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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조실에 배달되는 알루미늄 쟁반 위의 설렁탕

[김유진의 시사미식] 경찰·검찰에서 조서 꾸밀 때 가장 어울리는 식사 메뉴로 설렁탕이 꼽히는 이유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01(Sat) 10:00:00 | 14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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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를 꾸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죄를 지었으니 묻고 따지는 게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서 작성에 참여한 적이 있었던가? 부러 작성이라는 단어를 골라서 써보지만, 뭔가 이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꾸민다는 말이 더 익숙해서일 게다. 그렇다면 조서는 왜 ‘꾸민다’고 할까? 아름다운 곳에 쓰여야 할 단어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심히 불편하고 못내 아쉽다.

 

필자는 몇 해 전 전국을 무대로 사기 행각을 벌였던 한·일 부부 사기단을 고소한 적이 있다. 일본인 남편은 홍콩에서 펀드매니저로 활약했다 했고 젊은, 아니 어린 아내는 S대 출신이라 소개했다. 회사에 투자할 테니 계약을 맺자며 다가왔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내게도 오나 싶어 흥분했다. 절차상의 이유를 들어 몇 차례 돈을 요구했고, 실력자라며 일본인들을 불러들여 소개를 했다. 당시 필자는 눈에 깍지가 낀 상태였다. 그들의 경비를 댔고, 종국에는 사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소장을 들이밀었다. 시간이 흐르고 경찰에서 대질신문이 이뤄졌다.

 

ⓒ 시사저널 임준선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두어 시간에 걸친 조사가 끝나고 작성된 조서를 확인하는데, 왜 조서를 작성한다는 표현 대신 꾸민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렇게 길고 자세하게 진술했건만, ‘예’ ‘아니요’로 적힌 글자들은 정황을 묘하게 끌고 가고 있었다. 정황은 충분히 납득이 되지만 처벌할 기준이 없다니, 피해를 당한 사람은 있는데 그 죄가 처벌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니, 이거야 원… 어린 아내의 집안 배경이 여간 든든하지 않은 모양이다. 검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행태가 벌어졌고, 두 부부는 기소되지 않았다. 한때 떠들썩했던 부산의 스폰서 검사 뉴스를 바라보며 필자는 소름이 끼쳤다. 그때서야 왜 그 일본인 사기꾼이 유유자적 빠져나가며 필자에게 묘한 웃음을 던졌는지 이해가 갔다. 그 후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젊은 엄마들의 기저귀 수입 대행까지 미끼로 해 70억원 가까운 돈을 꿀꺽하고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양측 간 한판 심리전 후 허해진 속 채워야

 

각설하고, 이렇듯 조서를 꾸미는 자리가 편할 리 없다.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조각모음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질문과 답이 몇 수 오가고 나면, 본격적으로 기싸움이 시작된다. 수사관은 허점을 파고들고, 피의자는 미꾸라지처럼 피하려 안간힘을 쓴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당신의 소행이 아니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입증을 하기 위해 또 다른 논리를 제시한다. 묻고 따지는 이는 사전 시나리오와 달라지면 당황한다. 틀어진 페이스를 다잡는 데 상당한 공력이 필요하다. 에너지 소모가 더욱 심해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피의자를 몰아갈 꼬챙이나 부지깽이를 찾는다. 한 방에 되돌리지 못하면 미꾸라지는 여유를 찾는다. 도망갈 구멍이 생기는 순간 집요하게 몸을 뒤흔들어 구멍을 넓힌다. 사활을 건 투쟁이 따로 없다.

 

인체는 에너지가 고갈되면 극단적으로 이상증세를 보낸다. 짜증이 늘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마치 자동차의 연료가 떨어지기 직전 고래고래 내지르는 경보음과 닮았다. 양측 간 한판 심리전이 벌어지고 나면 속이 허해지기 마련. 뇌가 지시를 한다. 신속히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으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우리는 식당에서 종종 이런 광경을 목격한다. 멀쩡하게 차려입은 신사 숙녀분이 단지 옆 테이블에 먼저 음식을 내주었다는 이유로 눈을 부라리고 목소리가 히스테릭하게 변하는 모습을 말이다.

 

신경전을 벌이던 양측은 휴전에 들어간다. 피의자가 브레이크 타임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있다면 꽤나 간이 큰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은 경찰 또는 검찰에서 조서를 꾸밀 때 가장 어울리는 식사 메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설렁탕! 딩동댕~ 정답이다. 《수사반장》 《113 수사본부》를 시작으로 범죄수사물이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취조실 하면 사각의 알루미늄 쟁반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뚝배기가 생각난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는 뚝배기에 숟가락을 깊게 찌른다. 촉촉하게 젖은 파며, 얇게 썬 고기며, 따지지 않고 깊게 찌른다. 자꾸만 숟가락에 국수 가닥이 엉키지만 불쾌하지 않다. 두어 번 가늠을 하고 숟가락을 들어올린다. 방전이 되기 직전까지 에너지를 소모한 인간이라면 밥알만 골라 올릴 리 만무하다. 거칠게 찢겨진 고기와 국수 가닥이 만만치 않다. 한이라도 풀듯 입으로 욱여넣는다. 까짓 거 입술에 좀 묻고 바닥에 떨어져도 좋다. 순간 눈이 감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젓가락이 있지만 취조실에선 숟가락으로 깍두기를 먹어야 제맛이다. 무 한 번, 국물 한 번. 순서를 암기하기도 전에 숟가락이 뚝배기를 파고든다. 두어 번 반복하고 나면 단조로워진다. 뭔가 성이 차지 않는다. 숟가락을 외면하고 두 손으로 뚝배기를 들어올린다. 그리곤 그 끈적끈적한 뚝배기에 입을 가져간다. 온도를 이미 간파하고 있는 덕에 망설임 같은 건 없다. 고개를 한껏 젖히고 국물을 들이붓는다. 꿀꺽 꿀꺽. 묵직한 탕 그릇을 내려놓고는 호기롭게 김치 종지를 잡아 쥔다.

 

1995년 11월8일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재벌 총수들을 조사중인 대검 사무실에 음식이 배달되고 있다. © 연합뉴스


생각 복잡해질 땐 설렁탕이 제격

 

대미를 장식하는 데는 아무래도 깍두기 국물이 제격이다. 달큰한 국물이 휩쓸고 간 입안에 따끈한 보리차를 한 모금 머금고 입을 헹군다. 이쑤시개가 송곳니 부근을 지나치면 복기가 시작된다. 혹시 실언을 한 건 없을까? 꼬투리 잡힐 만한 정황을 제공하지는 않았나? 다시 생각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오전 게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몸도 좀 풀렸고, 탐색전도 끝났다. 한 가지 오산이라면 수사관도 충분히 에너지를 보충했다는 사실이다. 양측은 또 그렇게 오후 게임에 들어간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궁금해진다. 에너지를 왕창 보충해도 될까 말까 한데, 3월21일 그분은 김밥과 도시락이라… 뭔가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아니다. 어째 좀 이상하다. 그 정도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조서였을까? 아니면 체념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작성이 아니라 꾸미고 있는 것일까? 생각이 복잡해지는 하루다. 이럴 때는 설렁탕이 제격이다. 신문사 기자들이 장부를 대놓고 먹었다는 설렁탕집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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