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착증 환자 ‘바바리맨’의 위험한 진화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04 17:30
  • 호수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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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방식 은밀하고 폐쇄적 SNS로 활동범위 넓혀

 

최근 서울 강서구 목동의 아파트 단지에 ‘블랙 바바리맨 주의보’가 내려졌다. 검은 옷에 검은 배낭, 검은 마스크까지 쓰고 나타나 음란행위를 하는 남성 때문이다. 이 바바리맨은 아파트 여성들이 지나가면 자신의 성기를 노출해 음란행위를 하며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피해자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피해 여성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아파트 부녀회가 경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한 남성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는 자전거 보관소나 화단같이 CCTV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용의자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잠복해 있다가 배아무개씨(33)를 검거했다.

 

잡고 보니 배씨는 멀쩡한 회사원이었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여자친구 집을 드나들며 이 일대를 범행 장소로 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배씨를 공공장소에서 성기를 노출한 혐의(공연음란죄)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앞서 서울 지하철 7호선 먹골역에서도 바바리맨이 출몰했다. 술 취한 50대 남성이 바지 지퍼를 내린 채 여성 승객 앞에 있다가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여장(女裝)을 한 남성이 여성을 쫓아가 특정 신체부위를 노출하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바바리맨은 아파트 단지, 공원, 학교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속도로에서도 출몰한다. 고속도로에서는 요금징수원 앞을 지날 때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거나 하의를 벗은 상태에서 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사회 곳곳에서 범행 대상 물색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거리의 바바리맨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특정 신체부위가 노출된 사진을 게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른바 ‘SNS 바바리맨’들이다. 실제 트위터를 통해 야외에서 찍은 성기노출 사진이나 영상을 올린 이용자도 있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침입해 음란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고 퇴장하는 ‘카톡 바바리맨’도 등장했다. 이들은 특정 키워드로 여성이 많은 오픈 채팅방을 찾은 후 무단으로 들어가 음란물 테러를 저지르는 게 특징이다. 이럴 경우 채팅방에 회원으로 가입한 여성들 다수가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런 성도착증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그 표현 방식이 워낙 은밀하고 폐쇄적이어서 주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의학적으로 성도착증은 노출증, 물품 음란증, 마찰 도착증, 소아기호증, 성적 가학증, 복장 도착적 물품 음란증, 관음증 등으로 분류된다.

 

바바리맨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켜 상대에게 수치감이나 혐오감을 주는 데서 성적 쾌감을 얻는다. 노출행위에 대해 “왜?”냐고 물으면 “색다른 짜릿함과 스릴이 주는 쾌감”이라는 것이 이들의 대답이다.

 

성도착증 환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다. 때로는 음습한 곳에서 은밀하게 성적 만족을 즐기는가 하면 지하철, 대로변, 대형마트, 학교, 직장 등에서 불특정 여성들을 상대로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도 한다.

 

아침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 안은 ‘마찰 도착증’ 환자들의 천국이다. 붐비는 지하철이라는 특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을 할 수 있는 데다 얼마든지 범행을 은폐할 수 있다. ‘마찰 도착증’ 성향의 사람들은 여자 승객들 중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상대 여성의 허벅지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밀착시켜 문지르거나 손으로 만지는 등의 행동을 한다.

 

카메라를 가방이나 신발 속에 숨기고 다니면서 여성의 치마 속 등 은밀한 부분을 반복적으로 촬영하고 수집하는 취향을 가졌다면 성도착증을 의심해야 한다.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한 상습적인 촬영도 여기에 속한다. 이웃집 여성이 목욕하는 장면 등을 상습적으로 훔쳐보며 즐기는 남자들도 관음증적 성도착증에 해당한다.

 

여성의 속옷을 수집하거나 냄새를 맡으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남자의 경우 ‘물품 음란증’에 속한다. 처음에는 작은 물건에 만족감을 느끼다 점차 여성의 몸 자체를 원하게 되는 성도착증이다. 이들은 여성의 속옷뿐만 아니라 때로는 음모(陰毛), 머리카락, 손톱, 성기구 등을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청소년기에 시작되며 일단 발병하면 만성적인 질병이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직업이다. 사회지도층부터 회사원, 대학생 등 사회적 지위나 연령과 관계없이 광범위하다. 2014년 8월에는 김수창 당시 제주지검장이 길거리에서 1시간가량 바지를 내리고 음란행위를 하다 여고생에게 목격되면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 지검장은 혐의를 극구 부인하다 CCTV 증거를 들이대자 범행을 시인했다. 현직 검사장의 길거리 음란행위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사회지도층에서 대학생까지 다양

 

지난해 6월에는 프로야구 kt 위즈의 김상현 선수가 주택가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음란행위를 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kt구단은 김상현을 임의탈퇴 처리했다. 경찰관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6월 인천지방경찰청 소속 C경위(43)는 인천 남구의 한 주택가에서 길을 지나가던 20대 여성의 뒤에서 음란행위를 하다 피해 여성의 신고로 붙잡혔다.

 

현행법상 공공장소에서의 성기노출은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 학교 앞이나 골목 등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공공연하게 벌이는 음란행위가 여기에 속한다. 공연음란죄를 저지를 경우 형법 245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질 수 있다.

 

강제추행죄(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공연음란’ 혐의로 입건된 건수는 2013년 1471건, 2014년 1842건, 2015년 2112건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지난해 9월1일부터 한 달 동안 공연음란사범 집중단속을 펼친 결과, 모두 44명을 붙잡았다. 이들의 범행을 분석해 보니 오후 6〜11시에 22건(42.3%)이 이뤄졌고, 발생 장소는 주택가 등 길거리가 41건(78.8%)으로 가장 많았다. 또 길거리 중에서도 주택가 14건(30%), 상가 주변 11건(21.1%), 길거리 주차된 차량 내 8건(15.3%), 버스정류장 5건(9.6%), 학교 앞 3건(5.7%) 등 순이었다.

 

붙잡힌 바바리맨의 연령대는 30·40대(61.4%)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60대(9%), 10대(6.8%) 순이었다. 직업별로는 회사원(14명), 자영업(4명), 무직(15명) 등이다. 30·40대 피의자 27명 가운데 25명이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공공장소에서 바바리맨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은 “최대한 침착하고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길가에 주차된 차 안에서 공연음란 행위를 하는 남성을 목격했다면 현장을 벗어난 뒤 즉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출증은 그냥 방치하면 중독성이 강해지고, 심해지면 강제추행이나 성폭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거친 뒤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20대 바바리맨이 여학생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고 하자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 서울경찰청 블로그

소아기호증 아동성범죄로 연결

 

성도착증 증세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소아기호증(嗜好症)’이다. 전체 성도착증 환자의 약 45%에 해당한다. 보통 13세 이하의 여자 어린이한테 강한 성적 충동이나 흥분을 느끼는 것으로, 소아와의 성적 접촉을 통해서만 만족을 느끼는 정신질환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8세를 전후해서 가장 많이 발병하고, 50세 이상의 연령층에서 환자가 가장 많다. 그다음이 30·40대이며, 사춘기 청소년들 중에도 소아기호증을 앓는 환자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기호증 환자들은 주로 성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결혼생활이나 성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가장 많고, 성적 경험이 전혀 없거나, 정상적인 성행위를 할 수 없는 노인이나 병약자 등에서 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일어난 아동성범죄의 범인은 동네 이웃, 가족의 지인, 친척 등이 대부분이었다. 안양에서 초등학생을 살해한 정성현은 피해 아이들의 집에서 200여 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조두순도 피해 어린이의 집에서 125m 떨어진 교회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했고, 부산 여중생도 피의자 김길태와 한동네에서 살았다.

 

이런 경향은 범인들이 잘 아는 곳에서 범행 장소와 범행 대상을 고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어린 친딸이나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비정한 아버지의 경우에도 소아기호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환자들은 성범죄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성적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소아기호증 환자는 겉으로는 전혀 증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주위에 누가 이 병을 앓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자신이 성도착증인지 아닌지를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크게 두 가지로 진단할 수 있다. 성적 환상이나 성적 충동으로 인해 6개월 이상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성도착증으로 봐야 한다. 또한, 성도착증적인 환상이나 자극이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데 필요하고 항상 성행위를 동반할 경우에도 성도착증을 의심할 수 있다.

 

성도착증 치료는 가능할까. 정신과 전문의들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일단 원인을 찾기가 어려운 데다, 약물 치료는 단순한 ‘성적 억제 기능’만 나타낼 뿐이어서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환자들 대부분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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