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씨家와 홍씨家의 밀월관계 정리 수순인가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7.03.14 14:18
  • 호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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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홍라희 여사 자매의 삼성미술관장·부관장 전격 사퇴에 충격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이 3월6일 일신상의 이유로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사퇴한 가운데, 사퇴 배경을 놓고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삼성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을 관리·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은 이날 홍 관장의 사퇴 배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후임도 미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홍 관장의 사퇴는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때문에 사퇴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난무한다. 처음 제기된 설은 남편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3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데다, 자신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수감되면서 ‘더 이상 대외활동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삼성문화재단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아들이 포승줄에 묶여 특검 수사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떻겠느냐”면서 “이 부회장이 구속된 뒤 홍 관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해석이다.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삼성미술관 라움·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 © 시사저널 포토·리움 제공

미전실 없앤 삼성, 문화예술계 지원 줄일 듯

 

경기여고와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홍 관장은 1995년 1월 시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경기 용인에 세운 호암미술관 관장직에 공식 취임했다. 2004년 10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삼성미술관 리움을 세웠다. 리움은 민간이 세운 국내 최대 미술관으로 소장품만 1만5000점이 넘는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이다. 이런 이유로 홍 관장은 수년째 국내 미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꼽혔으며, 세계적으로도 ‘큰손’으로 통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1964)은 국민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환율로 작품가가 87억원이었다.

 

홍 관장의 사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홍 관장은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폭로로 출범한 ‘삼성 특검’에 소환돼 비자금을 이용해 600억원대 고가 미술품을 구입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다. 추후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결과와 관계없이 홍 관장은 당시 삼성미술관 관장, 호암미술관 관장, 삼성문화재단 이사직을 내려놨다. 이후 2011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복귀하면서 다시 관장직을 맡았다. 이러다 보니 이번에도 향후 이 부회장이 출소할 경우, 다시 관장직을 맡을 것이란 시각이 있다. 그만큼 삼성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서 홍 관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고, 후계 경영이 본격화된 마당에 아예 미술계와 거리를 둘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최근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하는 등 후계구도와 관련한 변화를 시도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은 미전실을 해체하면서 수뇌부들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지성 부회장을 비롯해 미전실 수뇌부들이 고문 자리조차 받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홍라희 삼성미술관장(왼쪽 두번째)과 차녀인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오른쪽 두번째), 홍라영 총괄부관장(맨 오른쪽) © 시사저널 포토·리움 제공

홍라희-이재용 갈등설도 제기돼

 

홍 관장의 사퇴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곳은 문화·예술 사업이다. 총수 부인이라는 홍 관장의 그룹 내 위치를 감안해서인지 삼성은 그동안 다양한 문화 사업에 지원활동을 벌여왔다. 한 삼성 관계자는 “홍 관장 사퇴는 문화 사업 지원에 대한 삼성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당초 이 부회장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을 순수한 문화·체육에 대한 지원으로 여겼는데, 나중에 이 문제가 되레 자신의 구속으로 이어지자 사회공헌 사업 전반에 크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삼성이 최근 10억원 이상 지출하는 사회공헌 사업은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받도록 관련 규정을 바꾼 것도 이러한 이 부회장의 의중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표적인 문화예술 사업인 삼성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 대한 그룹 차원의 지원도 불투명해졌다는 게 그룹 내부의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삼성 관계자는 “벌지는 못하고 (돈을) 쓰기만 하는 곳인 삼성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은 미전실 해체로 예전처럼 계열사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졌으며, 홍 관장 사퇴도 이것과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홍라희 관장이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과 갈등이 불거졌고, 결국 관장직 사퇴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 및 삼성의 명마(名馬) 지원 소식을 JTBC가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외삼촌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 부회장 간 갈등이 깊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홍 관장이 대외활동을 접었다는 게 갈등설의 요지다. 홍 회장은 현재 JTBC의 최대주주다. 홍 관장의 막내동생인 홍라영 총괄부관장마저 언니가 사퇴한 지 이틀 만인 3월8일 연이어 퇴진한 것도 양가의 분위기가 예전처럼 우호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 총괄부관장은 그동안 언니인 홍 관장을 대신해 사실상 삼성미술관 운영 전반을 책임져왔다. 홍 총괄부관장이 삼성 문화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표면상으로 삼성가(家)와 사돈인 보광그룹(홍석현 회장 형제가 그룹 운영) 간 ‘밀월’은 막을 내렸다. 홍 총괄부관장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했다. 남편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남인 노철수 아미커스그룹 회장이다.

 

홍 관장 자매의 잇따른 사퇴에 대한 미술계의 충격은 상당하다. 삼성미술관은 국내외 유명 작가를 발굴하는 개인전과 유명 해외 미술가 초대전을 적극 열어왔다. 자연스럽게 삼성 계열사 차원의 예술 지원 사업도 당분간 냉각기로 돌입할 공산이 크다. 당장 4월로 예정된 김환기 전(展)도 취소됐다. 미술계에서는 홍 관장 자매의 사퇴로 삼성미술관이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은 “홍 관장 사퇴가 당장 미술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영향력이 큰 컬렉터의 퇴장은 대한민국 미술계 전체로 봤을 때 손해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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