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오픈플랫폼, 정작 핀테크 업체엔 ‘그림의 떡’
  • 이용우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4 09:47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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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업체들 “금융결제원, 사용자격 제한해 핀테크 서비스 활성화 막아” 불만

 

핀테크(fintech)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서비스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다. 핀테크는 은행 업무를 분산한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개인 간 직접 금융거래를 현실화한다. 기존 금융권이 긴장하는 이유다. 전통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은행은 핀테크 업체와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좀 다르다. 핀테크 업체는 시장 경쟁 이전에 정부 규제에 발이 묶여 있다고 토로한다. 규제 완화 없이는 핀테크 금융혁신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단적인 사례가 금융결제원이 운영하는 ‘핀테크 오픈플랫폼’이다.

 

핀테크 오픈플랫폼은 핀테크 기업이 금융사 데이터·시스템을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한 개방형 시스템이다. 핀테크 업체가 이 플랫폼을 이용하면 은행과 별도 제휴를 맺지 않고도 16개 은행 및 25개 증권사와 연계된 핀테크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핀테크 업체가 금융서비스 시스템을 만들 때 금융권과 계약을 체결하는 등 어려운 현실을 반영했다. 오픈플랫폼은 잔액·거래내역·계좌실명 조회 등 갖가지 데이터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오픈플랫폼은 핀테크 산업 육성이 목적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Freepik

‘중소기업만 오픈플랫폼 사용’ 자격 제한

 

하지만 금융 당국이 핀테크 오픈플랫폼을 마련해 놓고도 정작 핀테크 업체가 이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용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해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춘 핀테크 업체가 오픈플랫폼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핀테크 오픈플랫폼이 나온 지 6개월 이상 지났다”며 “상당수 업체가 여전히 오픈플랫폼을 이용하고 싶어도 접근조차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금융결제원과 국내 16개 주요 시중은행은 지난해 8월30일 핀테크 오픈플랫폼을 열었다. 오픈플랫폼이 출시된 지 6개월 이상 지났지만 실적은 제로에 가깝다. 오픈플랫폼을 활용한 첫 서비스도 올해 3월이 돼서야 나왔다. 핀테크 기업 ‘뱅크웨어글로벌’은 금융권 최초로 오픈플랫폼을 활용한 앱 모핀을 출시했다. 모핀은 온라인 소모임 등에서 회비 내역을 관리·열람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앱이다. 핀테크 업계에서 오픈플랫폼이 전혀 시장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출범한 오픈플랫폼이 활용도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실제 시장에서 활용된 건 고작 한 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핀테크 업체 고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며 “중국만 해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모든 은행 업무를 해결한다. 은행에 가는 일이 없다. 캄보디아·미얀마·케냐 등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여기는 나라에서도 은행보다 모바일뱅크가 먼저 오픈한다. 글로벌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용한 플랫폼을 만들어 놓고도 6개월 만에 첫 서비스를 내놨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결국 동남아보다도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핀테크 업체들은 금융결제원이 중소기업만 오픈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게끔 사용격을 엄격히 제한한 점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중소기업이어야 한다는 단순 요건을 충족하도록 만든 근거가 빈약하다고 비판한다. 핀테크 육성 목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페이코(PAYCO) 등 핀테크 업체들은 결국 대기업이 대주주로 있다는 이유 하나로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데 한계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핀테크 업체 고위 관계자는 “차라리 이런 플랫폼을 만들지 않고 다 같이 경쟁하게 하는 게 낫겠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며 “금융 당국이 좋은 서비스를 내놓고 아무도 못 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핀테크 오픈플랫폼은 기본적으로 핀테크 산업의 육성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정부 시책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대기업은 이미 자본력과 기술력이 충분하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부족한 게 많다. 이런 업체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이는 시장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모든 핀테크 업체가 기존 금융권에 비하면 영세하다. 송금 서비스를 만들어도 계좌에 잔액이 얼마나 부족한지조차 알 수 없는 서비스를 내놨다. 고객은 다시 은행 앱에 들어가 잔고를 확인하는 등 불편을 느낀다”며 “핀테크 업체가 모든 은행과 계약을 맺을 수 없다. 은행이 우릴 만날 이유도 없다. 핀테크 업체가 기존 금융권에 사장되지 말라고 오픈플랫폼을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결제원의 은행권 공동 오픈플랫폼 홈페이지

‘금융결제원이 기존 금융권을 의식’ 지적도

 

일각에선 금융업체 회비로 운영되는 금융결제원이 오픈플랫폼을 주도해 운영하면서 기존 금융권을 의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핀테크 업계 현실과 동떨어진 채 시장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핀테크 오픈플랫폼을 이용해 금융서비스를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잔액조회만 돼도 핀테크 업체들이 지금 시중에 내놓은 송금 서비스는 더 편리해진다”며 “지금은 오픈플랫폼이 업계와 동떨어져 있다. 금융결제원이 의도를 안 했어도 기존 금융사의 이권을 최대한 지켜주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핀테크 육성이 화두가 되면서 금융 당국 입장에선 핀테크 업체 목소리를 반영한 오픈플랫폼 같은 걸 마련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기준을 중소기업에 한정하는 등 등록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 놓고, 오히려 기술력을 가진 업체를 제한했다. 핀테크 업체는 사실상 오픈플랫폼 사용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지금 오픈플랫폼은 안정화 측면이 제일 우선이다. 중소기업이 아닌 핀테크 기업이 요구하는 건 확장성이다. 일단 안착이 된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자격 제한이 곧 규제가 아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며 “개인 의견으로 말하면 대기업이 핀테크 오픈플랫폼을 이용하면 스타트업이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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