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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오너 없인 아무것도 못하나”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편 중단…배당 증액 등 주주 달래기에 급급

이철현 시사저널e. 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07(Fri) 15:34:52 | 14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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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9일 오후 5시30분부터 8시30분(현지 시각)까지 3시간 동안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주변 옥외광고판 42개 전부가 파랗게 물들었다. 광고판마다 삼성전자가 같은 날 오전 11시에 공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S8의 이름과 광고 문구가 떴다. 그 푸른 광고 바다를 고래가 헤엄쳤다. 타임스스퀘어에 모인 시민과 관광객은 ‘와우(Wow)’ 감탄사를 연발했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회사다운 이벤트였다. 같은 시간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이자 총수 이재용 부회장은 경기도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에 갇혀 갤럭시S8 공개 소식을 접해야 했다. 세계 최고 IT업체의 최고경영자가 회삿돈 433억원을 대통령 비선실세에게 갖다 바치다 6.56㎡(1.9평) 크기 독방에 들어앉은 것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이벤트 간 인지적 이물감은 삼성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후진적 경영지배구조에 기인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2·3세에게 경영·지배권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을 일삼다 보니 피증여인은 잠재적 범죄자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권력 요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세계 2위 IT 기업이 ‘무당 자문역(shaman adviser)’이라 불리는 비선실세에게 거액을 갖다 바치는 촌극도 벌어졌다.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이 질곡에서 벗어나려면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3월24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제48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권오현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적분할·지주사 전환 계획 돌연 취소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말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지주회사 전환을 포함한 최적의 지배구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6개월 검토를 거친 뒤 삼성전자의 인적분할과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앞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삼성전자 경영진에게 보낸 ‘주주가치 증진계획’ 일부를 수용한 것이다. 엘리엇은 지난해 10월5일 자회사 블레이크캐피털과 포털캐피털을 통해 삼성전자 경영진에게 서한을 보내면서 삼성전자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인적분할, 지주사 전환, 배당확대 등을 요구했다.

 

삼성그룹의 3대 축은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이다. 이 중 삼성전자가 기함(旗艦)이자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대상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면 다른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듯하다. 지배력은 훼손하지 않으면서 삼성전자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편하느냐가 이 부회장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에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다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일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①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다. ②지주회사는 삼성물산과 합병한다. ③사업회사는 코스피와 미국 나스닥에 동시 상장한다. 업계 전문가 다수는 삼성전자가 인적분할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자사주를 제외하면 삼성 오너 일가와 관계사 지분은 18.15%다.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넘는다. 이에 지배구조 안정을 꾀하려면 인적분할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3월24일 상황이 돌변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서울 서초동 삼성서초타워 다목적홀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지주회사는 주주와 회사 모두에게 중요하기에 그동안 법률·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해 왔으나, 현재 처해 있는 상황 탓에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에둘러 표현했을 뿐 결국 총수가 없으니 지배구조를 개편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 주주총회 참석자는 기자에게 “삼성은 오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행위무능력자냐”라고 말했다.

 

정치권 분위기도 이재용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인적분할과 지주사 전환을 하려면 ‘자사주의 마법’이 필수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면, 지주회사에 사업회사 자사주를 몰아서 배정한다. 자사주는 본래 의결권이 없지만 지주회사에 배정되면 의결권을 갖게 된다. 이게 바로 자사주의 마법이다. 이 부회장은 이 마법을 부려야 안정적인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주 14.7%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사업회사 지분을 팔고 지주회사 지분을 늘리면 적은 금액으로도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2012년 6월1일 열린 ‘2012 호암상 시상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당시 직책)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권에서 ‘자사주의 마법’ 막고 나서

 

하지만 야당 의원들이 자사주의 마법을 막고 나섰다. 국회 정무위 소속 제윤경 의원과 국방위 소속 이종걸 의원은 자사주의 마법을 제지할 경제민주화 법안을 발의했다. 정무위 소속 박용진 의원도 기업을 분할할 때 지주사 보유 자사주에 대해 분할회사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요지의 상법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다. 해당 법안 중 하나라도 본회의를 통과하면 공정거래법상 삼성전자 지주회사는 사업회사 지분 20%를 시장에서 사들여야 한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300조원에 육박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현 불가능하다. 이에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지난해 12월6일 국회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있어 법적 리스크보다 정치적 리스크가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나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 일단 주주를 달래면서 이 부회장 재판 결과와 정치권 움직임을 지켜보자는 심산이 엿보인다. 삼성전자는 파격에 가까운 혜택을 제시하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4조원을 올해 배당하고, 자사주 9조3000억원어치를 매입한다. 또 사외이사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를 4월말 설치한다.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사항을 심의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위원회 역할도 병행한다.

 

시민단체나 정치권 인사 상당수는 삼성전자의 움직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총수가 없으니 지배구조 개편은 미루고, 배당 확대를 통해 외국인 등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며 “지배구조 개편 약속은 저버리고 시늉만 내는 꼴”이라고 평가했다. 박용진 의원은 “지주회사 전환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지배주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있는 제도이므로 정치권도 반대한 적이 없다”라며 “지주회사로 전환해서 주식가치를 제고하고 주주이익을 실현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적분할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 개인의 이익실현을 도모하려는 삼성의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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