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가야사 편)] 일본인 유전자 지도에 담긴 역사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0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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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인들이 바다를 건너와 야요이 문명 일궜다”

2012년 11월1일자 일본 산케이 신문 과학 섹션에는 지도가 하나 실렸다. ‘게놈 분석에 의한 일본인의 유전계통 개념도’. 당시 막 연구가 끝나서 발표됐던 일본인의 유전자 분석 결과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지도다. 국립유전학연구소 집단유전연구부문 사이토 나루야(斎藤成也) 교수 팀이 100만 개의 염기 사이트를 한 번에 비교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용, 지금까지 논란이 많았던 일본인의 유전적 계통을 명확히 밝혀 정리한 것이다. 아래 지도는 산케이 신문에 실렸던 지도를 그대로, 일본어 부분만 한국어로 바꾼 것이다.

 

2012년 11월1일 산케이 신문에 실린 '아이누 및 류쿠는 조몽 형, 일본인의 유전자 형, 게놈 분석으로 인증' 기사에 실린 지도


 

이 보고서의 내용을 역사적 맥락에 대한 보충 설명을 곁들여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석기 시대동안 일본 열도에는 동남아 쪽에서 와서 일본 원주민이 된 ‘조몽인(縄文人)’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류큐 열도에 이르는 전 지역에 분포되어 살았다.

 

둘째, 기원전 300년 무렵부터 시작해서 약 5~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로부터 ‘도래인(渡來人),’ 즉 ‘바다를 건너 온 사람들’이 밀려들어 왔다. 유전자 분석은 이 도래인들이 정확히 변진(弁辰), 그리고 이어서 가야연맹이 존재하던 시절 가야연맹의 본토인 낙동강 상류로부터 김해평야 일대를 거쳐 규슈 서북부 및 바로 그 대안인 혼슈 서북단으로 들어오는 경로를 통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 가야 도래인들은 왕성한 기세로 원주민인 조몽인과 유전학적으로 섞이게 된다. 이렇게 하여 새로이 형성된 인간형 및 이들이 이룩한 문명에는 ‘야요이(弥生)’라는 이름이 붙었다.

 

셋째, 도래인들은 금속제 도구와 미작(米作) 농업을 일본에 도입했고, 이것이 야요이 문명의 특징이 된다. 야요이인들은 규슈 지방에서부터 시작하여 부족사회를 넘어서서 최초의 고대 국가를 형성했다. 또한 시코쿠, 혼슈 전역에 퍼져나가면서 일본 본토의 대표적인 유전자형을 이루었다.

 

넷째, 도래인이 혼합되지 않은 조몽인의 유전자형은 현재 홋카이도와 류큐 거주자들에게 많이 남아 있다. 즉 일본인의 유전자형은 혼슈, 시코쿠, 규슈 등 본토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야요이(弥生) 형과, 홋카이도 및 류큐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조몽(縄文) 형, 두 가지 계통이 혼재해 있는 2중구조를 하고 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일본이 고대 한일관계에 대해 내세워왔던 주장들을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유전자 지도가 밝힌 일본인의 기원

 

1만 5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말기까지만 해도 일본은 한반도 남단에 붙어 있던 띠 모양의 땅 줄기에 불과했다. 따라서 한반도와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관계가 긴밀할 수밖에 없었다.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해수면이 올라가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분리되었고, 동시에 일본 열도는 태평양 쪽으로 융기하면서 면적이 넓어져갔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는 각각 독자적인 문화를 지닌 인간집단들이 발달해갔다. 

 

하지만 이 두 땅덩이를 가르는 대한해협은 수심이 얕고 바람도 비교적 잔잔하며 해류의 흐름도 그리 격하지 않은 바다다. 일본 열도가 아주 조금씩이기는 하나 지속적으로 태평양 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예전엔 이 바다의 폭이 훨씬 좁았을 것이다. 그럼 배를 이용한 활동이 활발했을 시절엔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에 사는 인간집단들은 수시로 서로 드나들었을 것이다. 이들에겐 대한해협 가운데 있는 쓰시마 섬이 지금의 고속도로 휴게소 정도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이런 관계에선 좋을 때는 서로 협력하겠지만, 어려운 시절엔 서로 침략하여 남의 것을 빼앗는 사이가 된다. 특히 근대 초기 일본이 서구 열강의 지원을 등에 업고 조선을 강점하여 아주 빡빡한 식민통치를 실시하는 바람에 두 나라 사이의 감정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바로 최근까지도 한반도로부터 받은 영향을 근본적으로 부인해왔다. 식민지 시대에는 무지몽매한 조선인들을 자기들이 ‘계몽’해서 잘 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1960년대까지는 자기들이 어떤 피도 섞이지 않은 ‘순수 혈통’ 천황의 자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970년대 고대 동아시아에서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하고, 특히 석기시대를 벗어나게 한 야요이 문명은 일본 외부에서 바다를 건너서 온 사람들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확실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반도의 영향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일본에 고대문명을 일으킨 ‘도래인은 시베리아, 중국, 동남아시아, 호주 및 태평양 제도, 한반도 등에서 왔다’는 식으로, 한반도로부터의 영향을 희석시키려 해 왔다. 

 

하지만 과학은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다. 물론 모든 과학이 그런 건 아니다. 조작된 실험과 논리로 이데올로기에 종사하는 과학이 아니라, 진짜 과학이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 유전학계 중에서도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국립유전학연구소, 도쿄대 의학연구과, 총합연구대학원대학 생명과학연구과 등의 연구진들이 공동 연구한 결과 나온 이 게놈 분석은 총합연구대학원대학 홈페이지에 전문이 실려 있고, 산케이 신문 같은 대표적 미디어에도 실려서 대중적으로도 알려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재 해당 산케이 신문 기사의 링크는 열리지 않지만, 이 보고서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미 온라인에서 상당수의 일본인 블로거들에게 공유되어 있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야요이인과 한반도 남부 도래인 사이의 유전학적 관련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돼 있었는데,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한반도로부터 벼농사나 문화, 기술이 일본에 전해진 2000년전을 재현한 일본의 요시노가리 유적. ⓒ 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이종기의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는 또 놀라운 선구적 통찰을 보여준다.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로 꼽히는 ‘야마다이국(邪馬台国)’의 개국시조로 전해지는 히미코(卑弥呼)라는 여성은 가야 왕실에서 건너간 여성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 역시 지금까지 한·일 역사학계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마 역사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을지 모른다. 관행 역사가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학에서는 문자로 남겨진 기록이나 유물·유적 등만을 역사적인 근거로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근거들은 지워졌을 것이다. 가야가 멸망한지 16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시기도 있었다.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면, 자기들이 한반도인의 후손임을 인정해선 곤란할 것이다. 특히 가야는 직접적인 조상이었다는 사실을 아마 이전에도 일본인 지식인 중에 짐작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고 억압으로 통치한다는 것은 인간의 윤리에 비추어 본다면 패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자마자 김해패총을 비롯, 옛 가야의 유물이 남아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져, 몽땅 가져가버리고 지금까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흔적 중에는 잘 지워지지 않는 것도 있고, 눈에 띠지 않는 곳에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게놈(genome)이다. 100조개 가 넘는 인간의 모든 세포 안에 하나씩 들어 있는 세포핵, 그 안에 똑같이 들어있는 게놈, 즉 유전자 정보를 담은 구조물의 존재는 20세기 후반에 와서 밝혀졌다. 그 이전 사람들은 이런 게 있다는 것도 몰랐을 뿐 아니라 알았다 하더라도 손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게놈이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인들이 일본 본토 사람들의 조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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