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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갈수록 교묘하게 진화하는 ‘토익 부정시험’

의뢰인 사진과 합성, 해외 원정 나서기도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12(Sun) 12:00:00 | 14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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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900점’은 모든 대학생과 직장인의 꿈이다. 이들이 명문대 학벌 다음으로 꼽는 최고의 스펙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점수가 아니다. 영어학원을 오가고 밤을 새워 공부해도 ‘900점’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꿈의 점수’로 불린다. 이런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토익 부정행위자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토익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적발되는 부정행위 중 열에 아홉은 다른 응시자의 답안지를 훔쳐보거나, 메모를 해서 문제를 유출하는 정도였다. 한국토익위원회(토익위원회)에 설치된 사이버신고센터에 들어오는 제보도 대부분 단순 커닝이었다.

 

그러나 2009년을 기점으로 토익 부정시험에 첨단장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첨단장비가 동원되고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례는 두 번 정도에 그쳤다. 두 번 모두 주범이 동일인으로 40대의 김아무개씨였다. 김씨는 조직원들을 모아 철저하게 역할 분담을 시켰다. 초소형 무전기와 휴대전화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진행했다. 영어에 능통한 이른바 ‘선수’를 수험생으로 가장해 시험장에 잠입시킨 후 문제를 풀어 밖으로 유출하면 시험장 주변에 대기 중인 조직원들이 이를 받아 수험생들에게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서울에 있는 한 어학원에서 수강생들이 토익 모의 듣기 평가를 하고 있다. 토익·텝스 부정시험에 사용된 단추 카메라(오른쪽 사진)와 송신기 © 뉴시스·연합뉴스


소형 무선송신기 등 특수장비 동원

 

그 이후부터 시험 부정행위는 갈수록 첨단장비가 동원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토익위원회가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취업과 승진 등을 앞둔 부정행위자들도 필사적이다. 자체 제작한 특수장비를 사용하거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신종 수법도 등장했다. 아울러 전통적인 대리시험 수법도 한층 진화돼 촘촘한 감시망을 보란 듯이 무력화시켰다. 

최근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토익이나 텝스 시험을 대신 치러주고 돈을 받아 챙긴 외국계 회사원과 부정행위를 의뢰한 대학생·직장인 등 20여 명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경찰은 이 중 주범인 외국계 제약회사 직원 김아무개씨(30)를 구속했다. 김씨는 미국 고등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서울 명문사립대를 졸업하고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쳤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입사해 높은 연봉도 받았지만, 유흥비 마련을 위해 범행에 나섰다. 자신의 영어 실력을 이용해 쉽게 돈을 벌고자 대리시험이란 범행에 손을 댄 것이다.

 

김씨와 의뢰인들은 전통적인 ‘대리시험’ 수법을 이용했지만, 방법은 이전보다 훨씬 교묘해졌다. 의뢰인 모집창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어학시험 카페 자유게시판과 언론사의 관련 기사 댓글이었다. 김씨는 여기에 댓글로 ‘어학시험 대리 합격보장’이라는 광고성 글을 올린 후 자신의 이메일을 남겨놓았다. 영어 고득점이 필요했던 대학생 신아무개씨(30)와 직장인 최아무개씨(41) 등은 김씨가 남긴 이메일로 문의했다. 그러면 김씨는 이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점수와 가격 등을 흥정했다.

 

 

부정행위 걸리면 패가망신

 

이들은 흥정이 끝난 후에는 본격적인 공모에 들어갔다. 김씨는 ‘대리시험’ 수법을 지능적으로 이용했다. 먼저 의뢰인의 사진을 이메일 등으로 전송받은 후 자신의 사진과 합성했다. 이때 의뢰인과 자신의 얼굴을 교묘히 합성해서 같은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여기에는 고도의 사진 합성기술이 동원됐다. 그런 다음 이 사진으로 신분증을 재발급받았고, 김씨는 그걸 들고 시험장에서 사용했다. 두 사람 얼굴을 교묘하게 합성한 탓에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았다. 시험 감독관들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을 정도다. 김병수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경찰이 추적해서 밝혀내기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수법”이라고 밝혔다. 취업이나 승진을 앞두고 높은 영어 성적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김씨에게 돈을 주고 대리시험을 의뢰했다.

 

김씨는 부정행위 대가로 1인당 400만~500만원씩 받았다. 2013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16일까지 3년 동안 챙긴 돈은 약 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챙긴 돈의 대부분을 유흥비로 흥청망청 탕진했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회사원 김아무개씨(27)의 경우 자신의 토익점수는 평균 200점대였다. 김씨에게 대리시험을 의뢰할 당시 원하는 점수가 ‘800점’이라고 했으나 940점의 고득점이 나오자 이 점수를 낼 경우 부정행위가 적발될 것을 우려해 회사에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제주에서도 적발됐다. 최근 제주지방검찰청은 업무방해와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이아무개씨(30)를 구속하고, 토익 등 대리시험 의뢰인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사진 합성이 안 되는 여성 등의 의뢰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선장비를 동원했다. 즉 의뢰인과 이씨가 함께 시험장에 들어간 후 소형 무선송신기로 의뢰자들에게 답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씨는 2014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47차례에 걸쳐 총 37명에게 1인당 130만〜600만원의 돈을 받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렇게 해서 1억2000만원 정도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 이씨는 의뢰인들을 모집하기 위해 SNS(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적극 이용했다. 그는 “토익 시험 970점까지 가능하다”며 의뢰인들을 끌어모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13년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수신기 등 토익 부정행위에 사용된 장비를 공개했다. © 연합뉴스

 

 

이씨에게 부정응시를 의뢰한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20〜30대 취업준비생들이거나 승진시험을 앞둔 교직원들로 조사됐다. 이씨는 범행 원인에 대해 “사이버 도박을 하면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범행에 나섰다”고 진술했다. 이씨에게 돈을 주고 시험을 대신 치르게 한 의뢰인은 초등학교 직원, 공공연구기관 직원, 사립대 교직원 등 다양했다. 이철 제주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이씨는 SNS에 광고하는 방식으로 의뢰인들을 모았다”고 말했다. 위 두 사례를 보면 고전적인 ‘대리시험’ 수법이 갈수록 첨단화하고 진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토익 부정시험은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다. 부정시험을 위해 일반인의 상상을 깨는 기발한 장비들이 동원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특수 제작한 외투에 휴대전화를 숨긴 후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법이다. 이른바 ‘선수’로 불리는 영어 고득점자가 패딩점퍼 속에 초소형 렌즈가 장착된 무선카메라를 숨기고 부정시험을 보는 것이다. 선수가 시험문제를 푼 후 몰래 답안지를 촬영해 시험장 밖에 있는 차량으로 유출한다. 시험장에 있는 수험생들은 귓속에 넣은 초소형 음향수신기로 그 답안을 전달받는 수법이다. 귓속 깊숙이 집어넣어 고막의 진동을 이용하기 때문에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이들은 영상 전송용 무전기, 수신용 안테나, 단추 카메라, 스마트 시계 등 첨단장비를 활용해 손쉽게 답안을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장비들은 서울 용산전자상가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게 토익 부정행위 브로커들의 말이다.

 

토익위원회는 2004년부터 시험 전에 의무적으로 휴대전화를 제출하도록 하고 전파탐지기까지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부정행위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있다. 그러나 토익 부정행위에 적발되면 말 그대로 패가망신한다. 현행법상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토익 시험 응시자격을 5년간 박탈당하고,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취업을 위해, 승진을 위해, 고(高)스펙을 위해 부정행위에 나섰다가는 자칫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시험 주관사인 토익위원회도 여러 부정행위 감지 시스템으로 촘촘한 감시에 나서고 있어 성공할 확률보다는 적발될 확률이 더 높다고 봐야 한다.

 

 

해외 원정 부정행위도 판친다

 

일부 토익 부정시험 브로커들은 ‘해외 원정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감시가 느슨한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을 타깃으로 정한다.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경우 토익 시험을 한 달에 한 번 시행한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하루에 두 번 볼 수 있고, 점수도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이 작용했다. 또 다른 이유는, 동남아 국가들은 토익 문제를 자체 출제하기보다는 한국 등에서 냈던 기출문제를 그대로 출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상문제 추출이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해외 원정을 통해 토익 고득점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 시사저널 미술팀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드러난 브로커들의 수법을 보면 국내에서 수험생을 모집한 후 현지에 있는 전문가들을 매수해 부정행위에 가담시켰다. 여러 가지 수법이 동원됐다. 그중 하나가 ‘헛기침 작전’이다. 먼저 현지에서 토익 고득점자를 포섭해 조직원으로 가담시킨다. 그런 다음 현지인, 브로커, 의뢰인 등이 시험장에 들어가 손목시계의 초침을 동시에 정확하게 맞춘다. 현지인에게 각각 1~200번까지의 문제를 할당하고 이들이 문제를 푼 후 1~5초 사이에 헛기침하면 ‘1번’, 6~10초 사이에 헛기침하면 ‘2번’ 하는 식으로 답을 맞히는 방식이다. 이들은 실제 부정행위에 나서기 전에 수차례에 걸쳐 예행연습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특수장비가 장착된 신발이 동원되기도 한다. 국내 총책은 현지 국가의 조직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토익 900점 이상이 가능한 실력자들만 모아놓는다. 의뢰인이 1000만원을 입금하면 브로커가 200만원을 사례금으로 가져가고, 50만원은 현지 조직원의 몫이다. 나머지 750만원은 총책이 가져간다.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고 금액이 할당되면 해당 국가의 시험장에 현지 조직원과 의뢰인이 동시에 입실한다. 이들의 신발 속에는 특수 제작된 송신기와 수신기가 장착돼 있다. 현지인은 신발 속 송신기와 연결된 전선을 바지 속으로 집어넣고 왼쪽 팔목으로 나오게 해서, 시험문제를 푼 뒤 정답을 전송한다. 이때 의뢰인의 신발 속에 장착된 수신기에서 진동이 울리고, 사전에 약속한 신호음의 강도와 횟수를 통해 정답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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