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비화 담은 《대통령》 출간하는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0 14:58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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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 다 만들었다고 우쭐대거나 교만해지면 안돼”

 

운명의 대선이 50일도 채 안 남았다. 시곗바늘이 5월9일을 향해 갈수록 대선 주자들의 혈투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솥밥 먹는 동지는 적(敵)으로 바뀌었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손잡고 웃는 후보들, 토론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날카롭게 상대를 쏘아붙인다. “동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서운한 감정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민감한 정치 시즌에 《대통령》이란 제목의 책이 나온다. 정치 실록이자 대통령론(論)이다. 저자는 6선인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 의원은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을, 참여정부에선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근(至近)거리에서 보좌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야당 의원과 대표로서 가까이서 접했다.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후 38년 동안 격랑의 정치 한복판에 섰던 그다. 현 정국과 저서 내용에 대한 얘길 듣기 위해 만났다. 3월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454호에서다. 그는 조만간 출간될 《대통령》에 대해 “내가 하는 대통령 이야기는 여느 평론가나 정치학자들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정치 관찰자가 아닌 경험자의 기록이란 얘기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

박근혜 대통령이 3월10일 탄핵당했다. 어떤 느낌이었나.

 

안도의 한숨이 나면서도 착잡했다.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고 해야 하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주민수(君舟民水·임금은 배, 백성은 물)라는 말이 있다. 물에 의해 배가 뜨지만 그 물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내 평생 그런 현장을 네 번 목격했다. 4·19 혁명 때 경복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하숙집에 같이 살던 1년 선배가 총에 맞아 죽는 걸 현장에서 봤다. 민중의 힘으로 역사가 쓰이는 현장을 처음 봤다. 그 후 인생과 세계관이 바뀌었다. 하지만 5·16 쿠데타로 4·19의 순수성이 훼손됐다. 1980년 5·18 민중항쟁 직전 ‘서울의 봄’ 때도 그런 경험을 했다. 신군부 출현을 예상치 못한 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두환이 정권을 탈취했다. 1987년 6·10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다. 번번이 역주행이 일어났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1500만 촛불민중 항쟁으로 대통령이 파면됐다. 그런데 ‘혹시 이번에도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나’하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역사가 바뀌는 혁명적 순간인데 우려가 앞선다. 역주행하는 일이 또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다.

 

 

“자꾸 잘난 척하다 역풍 맞을 수 있다”

 

‘역주행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할 만한 이유가 있나.

 

과거에 그랬기 때문이다. 민주화 과정에 돌발변수들이 나오지 않았나. 이번에도 그런 예감이 든다. 올해는 적폐 청산과 정권 교체의 해다.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우선 자중자애하면서 단합해야 한다. 흩어지면 좋은 기회를 놓친다. 또 겸손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 다 만들었다고 우쭐대거나 교만해지면 안 된다. 민주당 지도부나 대선후보들, SNS 스타들 모두 말조심해야 한다. 자꾸 잘난 척하고 다 된 척하다가 역풍 맞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저 정치’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은 3월10일 파면됐다. 파면된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나. 할 말이 있다면, 국민한테 ‘죄송하다’고 사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유지되는 체제다. 그 누구도 법 위에 없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전직 대통령은 더욱더 아니다. 그런데 무슨 사저 정치를 하느냔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이 왜 ‘사저 정치’를 한다고 보나.

 

그 사람(박 전 대통령)은 자기가 왕이라고 생각한다. 왕가에서 태어났는데 공주에서 축출됐다가 반정(反正)을 통해 다시 왕이 됐다고 생각하는 거다. 짐(朕)이 왕이다, 짐이 곧 국가라는 사고를 갖고 있다. 모든 법치주의 맨 꼭대기에 자기가 있다고 착각하는 거다. 그런 사고 때문에 그런 일(국정 농단)을 저질렀다. 자기는 위해(危害) 세력 내지 반정 세력에 의해 왕에서 쫓겨났고, 다시 자기 신하들이 자기를 따라서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민주적 의식구조가 아주 오래전부터 몸에 뱄다. 

 

 

《대통령》이란 책을 출간할 예정인데,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내 나이 일흔둘이다. 이제 정치를 마무리해야 할 때다. 그동안 국민의 힘으로 세상이 뒤집히는 현장을 네 번이나 봤다. 그런데 아까도 얘기했듯이 지금도 이게 다시 뒤집힐까봐 걱정이다. 이 시점에 내가 겪었던 대통령들의 애환과 정치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대통령(김대중)이 있었고 내가 모셨던 대통령(노무현)이 있었다. 야당 대표로서 경험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있었다. 내가 겪었던 일화나 에피소드가 많다. 그래서 그것을 정리했다. 대통령 책임제, 제왕적 대통령제를 겪었고 그것을 마무리 지어야 할 시점이 됐다. 대통령제에 큰 변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모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떤 분인가.

 

대통령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모범, 전범 같은 분이셨다. 세종대왕은 정치, 경제, 문화, 안보 등 여러 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한글 창제도 백성에 대한 애정이 밑받침됐다. 제왕이었음에도 민주주의 근본을 보여준 것이다. 김 전 대통령도 그런 분이셨다. 영화감독 신상옥이 과거 대종상 공로상을 받으면서 “내가 받을 상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이 받을 상”이라고 말했다. 영화에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한다는 원칙에 따라 영화 소재를 무한정 열어놨었기 때문이다. 4대 보험 등 국민기초생활보호를 확립했고 평화통일 이정표를 제시했다.

 

 

국민의 정부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개혁 과제를 선정해 실행하기도 전에 코앞에 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금 모으기부터 시작해 외환위기 극복에 온 정신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부익부빈익빈 구조를 키우게 됐다. 당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제 자체가 죽어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과정이 생략되고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다.

 

권위주의도 청산되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의 권위로 유지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권위주의 청산 자체가 힘들었다. 그것이 과제로 남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 3김(金)식 정치를 청산한 것이다.

 

 

참여정부 때는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노 대통령을 모시기도 했는데.

 

돈으로 정치하고 선거 치르는 금권(金權)정치를 양김(김영삼·김대중)은 해결하지 못했다. 이를 일거에 해결한 것은 노 전 대통령 공(功)이다. 그는 권위주의 체제와 제왕적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던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 등을 국민의 편으로 돌려보냈다. 당정 분리도 평가받을 만하다. 이전까진 공천은 물론 당(黨)의 작은 사무직까지 청와대에서 임명했다. 그 관행을 깼다. 권위주의와 금권정치 청산은 큰 업적이다.

 

2003년 4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문희상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받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노무현, 마지막까지 지역주의 청산 노력”

 

참여정부에서 실행하지 못한 것도 있을 텐데.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하려고 했지만 못했던 게 지역주의 청산이다. 평생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바보’ 소리까지 들어가며 노력했으나 극복하지 못했다. 맨 마지막엔 선거구제를 매개로 한 대연정을 당시 야당 대표인 박근혜에게 제안했으나 실패했다. 노 전 대통령은 소선거구제가 아닌 선거구제로 바꾸고 싶어 했다. 그것을 조건으로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던 것이다. 당의장이던 나도 반대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자기 뜻을 한 번만 받아달라고 했다. 지역주의 철폐를 위한 선거구제 개혁이라면서….

 

 

노 전 대통령과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연정 제안에 차이가 있나.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청산하려는 과정에서 대연정을 제안했다. 안 지사는 자유한국당과도 대연정하자는 논리인데 그건 너무 무리한 것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 (대통령이 파면된) 3월10일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이전까진 정권 교체와 적폐 청산이다. 한국당은 적폐 청산 대상이다. 그런 그들과 연정을 꿈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한국당에서 친박 세력이 정리된다면 문제가 달라질 순 있다. 3월10일 이후엔 새로운 것이 하나 더 붙었다. 바로 통합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지금 (대선후보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여권이었던 바른정당을 포함하는 연정엔 동의하나.

 

그들과 연정하자는 게 아니라 협치(協治)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된다. 적폐 청산은 개혁입법으로 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협치하지 않으면 개혁입법 자체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대통령 비서실장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도 고생하는 두드러기가 비서실장 할 때 생겼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이빨이 여러 개 빠지기도 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귀신같이 꿰고 있어야 한다. 마음이 불안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국정 전반을 꿰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언제 무엇을 물어볼지 모르니 항상 불안했다. 대통령이 물어보면 바로 쫙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박근혜, 세월호 당일 공무원 규정 어겼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동선에 대해 잘 몰랐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지금 이 시각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알아야 한다. 김기춘 전 실장은 그 부분에 대해 ‘내가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했는데 말이 안 된다. 비서실장뿐 아니라 모든 비서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날 대통령은 최소 9시에는 출근했어야 한다. 그날 관저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왜 쉬는가. 공무원 근무규정에도 어긋난 것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그 사고가 났는데 ‘대통령이 어디 계신지 몰랐다’고 한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날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컨트롤타워에 가는 것이었다. 지하벙커에 가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집약된 자료가 다 나온다. 그러면 금방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은 어떤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보나.

 

국민 통합과 국가 경영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전 국민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으면 안 된다. 돈 문제, 스캔들, 거짓말이 없어야 한다. 또 소통해야 한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걸 안 한다는 것은 통합 능력과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얘기한 것처럼, 국가 경영 능력에는 머리, 가슴, 배 이렇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통찰력과 판단력, 정보력, 균형감각 등이 ‘머리’다. 끊임없는 열정과 포용력, 이것이 ‘가슴’이다. 그다음에 배짱, 용기, 결단력이 ‘배’, 한마디로 ‘뱃심’이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다 갖췄다고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이 시대정신이다. 모든 능력을 갖췄어도 시대정신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적폐 청산이다. 또 필요한 것은 권력의지다. 문재인 전 대표는 정치 초창기에 권력의지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겼다. 권력의지는 소위 ‘선빵’을 날릴 수 있느냐, 상대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권력의지는 사냥하거나 싸워야 할 때 나오는 고양이 발톱과 같다. 문희상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대통령이 못 된다. 발톱을 쓸 생각이 없어서(웃음).

 

 

문재인 전 대표와 청와대에 함께 근무하기도 했는데.

 

그때(2003년) 처음 봤다. 내가 당시 대통령에게 ‘백면서생(문재인)을 민정수석으로 앉혀도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하셨고 ‘통찰력과 균형감각이 있다’고 하셨다. 대통령이 다른 수석비서관들한텐 웬만하면 다 반말로 얘기했는데 문 수석에겐 꼬박꼬박 경어를 썼다. 안희정 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었다면, 문 전 대표는 동지였다.

 

 

5월9일 선출될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개혁의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정권 출범하는 날부터 100일 안에 큰 개혁 작업과 인적 시스템을 완료해야 한다. 그리고 1년 안에 모든 개혁 작업을 마쳐야 한다. 굉장히 숨 가쁠 것이다. 집권 2년 차부터는 동력이 떨어져서 어렵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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