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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北,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달콤했던 남북관계 기대할 듯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8(Sat) 11:00:00 | 14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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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괴뢰 통치배들 중 종말이 가장 비참한 집권자, 괴뢰 정치사에서 탄핵당한 첫 ‘대통령’으로 낙인찍히게 됐다.”

3월3일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이런 비난을 퍼부었다. “화근 덩어리를 빨리 덜어내자”는 주장에는 저주에 가까운 막말과 극렬한 비방이 가득했다. 지난 4년간 깐깐한 대북 정책으로 자신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데 대한 앙갚음 성격이 컸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북한이 탄핵 사태 초반부터 촉각을 곤두세우며 박근혜 정부의 몰락에 큰 기대를 걸어온 이유다.

 

대통령 파면으로 남북관계는 이전과 매우 다른 궤도에 접어들 공산이 커졌다. 북한의 핵 도발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개성공단 폐쇄와 대북 제재 강화 등으로 맞섰던 박근혜식 대응 국면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깐깐한 북한 다루기보다는 김정은 체제와의 대화와 화해·협력 쪽에 아무래도 무게가 실릴 것이란 전망 쪽에 힘이 실린다. 무엇보다 보수 정부의 불명예 퇴진으로 인해 차기 정부에서는 보다 전향적 대북 정책 노선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대북 정책과 코드를 같이하는 대북 접근의 부활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집권 9년간의 남북관계 경색과 대치 국면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고려될 수 있다.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우선 김정은 정권의 도발적 행태에 실망한 국민들의 대북 감정 악화는 큰 걸림돌로 꼽힌다. 잇단 핵실험이나 미사일 도발도 모자라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거나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는 폭언을 퍼부은 김정은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게 사실이다. 2월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은 결정타였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무참히 처형한 데 이어 이복형마저 권력 장악에 잠재적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살해했다는 점에서 충격은 컸다.

 

탄핵 선고를 나흘 앞둔 3월6일 북한이 4발의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하는 장면을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남한에 대북 유화적 정부 들어서길 희망”

 

둘째는 북한 내부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집권 6년 차를 맞은 김정은은 1월 중순 김원홍 국가보위상을 숙청·연금하고 보위성 부부장(차관)급 몇몇을 처형하는 공포정치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대북 유화적 입장을 보이는 대선 주자들이 새 대북 접근 청사진을 제시하고, 곧 선출될 대통령이 이 같은 기조 쪽으로 정책변화를 꾀한다 해도 북한이 당장 적극적 자세로 호응하기에는 평양 권력 내부 상황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김원홍이 권세를 떨치던 보위성을 쳐내는 등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징후도 포착되고 있다. 암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고 제3국으로의 탈북·망명을 통해 대북 비판 활동을 암시한 점도 북한으로선 껄끄러운 대목이다.

 

셋째로는 한반도를 휘감고 있는 메가톤급 난기류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한반도 전격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칠다. 중국이 왕이(王毅) 외교부장까지 내세워 “벼랑 끝에서 말(馬)을 돌리라”며 한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미·중 간에도 일촉즉발의 힘겨루기가 펼쳐진다. 3월6일 한반도에 사드를 전개한 미국은 하루 뒤 중국의 통신 대기업 ZTE(중싱통신)에 11억9200만 달러(1조364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대북 제재를 어기고 북한에 통신장비 등을 판매했다는 이유다. 대북 제재 위반 사상 최고액수의 벌금폭탄으로 중국 당국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만만치 않은 상황에 더해 한반도엔 한·미 연합으로 키리졸브(Key Resolve)연습과 독수리(Foal Eagle)훈련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Carl Vinson)함이 투입되고 F-35B 전투기 편대가 전개되는 등 정예전력이 총출동하고 있다. 해외 증원병력 3600여 명을 포함해 미군 1만여 명이 참가하고 우리 군은 29만여 명이 동원된다.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고 강도 높은 대북 제재 국면에다 한·미 합동군사연습까지 얽히면서 한반도 정세는 격랑으로 치달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런 정세에 눌린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北, 당분간 대남 선동·미국 비난 이어갈 듯

 

대통령선거를 비롯해 남한 내부 정세에 사사건건 개입하며 노골적 선전·선동을 펼쳐온 북한은 탄핵 사태를 대남 비방과 남남갈등 조장에 이용해 왔다.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때는 결과에 반색하며 “탄핵 저지투쟁에서 승리한 기세와 기백으로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 지배를 종식시키기 위한 반미·결사 항전에 떨쳐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번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한·미 동맹 균열과 반미 선동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국면으로 보수 기류가 주춤해진 상황을 활용해 남한에 대북 유화적 정부가 들어서는 걸 희망할 수도 있다. 안팎의 상황을 고려해 당장 남북관계 복원이나 북·미 대화 같은 변화를 추진하기보다는 대남 선동과 미국 비난으로 시간을 벌며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는 시점을 노릴 가능성도 크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이 대남 정세를 오판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촛불시위로 드러난 ‘민의’를 북한의 입맛에 맞는 쪽으로 해석해 생뚱맞은 반응을 보이거나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숙청 위기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복귀한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이 신임 회복을 노려 무리수를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김정은식 공포정치에 얼어붙은 당 고위간부와 군부 핵심세력이 제대로 된 조언이나 브레이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 동안의 달콤했던 남북관계 재연을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을 통해 엄청난 달러를 챙기거나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로 개발 기대에 부풀었던 시절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남북관계의 상황은 급변했고 한반도 정세도 달라졌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도출된 6·15 공동선언이나 10·4 선언의 부활이나 이행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김정은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후계자 시절인 2010년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도발을 벌이고, 집권 이후에는 핵·미사일 도발에 잔혹한 공포정치까지 더해지면서 주민들은 물론 엘리트층까지 등을 돌렸다. 남한 내 대북 여론도 꽁꽁 얼어붙었다.

 

북한이 입맛에 맞는 남한 정권 탄생을 기대하고 대통령 탄핵에 공을 들여왔다면 큰 오산일 수 있다. 대북 제재와 압박 국면에서 워싱턴에 다가가려고 남한을 징검다리 삼거나 빈사 상태인 북한 경제의 산소호흡기로 경협이나 대북 지원을 써먹던 호시절은 지났다는 말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진짜 봄이 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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