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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이기 전에 대통령이 맞다”

여성학자 정희진 인터뷰…신간 《낯선 시선》 통해 ‘여성 대통령’ 발언 비판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0(Mon)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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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해 11월 유영하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

“약한 사람은 누굽니까 여자 하나에요. 여자 하나.”

- 2월22일 김평우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인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며 한국의 대통령은 한 나라의 통수권을 쥔 지도자에서 ‘약한 여성’으로 변모한 듯하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하며 유독 ‘여성의 사생활’을 강조했다. 탄핵심판 대리인단이었던 김평우 변호사 역시 헌재에서 진행된 탄핵심판 변론에서 박 전 대통령을 ‘약한 여자’라고 어필했다. ‘여자’라는 지위는 국민 주권을 포함한 헌법적 가치를 뛰어넘어 보호해야 하는 ‘최약체’가 돼버린 것은 아닐까. 

 

ⓒ Pixabay


박 전 대통령은 ‘여성’이란 정체성을 일종의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국회의원으로, 대통령 후보로 뛸 땐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르는 여성 정체성을 최소화해 내세웠다. 그러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역풍을 맞게 되는 불리한 순간, 느닷없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그가 ‘여성’ 이라는 사실이 한국 사회를 혼돈으로 몰고 간 국정농단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대통령 변호인 측의 주장대로 그가 ‘여성’ 이기에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이 같은 문제인식을 품은 사람이라면 눈 여겨봐야할 책이 나왔다. 《낯선 시선》이라는 제목의 책은 여성학자 정희진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일어난, 우리 시대를 특정짓는 주된 사건들을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해 쓴 글들을 고르고 모아 엮은 책이다. 책의 저자 장희진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박 전 대통령은 여성이기 이전에 대통령으로 먼저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내용. 

 

 

최근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 변호인단과 친박집회측에서 유독 ‘여성’이란 점을 강조하는 모습이 보였다. 

 

박 대통령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유영하 변호사가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해달라”고 말했을 때 많은 국민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여성’의 의미는 다양하다. 개인으로서 여성, 성 역할 담당자로서 여성, 노동자로서 여성, 국민으로서 여성…. 때문에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노동이나 역할은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성별이, 또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역할이 강조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이기 이전에, 최고 통치자이자 국정의 책임자다. 남성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공직은 일단 성 중립적인 위치고, 성별은 이후 고려 사항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직무 수행 능력이지, 여성다움이 아니다. 

 

또한, 대통령의 사생활은 일반인의 사생활과 다를 수밖에 없다. 유영하 변호사의 말은, ‘대통령’과 ‘여성’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발상이다. 저는 그의 무지에 놀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해 11월15일 오후 서울 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국정농단 사태를 두고 ‘여자 대통령이어서 그렇다’는 식의 비난도 있다. 이번 사태는 박 전 대통령의 성(性)과는 사실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에 대한 잣대로 그를 비난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로 그를 옹호하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해보이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성별 논란은 성별 그 자체라기보다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 것이다. ‘박정희의 아들’이 아니라 ‘딸’이란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 혹은 여성의 인권을 옹호하는 정치인이어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유신의 잔재(향수)’였기 때문이다. 즉, 그녀의 성별 문제는 ‘박정희-박근혜’라는 부녀 세습 대통령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유산으로서,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편의적으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또 국정운영 차원에서 그런 차이가 과연 그가 ‘남성’이었다면 달라졌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합리적인 건가.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을 정치인이나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비판이나 요구가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는 철저히 분리돼있다. 

 

성차별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여성의 존재를 시민, 노동자, 지식인, 공무원 등 그들이 직접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성 역할’로만 제한하는 규범과 제도다.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미국의 힐러리 전 대통령 후보처럼 ‘개인’으로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 인물의 등장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성별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1970년대 최태민씨 문제서부터 설명돼야 독재 부패 정권의 유산이기 때문에 간단치가 않다고 본다.

 

물론, 남성이 대통령이었다면 ‘더러운 잠’ 같은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집필한 《낯선 시선》

 

 

《낯선 시선》이란 제목의 글 모음집을 최근 출판했다. 이 책엔 ‘여성학자’라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낯선, 그래서 그 개념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이의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여성이든, 여성학자든 사회의 구성원이고, 이러한 저의 인식은 우리 사회의 산물이다. 여성학자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다르게 생각하라’를 다르게 생각하기”. 이게 제 일이다. 

 

‘낯선 시선’은 새로운 인식을 말하는 것이지, 여자학자가 낯설다는 의미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낯설다는 것도 본질적인 사안은 아니다. 과거 ‘유비쿼터스’나 ‘하이브리드’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다 못해, 무슨 말인지 알 지도 못하는 말이었지 않냐. 

 

‘생각하지 않음이 폭력’이라는 말처럼, 한 사회의 발전과 성숙은 생각하는 사람들, 새롭게 생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달려있다고 본다. 촛불이 그것을 증명했다. ‘똑똑한’ 시민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을 말이다. 국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세상에 적응하고 싶지도 않지만, ‘지고’ 싶지도 않아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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