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
  • 조해수·김회권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7 10:08
  • 호수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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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인양을 원하지 않았다”

 

“이렇게 금방 끌어올릴 걸 왜 여태껏 하지 못했나.”

3월23일, 세월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에서 침몰한 후 거의 3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러나 환호(歡呼)보다는 탄식(歎息)의 목소리가 더 컸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박근혜 정부는 왜 세월호를 끌어올리지 못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검찰수사를 받는 이 시점에 인양이 성공한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해양수산부는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 6일 후 세월호 인양 시점을 4월5일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일정은 더 당겨졌다. 3월20일 시험인양을 시도한 후 22일부터 본(本)인양에 들어갔다. 3년 동안이나 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는 단 하루 만에 떠올랐다. 세월호 인양을 지연해 오던 박근혜 정부가 사라지자 인양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차기 정권에서 제기될 ‘인양 책임론’을 피하려는 해수부의 꼼수도 작용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서 인양작업을 살펴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금의 상황을 단 한마디로 표현했다.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

 

세월호 인양에 3년여의 시간이 걸린 것에 대해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유가족이 강짜를 부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선(先)실종자 수색, 후(後)인양’과 ‘선체 절단 반대’를 주장하며 인양을 미룬 것은 유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가족의 주장대로 실종자 수색을 우선시한 기간은 7개월여에 불과하다. 반면 정부는 무능력과 무계획에 따른 기술적 실패 등으로 2년6개월을 허송세월했다. 심지어 청와대가 보수단체를 동원해 선체 인양 등 세월호 진상 규명에 부정적인 여론을 선동한 사실도 밝혀졌다.

 

 

3월23일 전남 진도군 사고 해역 공중에서 촬영한 세월호 인양 장면 © 연합뉴스


정부, 참사 직후 유가족 몰래 인양 계획 세워

 

침몰 직후 세월호 유가족은 인양을 서두르기보다 실종자 수색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정부도 이를 받아들인 듯 세월호 침몰 하루 뒤인 4월17일 김수현 서해해경청장(직함은 당시 기준, 이하 동일)을 내세워 “승객 전원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인양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해수부 역시 인양업체 선정 입찰을 공고할 때 미수습자 시신 유실 등을 우려해 선체를 절단하지 않고 완전체로 인양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뒤에서는 다른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2014년 6월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해수부 자료에 따르면, 해수부는 4월30일부터 인양 준비에 들어갔다. ‘언딘(마린 인더스트리·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과 실종자 수색 및 인양 계약을 체결한 업체)’ 특혜 의혹을 수사했던 검찰의 수사기록에는 해경이 4월17일 ‘진도 전복 여객선 세월호 인양작업 계획’이라는 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적시돼 있다. 4월18일에는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세월호 인양에 필요한 장비, 인양 방식 등 구체적인 계획이 논의됐다.

 

정부가 유가족 몰래 세월호 인양을 계획한 의도는 명확했다. 4월25일자 ‘선체인양 추진단 운영방안 검토’란 문서에는 “인양계획·일정계획 수립 등 선제 대응을 통해 수색·구조에서 인양 국면 전환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비난 여론 사전 차단”이라고 적혀 있다. 세월호 인양에 관한 논의가 실종자 수색이나 침몰 원인 규명보다 오로지 ‘정권 보위’ 차원에서 진행돼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4년 11월11일 정부는 “오늘부로 수색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 후 7개월여가 흐른 시점이었다. 유가족 측도 인양에 찬성하며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세월호 인양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명확한 방향을 내놓지 않았고, 세월호 인양작업은 끝없이 표류했다.

 

‘세월호 선체처리 관련 기술검토 TF’가 2014년 12월에 실시하려고 했던 현장조사는 결국 해를 넘겨 2015년 1월에 실시됐다. 수중수색을 중단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이때도 정부는 조사만 할 뿐 세월호를 인양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세월호를 절단 없이 통째로 인양 가능하다”는 언론 보도에는 2015년 2월7일 반박 자료를 내며 “세월호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주영 장관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지명된 유기준 해수부 장관 후보자는 “4월쯤에 기술적 검토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참사 1주기가 다 돼 가는데도 선체 인양에 관한 명확한 계획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월22일 세월호 시험인양 결정을 앞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미수습자 유가족들이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과 함께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능력·무계획으로 점철된 인양 계획

 

1주기가 지난 2015년 4월22일, 해수부는 장관이 직접 나서서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인양 시기에 대해서는 인양업체를 선정하고 설계에 들어가면, 대략 9월말에서 10월 정도가 돼야 실제 수중작업에 착수할 수 있고, 1년~1년6개월이 걸린다는 게 해수부의 공식 설명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1년 만에, 실종자 수색 중단을 선언한 지 5개월 만에 세월호 인양이 결정된 것이다.

 

중국 업체인 상하이샐비지가 세월호 선체 인양작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건 2015년 7월이었다. 정부는 인양을 위한 주변 작업과 장비 등에 있어 국내 업체들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다수의 해외 업체에 비공식적으로 세월호 인양을 위한 제안서를 제출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4·16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인 ‘동수 아빠’ 정성욱씨는 “기술력으로만 봐서도 상하이샐비지는 입찰에 참가할 수 있는 업체가 아니다. 상하이샐비지는 인양 경험도 미천할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는 인양을 해 본 적이 없던 회사다”라며 “정부는 처음부터 세월호를 인양할 의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증명하듯 인양의 첫 과정인 선수(船首) 들기 작업부터 미뤄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선체 두 곳에 손상까지 생겼다. 2016년 7월은 곧 8월로 미뤄졌고 9월로 또 연기됐다. 약속했던 9월이 왔지만, 선미(船尾) 리프팅 빔 설치 공정이 당초 완료 목표일이던 8월말을 넘겨 한 달 넘게 지연되고 있다고 해수부는 밝혔다. 이런 와중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10월말 해수부는 세월호 인양 방식을 선미에 리프팅 빔을 넣어 들어올리는 방식 대신 선미에 와이어를 걸고 들어올려 리프팅 빔을 넣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해수부가 발족시킨 기술 TF의 보고서가 예측한 위험요인들이 현실로 나타났고 결국 상하이샐비지를 선택한 해수부의 판단이 잘못된 걸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이 됐다. 인양 계획은 하염없이 연기됐다. “연내(2016년)에는 사전 작업만 하고, 선미 들기는 내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 ‘양치기 소년’ 해수부의 공식 발표였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2015년 12월15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가 열린 서울 중구 YWCA 건물 앞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최우선 사항은 ‘돈’

 

와이어를 통해 인양하는 방식은 입찰 과정에서 떨어진 기술평가 1위 업체의 인양 방법이었다.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선체에 직접 가하지 않고 빔을 활용해 인양하는 것은 상하이샐비지의 창의적인 생각이다”며 “기존 크레인 인양 방식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바꾼 것이라 의미가 없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유가족 측은 “선박 통째 인양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어려운 작업이라는 해수부의 주장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업체를 골랐어야 했다. 그러나 해수부는 기술점수가 2등이었던 상하이샐비지를 비용 측면에서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선정했다”면서 “세월호 인양작업이 상하이샐비지의 기술 연마의 장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인양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해수부에서는 1000억원 정도 든다고 하는데, 3000억원 이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예상된다. 세월호 선체는 인양하지 말자.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말처럼 비용 문제는 세월호 인양을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했다. 해수부는 2015년 4월8일 세월호 참사 수습 및 피해지원 비용 내역을 공개했다. 인양 비용으로는 1205억원을 예상했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2015년 정부는 상하이샐비지와 인양 계약을 맺으면서 2016년 12월까지 인양을 완료하고 851억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정이 지연되면서 2017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계약금액 역시 916억원으로 상향조정됐다. 상하이샐비지에 지불할 금액을 포함해 해수부가 예상하고 있는 인양 비용은 현재 1020억원 규모다.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었다. 보수진영 측에서 호들갑을 떨었던 3000억원의 비용은 결국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해수부의 발표를 전후로 해서 김 의원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과 보수단체들의 세월호 인양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됐다는 점이다. 보수단체의 집회에서는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세월호 인양 반대한다”는 김 의원의 주장과 똑같은 구호가 터져 나왔다. 

 

10/27일(월)

○세월호 인양 - 시신인양 X, 정부책임, 부담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을 보면 그 배경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2014년 10월27일자로 기록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메모에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지칭하는 ‘長(장)’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즉, 김 실장이 정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세월호 인양을 반대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검에서도 청와대가 세월호 인양 반대 여론을 선동하기 위해 직접 개입했음이 드러났다. 박영수 특검팀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이었을 당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반대 집회를 열도록 지시한 정황을 포착했다.

 

한 예로 조 전 장관은 어버이연합을 움직여 2014년 10월24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앞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반대하는 시위를 개최하도록 했다. 조 전 장관은 보수단체의 관제(官製))데모에 사용된 구호까지 직접 챙겼다.

 

3월24일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수단체 선동해 세월호 반대 집회 개최

 

시사저널은 지난해 4월 ‘어버이연합 집회 회계장부(2014년 4~11월)’를 단독 입수해 세월호 반대 집회에 일당 2만원을 받는 탈북자 알바가 1200명 이상 동원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2016년 4월11일 “[단독] 어버이연합, 세월호 반대 집회에 알바 1200명 동원 확인”). 이들에게 지급된 돈은 2500만원 이상이었고, 한 집회에 최대 200여 명을 고용하기도 했다. 특검이 파악한 《다이빙벨》 반대 시위에는 11명의 탈북자 알바가 동원됐다.

 

세월호 인양이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4월초에는 목포신항으로 이송해 본격적인 선체 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우선시되는 사항은 미수습자 수습 문제다. 정부는 신속한 미수습자 수습을 위해 객실 등을 절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가족의 입장은 다르다. 신속한 미수습자 수습만큼 정확한 진상 규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4월16일 세월호 3주기가 다가온다. 유가족들은 1000일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왔다. 선체 인양은 ‘세월호 진상 규명’이라는 유가족들의 한(恨)을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다시 한번 진도 앞바다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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