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인 인종차별 사건은 우리의 민낯이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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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기자의 차별을 말하다] 우리 사회 의식구조 안의 인종주의

여러분은 어떤 이유 때문에 부당한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3명이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청소년들까지 틀에 맞지 않으면 차별하고 배제하는 우리 사회는 어쩌면 ‘차별 중독증’에 걸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사저널의 연재 ‘박준용의 차별을 말하다’는 이런 ‘차별 중독 사회’에 대해 견제구를 던질 예정입니다.     

 

우선 하나 여쭙겠습니다. 혹시 ‘인종차별은 정당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아마도 없으실 듯합니다. 시민 대다수는 ‘인종으로 인한 차별과 편견은 나쁘다’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인종차별 청정구역’일까요?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이제 질문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등 이주민을 이웃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성인 4000명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명 중 한명(31.8%)이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질문에 호주(10.6%)·스웨덴(3.5%)·미국(13.7%) 시민이 보인 반응 보다 3배에서 10배 가까이 높은 확률입니다. 

국내 인종편견은 실제 차별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최근 부산에서 있었던 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콜롬비아 국적의 레오 멘도자는 지난 3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국 내 인종차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멘도자가 올린 글에 따르면, 사건 당시 그는 아내(한국인)와 부산 수영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 뒤 주차장으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멘도자의 아내는 한 아이가 차량 진입을 보지 못하고 뛰어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소리를 질러 사고를 막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의 보호자와 멘도자 간 실랑이가 생겼습니다. 실랑이 중 아이의 할아버지는 멘도자가 콜롬비아인이라는 사실을 안 뒤 “더 못한 데서 왔네”라며 차별적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멘도자 부부가 경찰에게 “인종차별적 언행을 자제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자 오히려 경찰은 “‘깜둥이’라고 부른 것도 아닌데…”라는 식으로 대처했다고 합니다. 결국 멘도자 부부가 관할 경찰서장의 재발방지 약속과 사과를 받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됐습니다.  

2016년 3월13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개최한 UN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50주년 기념 캠페인이 열렸다. ©연합뉴스



이런 사건은 최근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2009년에는 인도출신 보노짓 후세인이 버스에서 승객으로부터 “더럽다” “냄새 난다”는 등의 폭언을 듣고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출동한 경찰이 보노짓에게 인종차별적 폭언을 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2015년에는 집권여당 대표였던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연탄 나르는 봉사활동을 함께 하던 흑인 유학생에게 “니는 연탄색이랑 얼굴색이랑 똑같네”라고 말해 빈축을 샀습니다. 해외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도 2014년 한국의 인종차별 문화에 대해 “다문화의 다양성을 증진하기보다는 한국 사회로 흡수시키는 데 맞춰져 있다”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단일민족 강조?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뭐가 되나?”

그럼 의문이 듭니다. 우리 사회는 ‘인종차별은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왜 인종차별이 만연한 걸까요? 인종주의를 연구한 프랑스 철학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는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즉 사람은 원래부터 인종차별적 성향을 가진 게 아니라, 사회의 제도나 교육이 인종차별주의자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제도나 교육이 인종편견을 만드는 걸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한국이 ‘단일민족 국가’라는 신화입니다. 현재 나이가 서른 살 이상이신 분들은 모두 한번쯤 국사 교과서 첫머리에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다’ 또는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다’라는 표현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2007년 교과서에서 빠집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기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170만명 수준입니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꾸려진 가정은 82만가구가 넘습니다. 

한국에서 그간 이뤄진 ‘단일민족’ 교육은 사회의 인종편견을 강화하는 도구가 됐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대 교수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걸 믿는 민족이 있다면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면서 “한국도 단일민족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는데, 그 자녀들은 뭐가 되나”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3월13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UN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50주년 기념 캠페인이 열렸다. ©연합뉴스



두 번째로는 한국에서 시행되는 다문화 정책․담론의 문제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06년부터 다문화정책이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이 다문화 정책․담론은 다문화의 본질적 문제를 제대로 짚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주민에 대한 배려 없이 그들에게 ‘한국화’만 강요하며, 이주민의 실질적 인권 신장에는 관심을 적게 두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다문화가정을 위한 ‘김치 담그기’ 행사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행사는 한국 문화를 더 알고 싶은 이주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문화 정책과 담론이 ‘외국인 며느리’를 한국음식을 잘하는 ‘한국인 며느리’로 탈바꿈시키는 데만 집중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는 저서《인종주의》를 통해 이런 부분을 꼬집었습니다.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문화’만 있는 다문화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주자들이 한국말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권리를 갖고 법으로 규정된 복지혜택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결혼 이주 여성이 ‘김치 담그기’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업에서 차별받지 않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다문화주의 정책에는 이런 실체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빠져있다 …(중략)··· 이주민을 그저 말이나 배우고 가끔씩 이국적인 축제에나 등장하는 존재로 전락시킨다면 한국 다문화주의의 미래는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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