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진 않겠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7 16:23
  • 호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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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韓流 업체들의 중국 사드 보복조치 대응전략

최근 중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한류 드라마는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도깨비》)였다. 그러나 《도깨비》는 중국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방영권 자체가 팔리지 않았다.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이른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 조치)이 그 이유였다. 그래도 이 드라마는 일종의 해적판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며, 지난해 중국 내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즉 공식적인 루트가 막혀 있었지만, 그 흐름이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쿠(優酷)·투더우(土豆)·아이치이(愛奇藝)·큐큐(QQ) 같은 중국의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도깨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화제작이 되었다. 《도깨비》뿐만이 아니다. 《런닝맨》 《무한도전》 《1박2일》 같은 인기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 운명이 되었다. 사드 때문이 아니라며 공식적인 보복조치임을 부정하던 중국이 이제는 내놓고 한류 제재에 나서고 있다는 징후다.

 

© 일러스트 정찬동

그래도 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제로만 인식되었다. 이미 중국에 직접 진출해 중국인들의 투자를 받아 회사를 설립하고, 그들의 콘텐츠를 외주 제작해 납품하는 형태로 하는 이른바 스타 PD들의 경우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 진출 스타 PD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김영희 PD가 만든 ‘미가미디어’는 최근 한국인 출신 PD들이 제작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막는 바람에 중국에서의 활동이 막혀버렸다. 심지어 다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조차 방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미가미디어에 합류했던 《놀러와》 《나는 가수다》의 연출자 신정수 PD가 중국 진출을 접고 국내로 돌아온 것 또한 한한령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김영희 PD가 이 정도라는 이야기는 중국에 진출해 메가폰을 잡은 국내 영화감독이나 예능 연출자들의 힘겨운 상황을 쉽게 예측하게 만든다.

 

물론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한류에만 집중된 건 아니지만, 특히 한류에 대한 보복이 두드러지는 건 사실이다. 이 항목 자체가 중국과의 WTO(세계무역기구) 및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에서 개방되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즉 중국의 입장에서는 국제사회 시선을 의식해야 할 부담이 없으면서도 한국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 콘텐츠 분야는 아예 개방 자체가 되지 않은 품목이기 때문에 중국의 문화 보복은 훨씬 더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한한령, 사드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

 

하지만 이 밖에도 한류가 사드 보복의 공공연한 타깃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건, 아무래도 문화적 상징성이 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중국 당국은 한류의 문화적 흐름이 자국 문화를 파고 들어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 참에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은 어떤 기회를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중국 관련 한류 콘텐츠 산업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한한령 조치가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벌어질 일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지금껏 한류가 중국 내에서 어떤 열풍을 일으킬 때마다 중국의 광전총국(廣電總局)이 나서서 규제를 강화해 온 일련의 흐름들이다.

 

그나마 일시적인 일일 것이라 믿어왔던 한류 관련 업체들도 이제는 낙관적인 시선을 접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즉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이 거대자본을 통해 한류를 중국 편향으로 만들었던 그 흐름을, 이제는 본래의 정상적인 흐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한류 업계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00% 사전제작 드라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들이다.

 

100% 사전제작 드라마는 사실상 중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되었던 제작방식이었다. 사실 드라마의 사전제작은 완성도는 물론이고, 제작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드라마 업계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중국에 동시방영하기 위해 사전검열을 통과해야 하는 외부적 요인으로 억지로 실행하게 된 사전제작은 오히려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 《함부로 애틋하게》 《화랑》에 이어 《사임당, 빛의 일기》가 모두 중국과의 동시방영을 위해 100% 사전제작되었지만,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게 된 건 그래서다. 일단 사전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그 기준에 맞춰 대본 등을 제작하게 되고, 그렇게 통과된 대본이 현장에서 수정할 수 없는 족쇄가 되면서 오히려 극적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아이러니가 생겼던 것이다.

 

이제 드라마 업계에서는 우리에게 적합한 방식의 사전제작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0% 정도만 미리 제작하는 ‘반(半) 사전제작 시스템’이나, 100% 사전제작을 하더라도 다양한 필터링 과정을 포함하는 검증 과정 강화 같은 제작 시스템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즉 이번 한한령 조치를 오히려 그동안 중국에 지나치게 편향되며 생겨난 한류의 왜곡을 바로잡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SBS 드라마 《화랑》 © SBS

중국 일변도서 벗어난 ‘월드와이드’ 전략

 

이번 중국의 한한령 조치로 인해 일본 시장으로 주목표를 바꾸는 대형 기획사들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오는 6월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 데뷔가 예정되어 있다. 멤버 중 3명이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본인들에게 호응을 얻을 만한 귀여운 이미지가 있어 일본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일본에서 확실한 팬덤을 갖고 있는 동방신기의 올 하반기 일본 활동이 예정되어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이제는 아시아와 유럽·남미·북미를 망라하는 ‘월드와이드’ 전략이 사드 보복으로 막힌 중국 시장에 대한 대응전략으로서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즉 YG엔터테인먼트의 빅뱅 같은 경우는 애초에 중국만이 아니라 아시아·북미·남미·유럽 등을 도는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치른 바 있다. 애초부터 월드와이드 전략을 구사해 온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방탄소년단은 올해도 칠레·브라질·미국·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홍콩·호주 등의 월드 투어를 예정하고 있다.

 

드라마·예능 같은 콘텐츠 한류들 역시 중국 시장이 변하기를 기대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월드와이드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즉 중국 시장이 어렵게 된 이상, 최근 들어 한류 콘텐츠에 대한 열광이 생겨나고 있는 남미·중동·동남아·홍콩 등으로 한류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 SBS

넷플릭스 등 인터넷 플랫폼 통한 콘텐츠 서비스 시장 주목해야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의 흐름에 한류도 자연스럽게 안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최근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 역시 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서비스 시장이 커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지상파·케이블·종편 같은 방송사 중심의 콘텐츠가 일차적으로 생산되고, 차후적으로 이 콘텐츠들이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콘텐츠가 가진 한계는 국적성이 강조된다는 점과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에 최적화되지 못한 콘텐츠라는 특성이 있다.

 

최근 국내 서비스를 본격화하겠다고 나선 넷플릭스의 경우, 현재 190여 개국에 93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으로서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아시아·중동권까지 거의 전 세계의 콘텐츠들이 탑재되어 있다. 국적 개념이라는 걸 발견하기 어렵고 어느 나라든 보편적으로 통하는 콘텐츠들이 애초부터 글로벌을 겨냥해 기획되고 만들어져 올라와 있는 셈이다. 최근 드라마 《시그널》을 쓴 김은희 작가의 차기작인 《킹덤》이 넷플릭스 서비스를 공식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래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한한령 조치의 대응 차원을 뛰어넘어 본질적으로 한류가 나아갈 새로운 길로 지목되고 있다. 국제적인 플랫폼을 우리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네 한류 콘텐츠를 디지털을 통한 월드와이드 시장에 내보내는 일이 콘텐츠 생산국으로서 미래 시장을 개척할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한류 보복은 정부가 얘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는가를 찾는 일만으로는 대처가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타국의 안보 이슈를 무역 보복으로 몰아가는 중국의 방식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여론을 만드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대처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한령이 꼭 사드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갖는다면, 오히려 근본적인 해법이 보인다. 편향된 시장을 다각화하고, 우리의 본래 체질을 강화하며, 나아가 미래에 걸맞은 새로운 플랫폼과 거기에 최적화된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는 일. 그것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들도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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