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도시 속 공공예술을 보여주다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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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⑧ 12년차 접어든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보여주는 공공예술의 가능성

경기도 안양시에서는 2005년부터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다. 정식명칭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nyang Public Art Project)이지만, 영어의 머리글자를 딴 APAP란 이름이 더 유명하다. 3년마다 개최되는 트리엔날레로 자리 잡으면서 작년으로 5회째의 APAP가 열렸다. 10여 년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안양시 곳곳이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로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작가들은 도시의 주변 환경들이나, 안양시만의 문화, 혹은 역사로부터 영감을 받아 예술작품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즐기도록 하겠다는 게 APAP의 목표다. 안양시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가 되는 셈이다.

 

APAP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안양예술공원이다. 안양예술공원은 90년대까지 안양유원지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관악산과 삼성산의 계곡물을 이용한 수영장, 숙박시설, 그리고 식당들이 밀집해 있었던 곳이었다. 주변에 사는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았던 안양유원지는 환경파괴와 시설낙후 문제에 시달리게 되면서, ‘예술공원’으로의 변신을 꾀하게 된 사연이 있다.

 

안양예술공원 숲 속에 위치한 이승택(한국)의 <용의 꼬리>. 산을 큰 용으로 해석하고, 용의 꼬리를 기와로 표현한 작품이다. ⓒ 김지나 제공

 

안양유원지의 탈바꿈 ‘안양예술공원’

 

 

5회 APAP가 한창이었던 작년 11월, 안양예술공원은 단풍과 낙엽이 만들어내는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곳에는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50여 개의 예술작품들이 이곳저곳에 숨어 있다. 필자의 일행들은 되도록 많은 작품을 보고 싶은 욕심에, 지도를 펼쳐 들고 공원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공원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오르기도 하고, 숲 속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는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누군가가 떨어진 단풍잎들을 하트모양으로 모아놓은 것을 보면서 ‘이런 게 진짜 작품’이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성큼 다가온 요즘, 이번에는 안양시 평촌동의 평촌중앙공원을 찾았다. 아직 바람이 다소 차가웠지만, 공원은 오랜만의 따뜻한 날씨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 평촌중앙공원과 주변 거리에서도 예술작품들을 문득문득 발견할 수 있다. 1회 APAP가 안양예술공원에서 펼쳐진 이후, 2회차는 좀 더 시민들의 일상으로 파고들고자 한 결과다. 작품들마다 작가이름과 내용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된 안내판이 있었고, 알록달록한 색감이 칙칙한 도심을 조금이나마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인상이었다.

 

다니엘 뷔렌(프랑스)의 <오색 찬란한 하늘 아래 산책길>. 샛별1로를 이용하는 보행자들을 위해 다이내믹한 색채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터널을 디자인했다. ⓒ 김지나 제공

 

APAP는 성공적인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꼽힌다. 문화예술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막연한 비전만을 주장하지 않고, 주거환경개선사업과 함께 도시의 질적 성장을 현실적으로 도모했다. 큰 예산을 들여 예술작품을 만들어도 유지관리를 현명하게 하지 못하면서 점차 흉물로 전락하고 마는 사례들이 많아서인지,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다는 점도 APAP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들을 섭외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은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유지관리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무조건 많은 작품을 유치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공공예술의 취지는 응원하고 싶지만, 미술관의 테두리를 벗어나면서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인걸까.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도 이미 이 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 된 듯, 무심하게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작년 APAP에서 새로운 작품을 설치하기보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더 심혈을 기울였던 것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공예술이란 무엇일까. 포르투갈 출신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안양 파빌리온’은 안양예술공원에 위치한, APAP의 대표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유명한 건축가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꾸준히 방문하고 즐기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벽화를 같이 그리거나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는 등, 예술작업을 하는 과정에 지역주민들이 함께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시민들이 ‘참여’함으로써 완성되는 공공예술이란, 작품의 결과가 얼마나 오랫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포르투갈)가 설계한 안양 파빌리온. 내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휴식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APAP)

 

시민 참여로 진정한 ‘공공예술’이 되다

 

 

APAP 덕분에 안양은 예술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됐다. 공공장소에서 예술과 시민이 만나는 경험은 분명 도시의 창의성을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의 APAP는 작품과 사람, 그리고 주변 환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좀 더 이상적인 비율을 찾아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한다. 어떤 장소에서 예술작품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작품과 주변 환경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장소와 시간에, 우연찮게 그것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이기 때문이다.

 

관악산에는 1967년부터 만들어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의 부설 수목원이 있다. ‘서울대 관악수목원’이라고도 불린다. 수목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수목원이다. 이 수목원의 정문이 바로 안양예술공원과 맞닿아 있다. 최근 안양시의회에서는 안양예술공원에서 서울대 수목원을 지나 서울대 캠퍼스에 이르는 길을 시민들을 위한 숲길로 만들 구상을 하는 중이다. 서울대 수목원은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곳인 만큼, 원래는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했었다. 그러던 것이 2005년부터 단체 관람이 허용되었고, 2014년부터는 안양시와 협의한 끝에 일반 등산객들도 지나다닐 수 있도록 후문을 개방하고 있다. 관악산을 오르기 위해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늘 우회등산로를 이용했어야 했기 때문에, 후문 개방 소식이 더욱 반가웠을테다. 

 

안양예술공원과 맞닿아 있는 서울대 관악수목원으로 가는 입구. 2014년부터 일반 등산객들의 통행이 허용되었다. ⓒ 김지나 제공

 

이 숲길이 단지 등산로로만 이용되는 것보다, 도시의 색다른 여가공간으로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하게 된 안양예술공원과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구상해보는 건 어떨까. 안양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힐링시켜주는 ‘시민참여’의 예술공간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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