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X 560kg이면 서울시민 12만 명 피해”
  •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9 12:31
  • 호수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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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의 안보브리핑] 김정남 테러 사건은 대규모 화학전 전초전

말레이시아 정부는 김정남 암살 사건의 부검 결과를 2월25일 공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것은 신경중독제인 VX라고 공식 확인했다. 사타시밤 수브라마니암 말레이 보건장관은 “부검 결과, 신경작용제가 매우 심각한 마비를 일으켜 피해자를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사망케 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정남의 시신에 VX의 잔여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확인해 줬다. 이로써 김정남의 사망은 북한 측 주장처럼 단순한 자연사가 아니라 독극물에 의한 암살임이 드러났다. 문제는 김정남을 살해하는 데 사용된 독극물이 암살에 특화된 독극물이 아니라 화학무기라는 점이다.

 

 

VX, 군용 화학무기 가운데 가장 강력

 

VX는 사린보다 100배나 강한 독성을 지닌 치명적 화학무기다. 이러한 화학무기를 동남아 국적의 여성을 이용해 암살에 사용한 북한의 치밀함은 테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테러에 동원된 여성들의 면면이다. 베트남 국적의 도언 티 흐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는 전문적인 암살범이나 공작원이 아닌 일반인으로 알려졌다. 자신들은 김정남의 얼굴에 ‘베이비오일’을 발랐던 것뿐이며 ‘몰래카메라’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이 여성들은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 사용했을 경우 실행범 자신들이 사망할 수도 있었다는 점, 또한 그 방식을 익히기 위해 충분히 예행연습을 했었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들의 항변은 궁색하다.

 

화학무기를 장착한 미사일 탄두(위 사진)와 미국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화생방훈련에 참가 중인 화생사 대원들 © 양욱 제공

이처럼 보안 당국이나 테러의 표적이 된 인물이 경계심을 낮출 만한 동남아 현지 여성을 실행범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새로운 테러 형태를 엿볼 수 있다. 2011년 9월 한 탈북 인권운동가의 암살 시도도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북한에 포섭된 탈북자에 의해 시도됐다. 이렇듯 북한은 스스로 나서기 곤란한 상황에서는 현지인을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현지의 자생적 테러조직을 활용하는 IS(이슬람국가)의 새로운 테러 형태와 닮은 모습이다.

 

북한이 암살에 사용한 VX는 군용 화학무기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 VX는 불과 10mg 정도의 양을 피부에 접촉하면 사망에 이른다. 또한 VX는 윤활유와 같은 점성으로 사린(GB·맹독성 신경가스의 한 종류)이나 타분(GA·독성 유기 화합물) 등 다른 화학무기보다 증기압이 낮아 살포된 지역에 오래 잔류한다. 과거에 VX를 암살에 사용했던 것은 일본의 옴진리교로, 신도들 가운데 배신자로 추정되는 3명에게 VX를 접촉시켰으나 오직 1명만이 사망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 북한이 암살에 사용한 것은 VX 가운데서도 진화한 ‘이원화 VX(VX-2)’로 추정된다. 기술력이 발달하지 않으면  VX 자체를 탄두에 밀봉해 사용함으로써 보관과 사용에 극도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원화 기술을 사용하면 평상시에 2가지 물질의 형태로 보관했다가 유사시에 혼합해 발사할 수 있게 된다. VX의 경우 QL이라는 액상물질에 황이 결합되면 VX-2가 된다. 김정남 암살 시에 두 여성이 손에 물질을 바르고도 살아남은 이유가 VX-2라면 설명이 된다.

 

북한은 201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VX-2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VX-2를 확보한 것은 이미 1990년대 초반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VX-2를 들여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미 VX를 보유한 북한이 굳이 VX-2를 개발하려는 이유는 역시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에 활성화된 상태로 보관된 화학탄은 화생방부대만이 보관 및 취급이 가능해 실전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지만, VX-2처럼 안정된 형태의 화학탄이라면 조금 더 쉽게 보관과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북한이 본격적으로 화학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폐기를 기다리고 있는 미군의 155mm 화학탄(겨자가스) © 양욱 제공

北, 화학무기 보유량 세계 1위

 

북한은 한때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으로 평가됐다. 4만 톤을 보유했던 러시아나 3만3000톤을 보유한 미국 다음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보유량은 2500~5000톤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가입한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화학무기를 거의 다 폐기했다. CWC에 따르면, 2012년 4월29일까지 가입국은 화학무기를 모두 폐기해야만 하는데,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이 90%, 러시아가 92%를 폐기했다. 따라서 북한은 현시점에서 세계 1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이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화학무기는 대부분 미사일이나 장사정포 등에 장착돼 발사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보유한 포탄 가운데  10% 정도가 화학탄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장사정포, 170mm 자주포나 240mm 방사포 포탄의 70%가 화학탄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스커드B·C 미사일의 30~40%가 화학 탄두라는 평가도 있다. 미군의 분석에 따르면, 사거리 300km짜리 스커드B 1발에 560kg의 VX를 탑재해 서울 도심에 투하할 경우 최대 12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화학무기 보유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용 의지다. 이미 북한은 암살에 VX를 사용함으로써 언제든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집단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 정부군은 여태까지 최소한 3번 화학무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배후에는 북한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또한 북한이 안전한 보관이 가능한 VX-2를 개발했다는 것은, 화학무기를 더욱 본격적으로 확산하겠다는 의지로도 보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 ‘빈자(貧者)의 핵무기’인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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