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징벌 말고는 선택의 여지 없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6 09:46
  • 호수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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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드 배치에 본격 제재 나선 중국

2월28일 중국 내륙 충칭(重慶)시 위중(渝中)구의 롯데마트 다핑(大坪)점. 필자는 소비자들의 방문이 드문 오후 2시에 매장을 찾았다. 실제로 매장에는 관리직원과 판촉사원이 절반, 고객이 절반일 정도로 한가했다. 중국인으로 위장해 상품을 사는 척하며 소비자들에게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이날은 롯데그룹이 이사회를 열어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의 성주골프장을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 부지로 제공하는 안건을 의결한 다음 날이었다.

 

50대의 한 여성은 “이전부터 롯데가 한국 정부에 사드 부지를 제공한다는 TV 뉴스를 봤다”면서 “매장이 집에서 가까운 데다 상품이 신선하고 가격이 싸서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2명의 중년 고객도 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30대의 한 남성은 관련 소식을 잘 알지 못했다면서 “사드 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기에 앞으로는 절대 롯데마트에 와서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롯데마트는 2013년 베이징, 상하이, 톈진(天津)과 함께 4대 직할시인 충칭에 국내 유통업체 중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다핑점은 같은 해 11월에 개장한 2호점이다. 이전까지 롯데마트는 주로 중국 동부에 진출해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靑島), 선양(瀋陽) 등 4곳에 법인을 설립했었다. 다핑점은 충칭의 대표적인 부도심에 자리 잡았다. 잉리(英利)백화점 지하 1층에 위치해 입지조건이 좋다. 소비자 구매평가 사이트에서 확인한 결과, 평균점수가 5점 만점에 4점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중국 매체 일제히 ‘롯데 때리기’

 

그러나 앞으로 롯데마트 다핑점은 가시밭길을 걸을 공산이 크다. 중국 관영매체가 일제히 나서 롯데그룹을 상대로 “불매운동에 나서겠다”며 선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2월27일 롯데의 안건 의결 직후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긴급뉴스로 타전했다. 신화통신은 “사드 배치가 전적으로 롯데의 책임만은 아니다”면서도 “이번 결정이 롯데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중국 소비자와 관광객을 분노케 해서 롯데 제품과 서비스를 자국 내에서 보이콧하는 악몽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진 이후 중국의 롯데마트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 모종혁 제공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롯데를 때리고 한국을 징벌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제목의 사설까지 내놓았다. 사설은 “한국은 중국이 결국에는 사드 배치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중국은 모든 조치를 다해 한국으로 하여금 징벌에서 피하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중 관계도 이제 ‘빙점’으로 내달리게 됐다”면서 “미국을 도와서 칼을 들이미는 한국을 상대로 장기적인 대립국면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관영매체의 비난과 선동에 중국인들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롯데가 안건을 의결하기 하루 전날인 2월26일 지린(吉林)성 장난(江南)시 롯데마트 앞에서 항의시위가 일어났다. 10여 명의 주민들은 ‘한국 롯데가 중국에 선전포고했으며 롯데는 사드를 지지하니 당장 중국에서 떠나라’는 붉은색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모두 얼굴을 마스크로 가려서 성별, 연령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중국 전역에 산재한 롯데 사업장에 대한 지방정부의 제재도 시작됐다. 2월28일 베이징시 둥청(東城)구 공상국은 롯데마트 충원먼(崇文門)점에 대해 불법광고 부착을 이유로 4만4000위안(약 748만원)의 벌금 처분을 내렸다. 중국 유수의 성형병원이 ‘연예인 성형수술 본산’이라고 소개하는 광고물을 매장 내에 부착했는데, 이것이 공공장소의 관리자로서 ‘광고법’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중국에서 시 당국이 사기업에 대해 공공장소의 관리 책임을 물어 벌금 처분을 한 일은 전례가 없다.

 

 

중국 정부의 본격 제재 시작돼

 

롯데는 1994년 중국에 진출한 이래 각종 사업을 확장해 왔다. 롯데제과, 롯데케미칼, 롯데알미늄 등 24개 계열사가 중국 각지에 생산기지를 세웠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성장하면서 롯데마트 99개, 슈퍼마켓 16개를 개점했다. 톈진, 선양, 웨이하이(威海), 청두(成都) 등에는 백화점 5개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관은 12개 점에 90여 개의 상영관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는 2019년 완공을 목표로 청두에 연면적 57만㎡ 규모의 복합상업단지 ‘롯데월드 청두’를, 선양에는 테마파크·쇼핑몰·호텔·아파트 등을 집중시킨 ‘롯데타운’을 건설하고 있다.

 

하지만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지면서 2016년 말 중국 정부는 롯데의 사업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 소방, 위생, 안전 등 각종 점검을 불시에 해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심지어 2016년 11월 선양의 롯데타운은 공사 절차상 미비점을 이유로 석 달째 공사를 중단시켰고 아파트 모델하우스도 폐쇄 조치했다. 롯데는 2016년 기준 6조원에 이르는 면세점 매출의 70%를 중국 관광객으로부터 거두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규제와 불매운동을 앞세워 응징에 나설 경우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물론 자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정치적 문제로 보복한 점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중국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다. 현재 롯데는 2만여 명의 중국인을 고용하고 있고, 적지 않은 세금을 중국 당국에 내고 있다. 2월28일 신화통신은 이를 의식한 듯 “롯데 사태가 중국의 외국인 투자 수용에 변화를 주진 않는다”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 보복은 택일만 남았을 뿐이다. 실제 같은 날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한 발언이 이를 증명한다. 겅 대변인은 “중국은 외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하며 법에 따라 중국에서 합법 권익을 보호할 것”이라면서도 “외국 기업은 중국에서 경영할 때 반드시 법과 규정을 지켜야 하며 외국 기업의 경영 성공 여부는 최종적으로 중국 시장과 중국 소비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외피(外皮)를 씌워 제재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 사업에서 수천억원의 적자를 냈던 롯데가 이제는 전면 철수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해야 할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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