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질만 잘하면 치약 없어도 된다
  • 노진섭 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9 10:53
  • 호수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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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성분의 안전성 논란 여전…기능성 치약은 치과의사와 상의 후 결정

 

예전엔 사기그릇을 지푸라기에 흙을 묻혀 닦았다. 흙은 그릇에 묻은 이물질을 잘 긁어낸다. 치약도 같은 원리다. 치아 표면에 붙은 이물질과 기름기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도록 각종 화학성분을 섞은 제품이 치약이다. 치약은 하루에 한번 이상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시중에 기능성 치약이 넘쳐나고, 국산품 대신 외국산 치약만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치과 전문의들은 치약이 없어도 칫솔질만 제대로 하면 치아 건강 유지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특정 치약을 맹신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칫솔질을 소홀히 하는 생활습관을 지적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면 치아에 붙은 이물질은 어느 정도 제거된다. 그러나 치아 틈새에 낀 음식물 찌꺼기는 잘 빠지지 않고 남아서 충치와 치석을 유발한다. 음식 찌꺼기에 세균이 번식하면서 산(酸)이 생기고, 이 때문에 치아가 상하는 것이 충치다. 또 음식 찌꺼기에 죽은 세균과 침이 단단하게 뭉친 것이 치석이다. 치석은 잇몸을 자극하고 염증을 일으킨다.

 

충치와 치석을 예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칫솔질이다. 아무리 비싼 치약도 꼼꼼한 칫솔질을 대신할 수 없다고 모든 치과의사는 강조한다. 최종훈 연세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는 “치약의 세정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치약에 의존한 나머지 칫솔질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다”며 “치약을 사용한 사람군과 치약 없이 칫솔질만 한 사람군의 치아 상태를 살펴본 실험이 있다. 치약을 사용하지 않고 칫솔질만 한 사람들은 치아가 잘 닦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구석구석 잘 닦았다. 그러나 치약을 쓴 사람들은 치아를 잘 닦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충 닦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에게 치약 없이 칫솔질만 하라면 손사래를 친다. 치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칫솔질 후 개운한 맛이 없다는 이유다. 이정원 서울대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일반인은 뽀드득거리는 느낌과 상쾌함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치약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치약이 없더라도 칫솔질만 잘해도 웬만한 구강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치약으로 칫솔질 세게 하면 치아만 손상

 

우리가 치약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서민 대부분이 주로 소금으로 양치하던 1900년대 초, 일부 부유층이 일본에서 분말 치약을 들여와 사용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치약이 대중에 보급된 것은 1954년 락희화학공업이 럭키치약을 개발한 이후다. 치약이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현재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제품이 쏟아졌다. 최근에는 충치 예방, 잇몸 질환 예방 등을 강조한 기능성 치약이 유행하고, 대만산과 독일산 등 외국산 치약도 입소문을 타고 인기다. 그러나 정작 어떤 치약이 자신에게 필요하고, 치약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특정 치약을 써보니 좋다는 주변의 말을 믿고 그 치약을 구매해 사용한다.

 

시중에 몇 천원짜리부터 수만원에 이르는 제품이 있지만 치약 성분은 대동소이하다. 치약은 연마제, 불소, 보존제, 계면활성제 등의 성분으로 구성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연마제는 고운 모래 성분으로 치아에 붙은 이물질을 갉아내고, 불소는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는 성분이고, 보존제는 치약이 썩지 않도록 하는 물질이고, 계면활성제는 기름때를 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치약의 연마제 입자가 굵거나 계면활성제가 많을수록 뽀드득거리는 느낌이 강하다. 치아 표면을 더 많이 긁어내고 기름기를 빼내기 때문이다. 치아를 칫솔로 세게 문질러야 잘 닦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흙으로 사기그릇을 닦을수록 작은 흠집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치약을 묻힌 칫솔로 강하게 문지르면 치아가 상해 시린 이가 된다. 소금으로 치아를 문지르는 행동을 치과의사들이 말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정원 교수는 “치약 속 연마제가 치아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지만, 너무 세게 문지르면 치아 표면을 감싸는 코팅 역할을 하는 법랑질(치아 표면을 보호하는 유백색의 반투명하고 단단한 물질)을 벗겨내는 역효과를 볼 수 있다”며 “치아가 덜 닦이는 느낌이 있더라도 연마제 입자가 고운 치약이나 아예 연마제가 없는 치약을 사용하는 게 좋다. 연마제가 적은 어린이용 치약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과거 미국 콜로라도 온천지대에 사는 주민들은 독특한 치아 상태를 보였다. 치아 색이 갈색이고 충치가 거의 없었다. 치과의사 매케이는 1908년 주민이 마시는 그 지역 지하수의 특정 성분 때문으로 추측했다. 당시엔 그 성분이 무엇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미국 화학자 페트레이는 1931년 그 성분이 플루오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은 이 물질을 불소라고 불렀고, 우리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극소량의 플루오르가 있는 물을 마시면 인체에 무해하면서 충치를 약 60% 줄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1964년 미국 생활용품업체 P&G가 치약에 불소를 넣었다. 이후 각국은 앞다퉈 불소치약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나 불소는 논란의 중심이 됐다. 충치 예방 효과는 있지만, 장기간 사용하면 건강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어 이어졌다. 미국치과의사협회는 3세 이전 아이에게는 저(低)불소치약을 쌀알만큼만 사용하라고 권고했고, 시중에는 아예 불소를 뺀 치약도 등장했다.

 

각종 기능성을 강조한 치약들이 할인점 매대에 가득하다. © 시사저널 이종현

“치약 성분 남지 않게 7~8회 헹궈야”

 

최근에 문제가 됐던 치약 성분은 파라벤과 같은 보존제다. 이 성분은 치약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 유통기간을 늘려준다. 2004년 영국 리딩대학 연구팀은 유방암 환자 20명에게서 떼어낸 세포조직을 살펴봤더니 파라벤 성분이 검출됐고, 화장품·음식·의약품에 들어 있는 이 성분이 몸속에 흡수돼 잔류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물질은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정한 발암물질 목록에는 없다. 결국, 암과의 관련성 논란이 있지만, 국제사회는 파라벤의 안전성을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상태다. 그렇지만 일부 국가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유해성 논란이 있는 성분의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4월 화장품 제조에 파라벤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성분이 체내로 흡수돼도 빨리 배출되므로 유해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상당수 치약에 이 성분이 여전히 존재한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 입안이 텁텁할 때 치약을 묻힌 칫솔질이 간절하다. 기름기를 빼주는 역할은 치약 속 계면활성제의 몫이다. 비누나 주방세제에 사용하는 성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계면활성제가 입안에 남으면 수분을 증발시키고 세균 번식을 도와 입냄새의 원인이 된다. 입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용한 치약 때문에 오히려 구취가 생기는 셈이다. 최종훈 교수는 “합성 계면활성제는 입안에 아토피를 일으킬 정도로 독해서 샴푸나 주방세제에서 빠졌지만 치약에는 여전히 사용 중”이라며 “식물성 계면활성제가 있는 치약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약을 사용한 후에는 여러 번 입안을 헹궈서 파라벤과 같은 유해물질 농도를 떨어뜨릴 필요도 있다. 이종원 교수는 “치약으로 칫솔질한 후에는 7~8차례 이상 입안에 화한 느낌이 사라질 정도로 헹궈야 입안에 남은 치약 잔류물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런저런 화학물질을 우려하는 소비자 중 일부는 직접 치약을 만들어서 사용한다. 이런 경우 어떤 재료를 어떻게 배합할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연마제를 과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시중 치약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치약 찾기보다 나쁜 성분 없는 것 골라야

 

연마제, 불소, 파라벤 등 성분에 대한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음에 따라 치약 제조업체들은 치아 건강에 좋다며 특정 성분을 넣은 치약을 개발했다. 이른바 기능성 치약이 요즘 대세다. 균을 제거하는 항균제를 첨가했다거나 멘톨 성분으로 상쾌한 느낌이 좋다거나 치아를 하얗게 만들어준다는 식이다. 프로폴리스(나무, 풀, 꽃에서 나오는 수지에 꿀벌의 침과 분비물 등을 섞어 만든 것으로 항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까지 넣은 치약도 소비자의 구미를 당긴다. 이정원 교수는 “프로폴리스 치약을 사용하는 환자가 많아서 그 치약에 대한 국내외 연구논문을 찾아봤더니 몇 편 되지 않았다. 즉, 일부 항균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며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비싼 기능성 치약을 무조건 사용하기 전에 자신의 치아 상태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치약에 ‘약’이라는 말이 붙지만, 치약은 의약품이 아니라 의약외품이다. 치과 질환 치료에는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굳이 기능성 치약을 쓰고 싶다면 치과의사와 상의한 후 사용해도 늦지 않다. 자신에게 맞는 치약을 사용하면 치과 질환 예방에 약간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염증이 있는지, 충치가 있는지, 잇몸이 부실한지를 알아야 자신에게 맞는 기능성 치약을 고를 수 있다. 예컨대 충치가 잘 생기는 사람은 불소 성분이 함유된 치약을, 잇몸질환이 있는 사람은 항염 또는 항균 치약을, 시린 이로 고생한다면 연마제가 적은 치약을, 미백 효과를 기대하려면 연마제와 과산화물이 함유된 치약을 선택할 수 있다. 최종훈 교수는 “맛, 향, 기능, 천연성분을 강조한 치약도 있다. 문제는 좋은 물질을 넣은 것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나쁜 성분들을 그대로 포함한 치약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는 치약을 찾기보다는 나쁜 성분이 없는 치약을 고르는 소비 태도가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치약을 사용할 때 그 양을 줄이라고 치과의사들은 권고한다. 광고처럼 치약을 칫솔모 위에 길게 짜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치약을 많이 써야 거품이 풍부해서 치아가 잘 닦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광고는 치약 제조사가 치약 사용을 부추기기 위해 고안한 마케팅이다. 치약을 많이 사용한다고 그 효과가 배가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치아가 빨리 마모될 뿐만 아니라 부작용까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치약이 굳는 것을 방지하는 특정 성분 때문에 장이 예민한 사람은 설사 증세로 고생한다. 전문의들은 치약을 칫솔모 길이의 4분의 1(콩알 크기)만큼 사용해도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또 치약이 칫솔모 위에 놓이는 게 아니라 칫솔모 사이에 들어가도록 약간 눌러서 짜는 게 좋다. 치약이 치아 한 부위에 몰리지 않고 입안에 골고루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보건소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위생 교육에서 어린이들이 올바른 칫솔법을 배우고 있다. © 연합뉴스

칫솔질은 10분 이상 꼼꼼히

 

지푸라기에 흙을 묻혀 사기그릇을 닦더라도 대충 닦으면 그릇에 흠집만 나고, 닦이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남는다. 치약도 마찬가지다. 치약을 사용하더라도 치아를 구석구석 닦지 않으면 충치와 치석을 예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치아만 마모될 수 있다. 치과의사들이 충치와 치석 예방에 꼼꼼한 칫솔질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치약은 칫솔질의 효과를 도와주는 용도로 삼으라는 얘기다. 특정 치약에 너무 의존하면 치과 치료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심지어 가그린과 같은 구강청결제를 사용하면서 칫솔질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구강청결제는 구강 내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용도일 뿐이지 칫솔질을 대신할 수 없다. 이정원 교수는 “치약의 효과를 과대평가하고 사용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치는 일도 있다”며 “어떤 치약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칫솔질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자신의 치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어 “윗니에는 어금니, 송곳니, 앞니, 송곳니, 어금니 순으로 크게 5군데 부위가 있다. 위와 아래가 있으므로 모두 10군데다. 또 치아 바깥뿐만 아니라 안쪽도 닦아야 하므로 칫솔질할 부분은 모두 20군데다. 한 군데에 적어도 5회씩 칫솔질을 해도 모두 100회의 칫솔질이 필요하다. 칫솔질 후 입안을 헹구고 치실을 사용하면 총 칫솔질 시간은 10분 이상 걸린다. 그만큼 정성스럽게 치아 구석구석을 닦는 습관을 들이면 치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건강한 치아를 유지할 수 있다”며 바른 칫솔질 방법을 설명했다. 

 

 

치약을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 시사저널 이종현

기원전 5000년 고대 이집트에서 황소 발굽, 수액, 달걀 껍데기, 화산재 등을 꿀과 반죽해 사용한 것을 치약의 원조로 여긴다. 암모니아가 치아를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로마인들은 소변으로 이를 닦았다. 부자들은 소변 농도가 짙다고 소문난 포르투갈인의 소변을 수입해 사용했다.

 

실제로 암모니아에 그런 효과가 있어서 1860년대에는 암모니아에 글리세린 등을 혼합한 가루 형태의 치약이 등장했다. 1892년 미국이 튜브에 넣은 젤 형태를 개발한 후 치약이 대중화됐다. 국내에 치약이 들어온 때는 1900년대, 일본 라이온사가 개발한 가루 치약을 일부 부유층이 사용하면서부터다. 락희화학공업은 1930년 No. 1이라는 가루 치약을 생산했다. 치약이 대중적인 소비재가 된 것은 1954년 튜브형 럭키치약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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