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7 13:03
  • 호수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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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당사자와 정치권, 승복의 원칙 준수할 책임 있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해 가고 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2월27일 최종 변론기일 때 “어떠한 예단이나 편견 없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 지금까지 모든 노력을 다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헌재는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국가적 혼란 상황을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빠르고 집중적인 심리를 해 왔다. 속도와 공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거듭되는 헌재 모독 발언과 돌출적인 언행에도 헌재는 인내하면서 무리 없이 재판을 이끌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선고일이 돼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난 박 대통령의 수많은 헌법·법률 위반 행위를 생각하면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긴장 속에서 선고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선고가 있기도 전에 불복(不服)하겠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보니까,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쪽에서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변호사들은 아예 헌재 법정에서 불복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꺼냈다. 손범규 변호사는 2월25일 “구성조차 안 된 헌재에서 8인 또는 7인의 헌법재판관이 ‘9인의 재판관으로부터 재판을 받을 권리’까지 침해해 가며 사건의 평의·선고까지 하는 건 재심 사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심판에 관여한 법조인들은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극언을 했다. 이제까지 8인 심리를 인정하며 진행해 왔고, 한동안 일정을 지연시켜 7인 심리를 노리다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 선고 후 불복하고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를 꺼낸 것이다.

 

2월27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을 주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탄핵 반대쪽 ‘탄핵 불복’ 시사

 

그런가 하면 헌재 변론에서 막말을 계속해 물의를 빚었던 김평우 변호사는 집회에 나가 “헌재 결정에 복종하면 노예다” “탄핵소추안은 사기와 거짓말”이라며 “조선시대도 아닌데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느냐”는 말로 사실상 불복을 선동하고 나섰다. 조원룡 변호사도 “축구할 때 심판이 편파 판정하면 그 경기를 승복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와야 하는가”라며 헌재 결정에 불복할 뜻을 내비쳤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래도 헌법기관의 결정에 대한 승복을 말해야 할 여당 정치인들까지도 불복성 발언들을 하고 있는 광경이다. 자유한국당의 정치인들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박 대통령은 탄핵될 이유가 없다” “국회에서 엉터리로 올린 것이기 때문에 헌재는 각하하면 된다”며 헌재를 압박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보면 이미 탄핵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인용 결정을 예상하고 불복하기로 작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를 모독하는 상식 밖의 언행을 일삼았던 것도 헌재의 불공정성을 주장해 불복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나라를 이 지경으로까지 만든 데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할 대통령 측과 여당 정치인들이 석고대죄는 하지 않을망정, 이렇게 불복까지 부추기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나라를 어디까지 끌고 갈 셈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대리인들과 여당 정치인들이 이러니까 ‘백색 테러’의 움직임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탄핵 반대 집회들에서는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다.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다”는 위협이 나오는가 하면, 헌법재판관들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극언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김평우 변호사가 헌재 변론 때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해 주지 않으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며 “탄핵 인용 시 내란이 일어날 것”이라 했던 말 그대로인 셈이다. 실제로 이정미 권한대행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사람이 경찰수사가 시작되자 자수한 일까지 있었다.

 

 

“시가전, 아스팔트 피, 내란” 공권력은 방치

 

이쯤 되면 무법천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지경이다. 시가전, 아스팔트에 피, 내란, 이런 얘기들이 다중(多衆)이 있는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주장되고 선동이 계속되는데도 공권력은 그냥 방치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일로 나라가 지금과 같은 혼돈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인데도, 다시 대통령 편을 들어주기 위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언행이 계속되는 것을 경찰이나 검찰이 발본색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가혹했던 법치의 잣대가, 대통령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관용적인, 법치의 이중 잣대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황교안 권한대행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정부가 그러니, 헌재에 불복하자는 선동이 거리낌 없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은 반대의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물론 탄핵 인용 결정이 날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예상이지만, 만에 하나 기각 결정이 난다 해도 승복 이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게 된다. 물론 그런 경우 시민들이 그 같은 결정에 항의하는 촛불을 드는 것은 표현과 집회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경우는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옳고, 실제로 승복하지 않을 다른 방법도 없다.

 

나라가 무척 어렵다. 경제, 북한 문제, 외교 문제 등 조기 대선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감당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이다. 그런 마당에 헌재의 결정은 갈등이 정리되는 계기가 돼야지,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탄핵의 당사자들과 정치권은 승복의 원칙을 준수할 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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