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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마음에 위험신호 켜졌다” ​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펴낸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02(Sun) 17:00:00 | 14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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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마음에 위험신호가 켜졌다. 오랫동안 속부터 썩어 들어가다가 뿌리까지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겉으로는 멀쩡히 잘나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어느 순간 확 무너져버릴 위험이 있다. 겉에 보이는 작은 틈들은 그저 두고 볼 수 없는, 표피적 문제를 넘어섰다는 징후가 보인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거쳐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서, 환자를 진료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하지현 교수가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를 냈다. 개개인을 만나 상담하고 치료하는 그가 왜 모든 국민을 진단한 것 같은 내용의 책을 펴냈을까?

 

 

“불안한 사회, 개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

 

하 교수는 작은 진료실 안에서 세상이라는 큰 파도에 자신의 삶이 휩쓸려 갈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야 객관적이고 순수한 진료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진료실 밖 세상의 변화가 사람 개개인의 마음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하 교수는 마음을 분석하던 현미경을 밀쳐놓고, 높은 곳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마음은 개인과 사회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이 책은 그 사유의 결과물이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펴낸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 © 문학동네 제공


 

“한쪽에서는 ‘푸어’가 양산되는 가난의 시대에,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어마어마한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다. 해운대에 세워지고 있는 엘시티라는 복합건축물도 그렇다. 개인은 갈수록 미약한 존재로 느껴질 뿐이다. 비리 연루자들이 챙긴 금전적 이득은 천문학적 수준이라 실감도 나지 않는다. 참을 만한 선을 넘어섰다는 대중의 직관이 띠를 이루면서 거대한 군중으로 진화한 신호가 바로 광장에 모인 연인원 1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낸 아우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 교수는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인의 마음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즉 사회 전반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병리학적 징후들을 통해 그 마음에 켜진 위험신호가 어디에서 온 것이고, 그것이 어떤 상황과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지, 그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의미를 분석했다.

 

“오랫동안 문제가 생긴 개인을 보다 보니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 사는 사람들의 처절한 노력과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불확실성 그 자체다. 예측하기 어렵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상황에 인간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의 주체는 개인이고, 해결자도 개인이어야 한다고 사회는 말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하 교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문화가 정신과 의사의 어깨에 많은 짐을 얹었다면서, 문제를 바라보는 중심축이 사회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 쪽으로 옮겨갔고 문제의 해결도 개인으로 초점이 맞춰졌다고 설명한다. 내면의 성찰을 통한 자아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조직에서의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결국 몸과 마음, 사회와 개인을 분리하고 대립시키는 이원론적 사고와 한쪽으로 치우치는 불균형은 취약한 개인에게 위험을 불러오게 하며, 그 결과로 지금 한국인의 마음은 너무도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남보다 나아지려는 욕구는 어느 정도까지는 삶의 성취를 위한 동기 부여가 되지만, 이 욕구가 평균과 보통의 집단에 남아 있으려는 잔류 심리와 합쳐지면, 경쟁 심리의 원동력이 되어 결국 모두가 조바심을 내며 달려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덕분에 야금야금 평균치는 올라가고, 욕구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천장 근처까지 다다른다. 손을 내밀면 바로 닿는 그 정도까지. 어느새 사치스럽고 쓸모없는 것까지 다 갖춰야 ‘기본’ 내지는 ‘보통’이 된다.”

하 교수는 보통이라도 되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만족감을 얻을 수 없고 마음은 가난해지기만 하는 현실에 대해 개인은 다양한 심리적 저항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사회 전체의 프리즘 안에서 한쪽 극단에선 데이트 폭력이나 묻지마 폭력, 여혐(女嫌) 등 공격성을 드러내는 형태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고, 다른 극단에서는 자기만의 밀실에 들어가 스스로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닌’, 그러나 ‘지지는 않은’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한다고.

 

하지현 지음
문학동네 펴냄
248쪽
1만4000원


“나의 모자람 인정하면서 공감의 문 열어야”

 

“경향성만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지금 밀실과 광장, 혼밥과 소셜다이닝, 쿨과 데이트 폭력, 정보 과잉과 결정 장애라는 양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진자 운동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확실한 세상은 언제나 나를 불안정하고 흔들리게 만든다. 그 흔들림은 위험신호를 발생시키고, 몸은 긴장하고, 마음은 예민해지고, 전투모드를 지속하다 제풀에 지쳐버린다. 마음의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싱크홀에 빠져서 세상의 절멸을 바라거나 구원의 환상을 꿈꾸고 있다. 이렇듯 마음을 끝없이 내모는 불안함과 불확실성은 더 이상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현 교수는 개인이 강해질 수 있는 정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이제 그만!’ ‘이 정도면 됐어’라는 마음의 브레이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제 나 한 사람의 생존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자아를 완벽하게 발달시키겠다는 욕망이 의미 없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나 하나 살아남는다고, 더 강해져서 옆 사람을 누른다고, 영속하는 행복은 오지 않는다. 완벽할 필요 없음을, 이길 필요 없음을, 욕망의 적정 수위를 조절하는 한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그다음 나의 결핍·부족함·모자람을 인정하면서 공감의 문을 열어야 한다. 내 결핍을 인식해야 타인의 결핍에 대해서도 역시 그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공감과 연대의 필요성이 발생한다. 더 나아가 느슨한 관계망의 확장과 세상과 타인을 향한 대가 없는 이타적 호혜평등성이 개인에게 긍정적 가치와 삶의 의미를 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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