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로 北·中 동시 압박
  •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13 17:03
  • 호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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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의 안보브리핑] 美, 중국 압박해 북핵 포기 종용하려는 메시지

1991년 9월27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 모든 지상 및 해상 발사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 방어에서 핵심 역할을 하던 주한미군의 무기 또한 철수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냉전이 종식된 이상 전술핵무기의 존재가 필수적이 아니라고 판단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 여기에는 소련이 무너졌으니 북한도 곧 무너질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도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8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26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는 비핵화는커녕 핵무기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북한은 무려 5차례 핵실험으로 핵탄두까지 폭발시켜봤고, 이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새로 들어선 트럼프 정권이 북에 대한 선제타격론까지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상황에서도, 북한은 2월12일 ‘북극성-2’ 신형탄도탄을 발사해 미사일 기술의 진전을 과시했다. 3월6일에는 스커드ER 미사일 4발을 동시발사하면서 주일미군기지 타격을 공언했다. 이에 미국은 곧바로 사드 포대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전술핵 재배치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전술핵 재배치의 개념부터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전술핵과 비슷한 의미로 전략핵이란 말이 사용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전략핵이란 전장에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전쟁계획에 따라 적국의 산업·수송·경제 또는 에너지 기반을 궤멸시키는 데 사용되는 무기다. 이에 따라 ICBM이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또는 전략폭격기 등 소위 핵전력의 3요소(Nuclear Triad)에서 쓰이는 무기는 전략핵무기에 해당한다.

 

B61-12는 기존의 전략폭격기는 물론이고 F-15E 전투기나 F-35A 스텔스기까지도 장착이 가능하다. © 양욱 제공

전략핵과 전술핵은 다른 개념

 

이와 다르게 전술핵은 아군 지근거리의 전장에서 사용되는 핵무기를 말한다. 그래서 핵전력 3요소 이외의 모든 형태의 핵무기, 예를 들어 전술핵폭탄, 8인치 포탄, 155mm 포탄, 단거리 지대지미사일, 대공미사일, 대함미사일, 핵지뢰, 핵어뢰, 핵기뢰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파괴력도 다양해 핵탄두를 장착한 무반동포인 ‘데이비 크로켓’은 불과 TNT 10~20t의 파괴력에 불과하지만, ‘랜스’ 단거리 핵미사일은 무려 100kt의 파괴력을 가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들도 현대적 기준에서는 전술핵에 불과하다.

 

한반도에 핵무기가 들어온 시기는 6·25 전쟁 이후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북한에는 약 150만 명의 중공군이, 대한민국에는 약 33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미군은 몇 년 동안 남한 방어 전략을 고민하다 1957년부터  펜토믹 사단(Pentomic Division)을 한국에 배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 주둔하던 7사단이 펜토믹 사단으로 개편되면서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전술핵이 배치됐다.

 

전술핵으로는 TNT 10t 파괴력의 데이비 크로켓과 같은 핵무반동포도 있었다. © 양욱 제공

펜토믹 사단과 함께 최초로 배치된 전술핵무기는 ‘어네스트존’ 전술핵 탄도탄과 M65 280mm 원자포였다. ‘어네스트존’은 미사일이 아니라 유도장치가 없는 로켓으로 사거리는 37~48km에 불과했지만, 탄두에는 2kt, 20kt, 40kt 3가지의 W-31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15톤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파괴력이라고 할 수 있다. M65 원자포는 무려 2대의 트랙터에 의해 견인되는 83톤짜리 거포(巨砲)로, 운용에만 20여 명의 병력을 필요로 했다. M65 원자포는 15kt 파괴력의 W-9 핵포탄을 30km 정도 떨어진 목표까지 날릴 수 있었는데, 모두 20대가 제작돼 한국과 독일에 16대가 보내졌다. 또한 B61 전술핵폭탄도 비슷한 시기에 배치됐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유연반응전략에 따라 펜토믹 사단 개념은 폐지됐으나, 마타도어 순항미사일, 핵지뢰, 그리고 나이키-허큘리스 지대공미사일의 핵탄두장착형 등이 배치됐다. 이외에도 데이비 크로켓 핵무반동포와 서전트 단거리 핵미사일, 155mm 핵포탄 등까지 1967년께 한반도에 무려 950여 발의 핵탄두가 배치됐다. 이 시기 미군의 남한 핵전력을 이렇게까지 높인 이유는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1970년대에는 구형 전술핵을 대체해 랜스 단거리 전술핵탄도탄과 같은 새로운 무기체계들이 속속 보강됐다. 1976년 주한미군의 핵탄두 보유량은 540여 발이었다. 특히 1976년 도끼만행 사건 이후에는 진해항으로 미 해군의 전략원잠(原潛)이 정기적 방문을 시작했다. 전략원잠과 여기에 장착되는 SLBM은 전술핵이 아니라 전략핵이었다. 미국은 이후 1981년까지 35차례나 전략원잠을 입항시켰고, 이는 해외에 전략원잠을 입항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벗어난 매우 예외적이고도 강경한 대응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전술핵무기들은 폐기돼 1985년에는 150여 발로 줄었다. 남은 것은 8인치와 155mm 핵포탄, 그리고 B61 핵폭탄의 3가지 종류로, 1991년 철수 전까지 약 100여 발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북한을 대상으로 개발한 B61-12 지하관통형 정밀핵폭탄 © 양욱 제공

오바마 정권 때도 전술핵 배치 논의

 

전술핵 재배치 논의는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북한발(發) 핵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그 대응책으로 검토됐던 것이 전술핵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거론되기도 했다. ‘핵 없는 세계’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던 오바마 정부가 이를 검토했다는 것 자체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근 워싱턴에서 흘러나오는 전술핵 논의도 결국은 대북 메시지인 동시에 대중(對中)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선 중국에 대해선 사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술핵까지도 배치할 수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그리고 만약 북한이 2017년 핵개발 완료를 선언하고 실질적인 핵무장이 시작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한반도 비핵화에 얽매일 이유가 없어지고 전술핵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이 된다. 바로 이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중국이 노력해야 한다는 경고가 전술핵 재배치 논의 속에 은근히 담겨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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