얻었을 때보다 잃었을 때 훨씬 더 분노한다. 굳이 행동경제학의 대부(代父) 대니얼 카너먼 선생의 프로스펙트 이론을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안다. 1000원을 얻었을 때의 행복에 비해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과 피로감이 훨씬 크다는 것을 말이다.

 

외식업에 이렇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 주인장이 다가와 자주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로 음료수를 밀어준다. 메뉴에는 1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감사한 일이다. 반면에 7000원이라고 적힌 칼국수를 먹으러 들어갔는데 면발·육수·고명, 그리고 김치까지 어느 것 하나 7000원의 수준이 아니다. 6000원만 받아도 억울한 꼬락서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무려 2.5배나 된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저렴한 음식이라도 지불한 금액에 비해 아주 약간이라도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분노의 게이지는 2.5배에 이르게 된다.

 

 

‘미투브랜드’의 난립은 고객의 외면을 부른다

 

이를 쑤시며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필자는 하마터면 맛있게 먹은 돈가스를 토할 뻔했다. 3300원 돈가스가 생긴 지 얼마나 되었다고, 3200원 돈가스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게 아닌가. 꼬리를 무는 싸움이다. 기존 판매가격을 무너뜨렸으니 추격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단, 후발주자는 선두그룹 장점들의 교집합을 얄미울 정도로 치밀하게 배치해야만 고객에게 인심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끝,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아무리 식당의 기획이 탄탄하고 좋아도 ‘미투브랜드’(1위 브랜드나 인기 브랜드를 모방해 이에 편승한 제품)의 추격이 심해지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혹자는 이런 소리를 한다. 사악한 본사 때문에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착취를 당한다고. 일부는 그렇다. 악마처럼 빨대를 꽂고 고혈을 빠는 본사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도 이 양반들은 최소한 가맹점 간 법적 거리는 지킨다. 하지만 미투브랜드는 가차 없다. 코딱지만 한 상권 안에 3900원·3700원·3200원 포장마차가 난립한다. 서로들 베껴대느라 정신이 없다. 가격이 착하니 고객들이 이해해 주겠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실망한 고객은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단박에 외면해 버린다. 과당경쟁과 가격적 차별화, 그리고 생각 없는 투자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망가진 자영업자들은 신용불량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힌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당장의 생계가 어려워진다.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TV와 라디오에서는 연신 대출을 받으라고 부추긴다. 전화 한 통이면 된단다. 자석에 이끌리듯 수화기를 들고 상담원 연결을 시도한다. 이렇게 또 한 명의 대출자와 대출 총액이 늘어난다. 원금도 같이 상환해야 하니 돈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비는 또 그렇게 위축된다.

 

아마도 3개월 뒤에는 이들을 겨냥한 2900원 돈가스가 등장하리라. 잠시 잠깐 인기를 구가하는 사이 미투브랜드는 또 따라붙을 것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악순환은 이어져갈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은 언제쯤 마침표를 찍을지, 또 얼마나 많은 도시빈민들을 생산해 낼지 두렵기만 하다. 입맛도 없고 혀끝이 쓰다. 밥맛 없는 세상이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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