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원 막 내린 탄핵 정국, 그 속에 드러난 법의 허점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3.1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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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탄핵 정국 속 드러난 법률적 미비점 5가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했던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심판이 끝났다. 다만 다른 점 하나, 13년 전 탄핵심판은 기각됐고 이번 탄핵심판은 인용됐다.

 

헌정사에 자주 볼 수 없는 탄핵이다 보니, 탄핵 정국에서는 법률의 미비점이 드러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가 그랬다. 당시 소추안이 넘어오자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에 명시된 몇몇 조항 외에는 탄핵심리에 필요한 절차적 규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탓에 시작부터 애를 먹었다. 심리에 들어가기 전부터 절차적 선례를 마련하는데 상당한 힘을 쏟아야 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1차 공개변론 전 국회 소추위원 측에서 원래 제시했던 3가지 탄핵사유 외에 탄핵사유를 몇 가지 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그 적법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소추위원측은 검찰이 공소장에 공소사실을 추가하는 것과 같이 동일 사유에 대해서는 탄핵사유를 덧붙일 수 있다고 본 반면 노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국회의 소추권은 국회의 의결에서 비롯되니 당연히 재의결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번 탄핵정국이 전개되는 동안 법률의 여러가지 미비점이 동시에 드러났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 사진공동취재단

당시에는 탄핵소추 철회에 대한 문제도 떠올랐다. 여론의 역풍이 불자 조금씩 탄핵소추안 철회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이 없었다. 헌법에는 재적의원 과반수로 탄핵소추가 발의되고 3분2 이상 찬성으로 의결된다고만 명시돼 있다. 소추를 거둬들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어떤 명문화된 규정이 없었다. 

 

그렇게 2004년 한 번의 탄핵심판을 거치고 법률적 미비점이 어느 정도 보완됐다. 그리고 2016년 12월, 헌정 사상 두 번째 탄핵심판이 시작됐고 그렇게 2017년 3월1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탄핵심판 역시 탄핵과 탄핵을 둘러싼 주변부에서 여러 규정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 “형사소송이 진행되면 탄핵심판이 미뤄질 수 있다”

 

대통령 파면을 낳은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의 경우 탄핵심판과 비슷한 이유로 형사재판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헌재법 51조는 ‘탄핵심판 청구와 같은 이유로 피청구인에 대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라면 헌재가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선 실세’ 최순실씨 등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탄핵심판이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탄핵심판 초반에 제기됐다. 대통령 측의 “탄핵심판에 형사소송 원칙을 준용해 사실을 규명해야한다”는 거듭된 주장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 “탄핵 진행 중에 대통령이 자진사퇴할 수도 있다”

 

만약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목전에 두고 대통령이 사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일단 국회법 제134조2항에 따르면 소추 의결서가 송달된 이후 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는 것으로 돼 있지만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자리한 대통령은 임명권자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따라서 탄핵을 피하기 위한 회피술로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를 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래서 사임할 수 있느냐 여부부터 법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생겼다.

 

만약 대통령이 탄핵심판 진행 중에 실제로 사임할 경우도 문제였다. 물러난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대해서는 어떤 규정도 존재하지 않아서다. 이미 물러난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느냐의 해석은 법조계에서도 제각각이었다. 심판 대상이 돼야 할 대통령이 없는데 계속 재판을 해야 하는 지도 논란이 됐다. ‘각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최종 결정을 내려야한다는 해석도 있었다. 해석 여부를 떠나 어느 정도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파면이 유력한 대통령이 사임할 경우 ‘전직대통령예우법’에 따른 예우를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여론이 용납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청문회장의 텅 빈 증언석. 현재는 출석요구서를 받지 않은 증인은 청문회장에 나오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 ⓒ 사진공동취재단

▷ “증인이 출석요구서를 안 받으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

 

증거조사 과정에서는 일부 증인의 증언과 출석 거부가 계속됐지만 그에 비해 헌재의 제재수단은 빈약했다. 헌재법에 따르면 현행법상 증인이 출석을 거부하면 형사처벌 할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이런 처벌 규정이 없어서 문제가 되자 이후에 보완했다. 하지만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이런 처벌도 증인 대상들이 출석요구서를 받은 다음에야 효력을 발휘한다. 출석요구서를 고의로 피할 경우 방법이 없다.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청문회를 회피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국회 출석요구서 수령을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보여줬다. 증인 무더기 불출석으로 사건의 실상을 밝히는데 애를 먹었던 만큼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탄핵의 주변부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 중 하나는 황교안 국무총리였다. 박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이후 권한대행을 맡은 황 총리.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 국무위원의 순서로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따로 규정하는 법률은 없다. 

 

권한대행의 권한행사 범위는 현상유지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어디까지가 현상유지인지가 구체적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황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 및 각종 행보를 두고 정치권의 지적이 줄곧 이어졌다. 특히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퇴임 뒤 9번째 헌법재판관 임명 여부는 날선 쟁점이었다. 국회정무위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업무범위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모여 외쳤던 정치인, 정당에 대한 비판은 탄핵이 인용되면서 선거법 위반 사항이 될 수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탄핵 인용 직후부터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발언 안된다”

 

3월10일 오전 11시21분, 탄핵안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서 대통령은 파면됐다. 이렇게 되면 곧 대선국면이 시작된다. 탄핵 정국에서 시민단체들은 선거법 문제를 제기했다. 선거법상 헌재 선고가 내려지는 직후부터는 집회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란 게 선관위의 해석이지만 반대로 표현의 자유를 막는 독소조항이란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공직선거법 103조에 따르면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향우회ㆍ종친회ㆍ동창회ㆍ단합대회 또는 야유회, 그 밖의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보통 여기서 말하는 ‘선거기간’은 정상적이라면 대선 전 180일이었겠지만 이번에는 탄핵 탓에 대선시계가 빨라졌다. 파면 선고와 함께 선거기간이 시작됐기 때문에 헌재 결정 이후 60일이 선거법의 선거기간에 해당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광장에 모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3월10일부터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모든 발언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된다. 현실 시계와 맞지 않는 선거법 시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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